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감의 기술 Oct 07. 2020

기분이라는 녀석, 절대 믿지 마세요

 합격자 발표 시간이 점점 다가옵니다. 대학 입학이든, 취직 시험이든 하다못해 로또 추첨 순간까지. 운명을 가르는 발표 시간은 긴장감이 감돕니다. 붙기만 하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최선을 다해 일하겠다고 홀로 다짐 또 다짐을 합니다. 낙방이라는 단어는 떠올리기 싫습니다. 떨어지면 다시 또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몸서리칩니다.

 "합격을 축하합니다!"라는 소식을 듣는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기분입니다. 이제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느끼죠. 내 앞길이 이제야 탄탄대로에 올라탄 듯합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붙여주기만 하면 뭐든지 다하겠다는 다짐은 눈 녹듯 사라집니다.

 대학 캠퍼스의 낭만을 느낄 새도 없이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내가 꿈꾼 캠퍼스 생활은 이게 아닌데도 남들 하는 대로, 모두가 가는 대로 따라갑니다.

 취업의 기쁨도 잠시, 신입사원의 열정을 불사르다 보면 이게 맞는 건지 고민이 듭니다. 우러러 보이던 선배들의 쓸쓸한 퇴장을 보고 있으면 '나도 마찬가지일 텐데' 하는 생각에 한없이 씁쓸해집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 기대했지만 여전히 '고생 중'입니다. 내 인생에 행복은 언제쯤 올까, 심란해집니다.

   

 터벅터벅 힘없이 길을 걷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 하늘을 한번 쳐다봅니다.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기만 합니다. 파아란 가을 하늘이라고만 표현하기엔 너무나 아까운 하늘이에요. 파란 하늘 아래 햇살이 사르르 비칩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면 날씨 하나만으로 사람 마음을 눈물 나게 감동시킵니다. 이대로 주욱 좋은 날씨가 이어질 것만 같은데, 실제론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은 자꾸만 표정을 바꿉니다. 해맑은 얼굴을 하다가도 갑자기 찌푸리죠. 어느 때는 금세 흐려져서 방금 받았던 감동은 온데간데없이 기분까지 우울하게 만듭니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드넓은 하늘은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맑았다 흐렸다 울었다 찡그렸다, 하늘도 변화무쌍합니다.  


 사람 마음? 두말하면 잔소리죠. 변해도 너무 자주 변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죠.

 바쁜 출근길에 신호가 기가 막히게 잘 받으면 오늘은 술술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다가도 엘리베이터가 내 눈앞에서 무심하게 올라가 버리면 이미 하루를 망친 것 같아 기분을 잡칩니다.

 칭찬 한마디에 없는 열정을 끌어모으다가도 잔소리 한마디에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버리죠.

 

 기분이란 녀석은 정말 믿을 것이 못됩니다.

 1초가 급한 화장실로 들어갈 때와 급한 일 다 끝마치고 나올 때의 기분이 180도 다르듯이 하루에도 수시로 얼굴을 달리 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모든 게 좋아 보이고 웬만한 실수는 너그러이 받아들입니다. 세상도, 인생도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러다 기분이 나빠지면 사소한 실수에도 짜증을 냅니다. 객관적인 사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세상사 힘든 일은 죄다 나한테만 생기는 것 같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세상 모든 것을 다 포용할 것 같다가도 기분이 나빠지면 잠깐의 여유도, 조그만 이해도 하지 못하는 밴댕이 소갈딱지가 되어버리죠.  



 

 프랑스의 사상가 파스칼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파스칼의 사상을 집약적으로 표현한 <팡세>의 서두를 보면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고요.


 인간이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데 왜 하필 갈대일까요?

 갈대는 자연 가운데서도 가장 약한 존재일 거예요. 어디 의지할 만한 것도 아니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릴 뿐입니다. 광활한 대지 앞에서 그저 연약하기 그지없는, 존재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 역시도 불어오는 바람 따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리듯이 어제는 저런 걱정, 오늘은 이런 걱정에 마음을 주체할 수 없나 봅니다.  


 인간은 예로부터 자연을 동경하며 살아왔습니다. 햇볕이 일분이라도 없다면 이미 지구 상에서 사라졌겠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잃어버린 길을 찾았고 달님을 보며 소원을 빌었죠. 모진 비바람을 견디면서 찬란하게 피어나는 무지개를 보며 희망도 가졌고요. 성난 대지가 갈라지고 물난리라도 나면 잘난 줄 알았던 인간들이 스스로 나약함을 인정하며 자연에게 자비를 구해야 했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는 건 하나의 갈대처럼 가냘픈 존재이지만 '생각'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는 자연을 넘어 우주까지 포용할 수 있는 위대성도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늘을 날고 싶은 생각이 비행기를 만들었고요, 달나라에 토끼가 있는지 알고 싶은 호기심이 달에 발을 디디게 만들었습니다.

 현실의 세상에서 인간은 한 점도 안 되는 존재이지만 생각의 힘으로는 우주를 품을 수 있으니 멋지지 않습니까?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연약함과 위대함을 모두 지니고 있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인데 바라보는 기분은 저마다 시시때때로 달라집니다. 별일 아닌 것에도 세상 종말이 온듯한 호들갑을 떨기도 하죠.

 심지어 기분이 안 좋을 때면 기분 탓이라고 여기기보다는 삶 전체가 잘못되어 가는 것처럼 느낍니다. 마치 인생이 몇 시간 만에 나락으로 떨어질까 봐 안절부절못합니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갑자기 나빠지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도 말입니다.


 기분이 안 좋을 때는 그 기분에 머물지 말고 그냥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억지로 피한다고 피할 수 없습니다. '생각 안 해야지' 하면 할수록 오히려 감정에 휩싸여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기분이 나쁠 때는 감정을 가만히 내버려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지나갑니다. 잠시 몸을 움직이고 다른 일로 마음을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미 일어난 일에 극단적인 최악의 시나리오를 써가며 스스로를 비련의 주인공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고요. 지나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적이 대부분이었잖아요.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갈대이지만 그렇다고 굳이 비참하게 생각하며 산다면 인생, 무슨 낙이 있겠어요? 생각하기에 따라서 우주를 품을 기운이 있는데도 제대로 한번 써보지도 못한다면 너무나 아깝지 않을까요?

 기분 나쁜 일이 닥치면 이 일이 일 년 뒤에도 나에게 중요할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그렇지 않다면 생각의 눈덩이에 짓눌리지 마세요. 설령 심각한 상황일지라도 마음은 무거워지지 말고 가벼워져야 합니다.

 

 지금껏 우리는 기분에 따라 사소한 일에 참 많이도 목숨 걸고 살았습니다.

 범우주를 품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니 보다 크게, 보다 멀리 내다보며, 보다 멋진 생각을 가져보도록 해요. 시시각각 멋대로 돌변하는 기분이란 녀석, 절대 믿지 마시고요.  


작가의 이전글 누구에게나 이유는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