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물건을 하나 살 때도, 오늘은 뭘 먹을까 메뉴를 고를 때도 고려하는 대상 중에 하나가 가격 대비 성능 정도, 가성비입니다.
가성비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지불하고 지불한 만큼 대가는 적절한지 아님 그 이상을 바라는 합리성을 뜻합니다. 지나치면 욕심으로 비치기도 하죠.
가성비는 효율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제품이 가격에 비해 비교적 내실이 있어도 가성비가 좋다고 하듯이 말입니다.
자동차라면 연비와 성능을, 컴퓨터라면 사양을, 배터리라면 충전량을 따지고 비교합니다.
외식할 때도 마찬가지죠. 가격에 비해 '더 푸짐하고 맛있는' '기왕이면 깔끔하고 친절한' 식당에 가려고 합니다.
마트에서 운동 겸 물건을 사는 게 나을까,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시간을 아끼는 게 나을까를 따지고, 조금 돌아가더라도 기름값이 싼 주유소를 찾는 것도 가성비 때문입니다.
이렇듯 삶의 모든 영역에서 투입한 비용 대비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을까를 고민합니다.
가성비는 소비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요즘은 '관계'에도 가성비를 따집니다.
사람 관계에서 가성비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쏟아붓는 관심과 애정에 비해 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만족이 얼마 정도인지를 뜻합니다.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수고와 노력이 따릅니다. 일상에서는 사람에게 상처 받고 관계에 피로를 느낄 때가 적지 않습니다. 대신 인터넷으로 눈을 돌리죠. 수많은 SNS에 이름도 얼굴도 모르면서 '좋아요'를 누르며 진짜 관계를 대신한 가상의 관계를 맺습니다. 익명성과 편리성이 부담을 줄여주니까요.
살면서 가끔 가성비를 따져야 할 곳은 ‘나 자신’ 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놀 때는 놀고, 공부할 때는 공부만 집중하라고 합니다.
쉴 때는 푹 쉬고, 일할 때는 일에만 신경 쓰라고 하죠.
먹을 때는 든든히 먹고, 운동할 때는 흠뻑 땀 흘리며 하라고 합니다.
대접받고 싶으면 먼저 대접하라는 가르침도 있었고요.
나는 가성비가 좋은 사람인가? 한번 따져봅니다.
눈은 책을 향하지만 머릿속은 온갖 잡생각이 가득합니다. 수업 중인데 쉬는 시간만 기다리고요. 시험이 닥치면 그제야 정신 차려 공부를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앉아 있는 시간 대비 성적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일을 하려고 하면 좀이 쑤시고 틈만 나면 시계를 쳐다봅니다. 해는 아직 중천인데 퇴근 시간만 기다리고요. 마감이 임박해서야 허겁지겁 서두릅니다. 일한다고 쏟아부은 시간 대비 실적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운동을 하려면 제대로, 열심히 해야 효과를 보지만 몇 번 하다 스스로 많이 했다며 쉬는 시간이 더 많고, 다이어트를 한다며 밥을 확 줄이지만 밥 대신 간식거리를 야금야금 먹으면서 안 빠진 살을 원망합니다.
양보하려면 통 크게 하고, 배려하려면 상대방이 기분 좋게끔 해야 합니다. 관계를 좋게 하려면 노력이 필요한데 대충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얻을 수 있는 게 뭐 없을까 잰 적도 많았고요.
오늘도 페친, 인친, 트친과 이웃을 맺고 친구가 됩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들락거리며 좋아요, 공감을 보내지만 언제든지 미련 없이 연을 끊어도 부담 없는 관계만 쌓입니다. 이른바 '티슈 인맥', 편리함도 좋지만 사람의 체온을 느끼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물건 살 때만 가성비를 따지지 말고, 나 자신의 가성비부터 올려야겠습니다.
놀 땐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즐기고 일할 땐 미친 듯이 빠져들고요.
운동을 해도 야무지게 하고, 다이어트를 해도 얼렁뚱땅 하는 시늉만 내지 않고요.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고 오늘은 오늘 일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관계를 위한 가성비도 진지하게 고민을 합니다.
사람과 사람 관계란 필요할 때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가 아닙니다.
마음을 주고받다가 때로는 실망을 하죠. 이해와 실망, 배려가 오랜 시간에 걸쳐 믿음과 신뢰로 쌓여야 진정한 관계가 됩니다.
관계만큼은 가성비를 따지기보다는 내가 조금 손해 본다는 마음으로 대합니다. 사람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며 관계를 맺는다면 삭막한 현실에 마음 둘 곳이 생기니까요.
바쁘고 지친 삶에 시달려도 서로를 온전히 알아주는 관계가 있다면 그들 두 사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관계입니다.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는 친구가 1명만 있어도 인생은 헛살지 않았다고 하잖아요.
타고난 외모는 바꿀 수 없고 물려받은 재능 또한 보잘것없어도 하늘을 품는 마음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가성비만 따지고 재다 소중한 관계를 잃고 있는 건 아닌지, 관계 속에 나를 잃고 있지는 않는지 따져봅니다.
시시콜콜 연락을 안 해도 가끔 만나도 마음이 편한 친구,
영혼 없는 좋아요 보다는 타당한 쓴소리를 부담 없이 주고받는 관계,
거절을 당해도 100% 공감할 수 있는 사이.
가성비 따질 필요 없는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나의 가성비는 어느 정도입니까?
나는 가성비가 괜찮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