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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Sep 28. 2020

우리에게 수다가 필요한 이유

요즘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판데믹으로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감염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재택근무로 전환하면서 시설비, 관리비 등 경비 절감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끝나더라도 비대면, 재택근무는 대세일 거라고 전망합니다.  


재택근무가 비단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실시된 것은 아닙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도 재택근무를 시행했던 회사가 있었습니다. 1993년 미국의 IBM은 재택근무의 선두주자로 불릴 만큼 적극적이었죠. 원격근무를 도입해 재택근무를 장려하던 IBM은 24년 만인 2017년 전 직원을 사무실로 불러들였습니다. 낮은 수준의 업무 생산성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IBM 뿐만 아니라 야후와 HP도 재택근무를 시행했지만 부정적인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자 재택근무 철회를 선언합니다.

당시 야후의 내부 메모가 외부로 유출되어 주목을 받았는데요, 내용은 "일부 훌륭한 의사결정과 통찰력은 복도와 카페에서 서로 만나고 즉흥적으로 팀 회의를 하는 데서 나온다"였습니다. 직원이 모이지 않고 근무하는 방식이 갖는 결함을 지적한 거죠.  




다음 내용을 보면 어떤 단어가 연상되시나요?


어려서도 떱니다.

수업을 마치고 10분이라는 짧은 쉬는 시간, 한 친구 책상 주위에 아이들이 몰려듭니다. 어제 있었던 일, 신상, 아이돌, 누가누가 썸 탔다느니.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재잘거리는 소리로 정신이 없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합니다.

회사 휴게실에서 또는 옥상에서 삼삼오오 모여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때로는 술 한잔 하면서, 커피숍에서 쏟아지는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길 가다가도 합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면 밤 사이 안녕하신지 인사를 하고 오랜만에 만났다면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소식을 주고받죠. 친한 사이이면 우연이 반가워 짧은 만남을 아쉬워합니다. '이따 만나서 이야기해' 약속까지 잡아버리죠.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서도 합니다.

아줌마 둘이서 지나가는 사람이 입은 옷을 보며 저 옷 이쁘다. 어디서 샀을까? 머리스타일이랑 안 맞네 등등 둘이서 품평회를 합니다. 하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샛길로 빠졌다가 도로 돌아오니까요.


빨래하다가도 합니다.

몇 세대 전 우리 어머님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곳이 빨래터였어요. 남편 흉도 보고 몰랐던 이웃 소식도 듣고요. 다들 고된 시집살이를 잠시 잊을 수 있었던 휴식처이자 놀이터였죠. 빨래하다 싸우기도 하고 빨래하다 더 친해지고요. 지금은 볼 수 없는 광경입니다.


나이 들어서 할아버지들도 합니다.

내기 장기를 두면서 며칠 전 00가 세상을 떠났다느니, 이제 몇 명 남지 않았다느니, 다음은 누구 차례인가? 한 많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막상 가려고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정작 장기판에서는 한수 물리니 마니 옥신각신하다 장기판을 엎어버리는 일도 종종 있죠. 그럴 땐 영락없는 아이처럼 보입니다.


처음 만난 할머니들도 합니다.

난생처음 보는 사이이지만 이제 곧 같이 갈 처지라 그런지 금방 친해집니다. 살아온 여정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때론 눈물도 흘리고요. 만난 지 30분도 안됐는데 오랜 친구처럼 스스럼이 없습니다.


이쯤 되면 이 녀석은 운명과 같지 않을까요?

정답은 수다입니다. 수다는 때와 장소, 연령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수다,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 또는 그런 말이라고 정의합니다. 뜻이 그리 좋지는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교육을 받습니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라고 하죠.

또한 "침묵은 금이다"라고 했습니다.

말 한마디로 사이가 틀어지고 혀 한번 잘못 놀러 낭패 보는 경우를 허다하기에 말조심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수다는 여성들이 쓸데없는 말, 영양가 없는 말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으로 여겨 무시하고 부정적으로 취급했습니다. 아직도 수다는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수다는 과연 쓸모없고 하찮은 것일까요?  




야후와 IBM은 재택근무를 철회하면서 '워터쿨러 효과 (water cooler effect)'를 강조했습니다.

'워터쿨러 효과'란 사무실 한쪽 또는 휴게실에서 차, 커피 등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여기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사내 의사소통이 활발해진다는 이론입니다.

바로 소통의 중요성, 자유로운 소통방식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론입니다.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강의하는 주입식 교육, 형식에 얽매인 틀에 박힌 회의 분위기.

생각만 해도 답답하지 않으세요?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채 SNS로 의견을 주고받는 비대면 근무.

감정이라고는 없는 딱딱한 메시지로 내려오는 지시, 늘 같은 형식의 보고, 뭔가 빠진 것 같지 않나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모르는 부분에서 고민을 합니다. 생각도 되지 않아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갑니다. 친구와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며 무심코 이야기를 주고받다 모르는 문제의 답을 찾곤 했습니다.

진도는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뱅뱅 맴돌기만 하는 회의. 다들 기지개를 켜고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집니다. 회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잡담을 나누다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도서관이나 회의실이 아니어도 자유로이 이야기하는 곳은 어디든 문제 해결의 장소가 됩니다.


마음이 심란하고 되는 일이 없어 속상할 때 친구들과 모여 주저리주저리 한바탕 수다를 떱니다. 결론은 필요 없습니다. 하는 말에 맞장구 쳐주고 같이 흥분하고 같이 깔깔 웃다 보면 마음이 후련해집니다.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도 그러셨잖아요? 남편도, 시어머니도 오지 않는 빨래터에서 동병상련의 처지를 한탄하고 서로 위로하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빨래터는 고된 시집살이를 잠시 잊을 수 있는 안식처였죠. 또한 중요한 소식도 얻는 정보의 공유지이자 소문의 진원지이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다를 합니다. 수다를 잘해서 인정받고 잘되기도 하지만 수다를 잘못 떨어하는 일이 꼬이고 실패하는 경우도 빈번합니다. 근거 없는 소문, 악의적인 비난, 지나친 허풍, 거짓말이 아니라면 수다는 잘 떨면 남을 기분 좋게 만듭니다. 덩달아 자신도 행복해집니다.


요즘 TV나 유튜브를 보면 말 잘하는 사람이 잘 나가지 않습니까? 프로그램 제목이 아예 수다인 것도 있고요. 토크쇼라는 것도 입담 좋은 진행자와 게스트가 한바탕 수다를 재미있게 떠는 방송입니다. 인기 많은 MC 중에 과묵하고 무게 잡는 분이 어디 있던가요?

같은 주제를 더 재미있게 전달하고 수다로 분위기를 업시키는 사람이 인기를 얻고 성공하는 시대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재택근무 게다가 주말이 되어도 어디 마음 편히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몇 개월째 이어집니다. 더군다나 언제 종식될지도 모르기에 더욱 답답합니다.

마음 편히 카페에도 가지 못하고 사람들과 어울려 술잔 부딪혀본 지도 가물가물합니다.

매일 보는 가족들끼리는 나누는 대화는 늘 똑같습니다. SNS로 처리하는 업무도 익숙해진 지 오래입니다.

사랑하는 가족, 능수능란한 일처리.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이리 허전한 건 왜일까요?  


입은 하나, 귀는 두 개라 말하기보다는 많이 들으라고 하지만 살다 보면 아무 말잔치를 하고 싶을 때가 있기 마련이죠.

오늘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나 수다를 마음껏 떨고 싶어 집니다.

그땐 그랬지, 우리 때는 말이야, 꼰대끼리 모여 아재 개그를 해대가며 서로 비웃고 구박도 하면서요.

오늘 한때 보기 싫었던 상사, 껄끄럽던 동료도 만나 잡담이라도 주고받고 싶어 집니다.

지나고 나면 별일도 아닌 걸로 토라질 필요 없으니까요. 야단 듣고 서먹하던 그때가 그리워질 때가 있네요.


부담 없이 나누는 수다와 잡담 속에 소통이 원활해집니다. 소통은 조직의 혈맥과 같다고 하잖아요.

자유로이 수다를 떨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얻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거리낌 없는 한바탕 수다가 마음을 환기시키고 사람 간의 정을 돈독케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수다가 아닐까요?

부담 없이 떠는 수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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