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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Nov 12. 2020

오늘 하루 대체로 무난하십니까?


 예년 같으면 수능이 끝날 때인데 올해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판데믹으로 다음 달로 연기되었죠.

 수능 하면 우선 엿과 찹쌀떡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교회, 사찰, 성당을 비롯해 전국에 용하다는 명소는 부모님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요. 내 아이의 합격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시험은 아이가 치는데 떨리고 밤잠을 설치는 사람은 대체로 부모님들 몫이죠.

 수능이 끝나면 수능 출제 위원장이 TV에 나와 올해 수능에 대해 브리핑을 합니다. 대체로 이런 내용이죠.

 “올해 수능은 예년과 비슷한 난이도로 교과서를 충실히 공부했다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대체로 무난한 수준으로 출제되었습니다.”

 대체로 무난한 수준이란 말에 당사자인 학생들은 입이 튀어나오지만 부모들은 안심을 하죠. 대체로 무난하다고 하니 내 아이는 다 풀었을 것만 같아요. 알고 보면 다 똑같은 조건인데 말입니다.


 바쁜 일상을 시작하는 아침, 나가기 전에 오늘의 날씨를 챙겨보곤 합니다. 비가 올지, 바람이 쌀쌀할지 몰라 스치듯이 봤는데요. 간단명료한 글자가 눈에 확 들어옵니다.

 ‘대체로 맑음’. 이게 전부였습니다.

 간혹 '흐림, 곳에 따라 비’라면 헷갈리죠. 비가 온다는 건지 안 온다는 건지, 곳은 대체 어디를 말하는 건지.

 '대체로 맑음'. 그럼 별 걱정 없이 집을 나섭니다.


여행은 다녀온 친구에게 여행이 어땠냐고 물으면 ‘대체로 좋았어’라고 해요.

소개팅을 하고 온 녀석에게 느낌을 물으면 ‘대체로 괜찮았어’라며 웃습니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동료에게 준비 상황을 물으면 ‘대체로 무난하다’는 대답이 나오네요.

그러고 보면 '대체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대체로 괜찮다. 대체로 좋았다. 대체로 무난했다. 대체로 힘들었다.




 '대체로’라는 말을 찾아보니까 한자더라고요. 대체(大體)는 ‘전체로 보아서’라는 의미라고 나와 있습니다.

 시험 문제를 분석해 보면요. 어려운 문제, 쉬운 문제, 지문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는 문제, 점수를 거저 주려고 낸 문제가 섞여 난이도를 만듭니다. 그럭저럭 풀만하면 대체로 무난하다고 하죠.

 날씨도 바람이 불었다가 아주 쪼금 비가 오는 듯하지만 맑음이 많으면 대체로 맑다고 여기듯이 말입니다.   


 '대체로’라는 말에 왠지 호감이 갑니다. 절대 완벽하지는 않아요. 완벽함에서 몇 % 부족하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괜찮은 상태, 그래서 약간은 인간적인 면이 있다고 할까요. 조금은 여유가 느껴지고 편안한 거 같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크게 넓게 보면 꽤나 괜찮은 그런 의미로 다가오니까요.


 매사가 철두철미한 사람보다는 한 번씩 실수도 하고 가끔 허당 짓도 하는 사람이 대하는데 부담이 덜합니다. 완벽함에는 숨이 막히는 듯한 뉘앙스가 있잖아요. 굉장히 완벽한 사람보다는 대체적으로 괜찮은 사람이 좀 편하고 끌립니다.

 완벽하지 않은 면이 오히려 인간적이잖아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는 하기 마련이니까요.


'무난하다'라는 말이 있어요. 무난(無難). 별 어려움이 없다는 뜻이죠. 이렇다 할 단점이나 흠잡을 만한 것이 없고 성격 따위가 까다롭지 않고 무던한 걸 의미합니다.

'대체로'가 '무난하다'를 만납니다. '대체로 무난하다'

듣는 순간 마음이 좀 놓이지 않으세요?


 취업 면접을 보기 위해 몇 날 며칠을 준비했습니다. 특히나 다대일 면접이나 압박 면접처럼 부담감이 많은 면접은 긴장할 수밖에 없죠. 크게 심호흡을 하고 소신껏, 아는 대로 대답을 하며 나 자신을 최대한 어필을 했습니다. 힘들 거라 각오했는데 다행히 대체로 무난하게 본 것 같아요. 그럼 나중에 어찌 될 값에 일단은 안심이 됩니다.


 대체로 무난하다는 말에는 좀 더 채울 가능성도 있고요, 누구나 하는 실수 한 번쯤은 너그러이 감싸주는 느낌이 들어요.

 하루 동안에도 짜증 나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에 어디 내 마음에 쏙 들 때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보다는 대체로 기분이 좋은 하루였다면 그걸로 오늘은 충분히 괜찮은 날일 거예요.  


살아가다 보면 '대체로’라는 말이 빠질 수 없는 게 우리의 인생 같아요.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에 빠져 앞날이 캄캄해도 시간이 지나가면 대체로 해결이 됩니다.

기다리다 보면 대체로 누군가를 만나고, 하다 보면 대체로 원하는 순간이 찾아오고요.

아픈 기억도, 쓰린 상처도 세월이 흐르면 대체로 아물고 지워집니다.


 어느 날 백마 탄 왕자가 불쑥 찾아와 나에게 사랑 고백하는 로맨스는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이고, 로또 1등이 되어 인생 역전되는 쇼킹한 일은 신문에서나 보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잠시 부러워할 뿐입니다.

 그보다는 애써 준비한 일이 무난하게 마무리되고요, 큰일이 생겨 가슴이 철렁했는데 다행히 무난히 넘어가면 그걸로도 마음이 놓이고 살맛이 납니다. 그러니 대체로 무난한 게 제일이지 싶어요.   




일사천리, 파죽지세, 일취월장. 늘 이런 인생이 어디 있겠어요?

살다 보면 좌절도 겪고 상처도 받지만 훌훌 털어 버리고요,

건강하게, 많이 웃고, 오늘 일을 잘해 나가면 대체로 무난한 삶이 되지 않을까요?

욕심 좀 줄이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면 덤으로 대체로 무난한 사람이라는 소리도 들을 거고요.


좋은 일 이면에는 나쁜 일도 있고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희로애락이 뒤섞인 게 세상살이잖아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인생길이지만 대체로 무난하다면 그걸로 충분히 괜찮은 인생 같은데 말입니다.

올해도 이제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새해 소망을 모두 이루지 못했지만 다들 건강하고 하는 일 제대로 해 왔고 어려워도 견뎌내며 지금까지 왔다면 올해는 대체로 무난한 한 해 아닐까 싶습니다.


무난한 하루, 무난한 사람, 무난한 인생. 대체로 무난하다는 말에 바짝 긴장했던 마음이 놓입니다.

오늘도 대체로 무난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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