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감의 기술 Nov 26. 2020

빈 접시, 빈 의자

비움의 깨달음


 탁자 위에 빈 접시가 놓여 있습니다. 동그만 모양에 눈에 띄지 않는 디자인이지만 접시는 모습을 달리합니다.

 맛있는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가 나오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과 함께 군침을 돌게 합니다. 다들 음식에만 정신이 팔려 접시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어버립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했지만 정작 접시는 눈길 한번 받지 못합니다. 그저 묵묵히 음식을 떠받들고 있을 뿐이죠.

 담긴 음식을 비우고 흔적만 남은 접시는 깨끗하게 씻겨 다음을 기다립니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도 역시나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접시의 존재가 가장 빛날 때는 음식이 담겨 있을 때인가요? 음식이 담기길 기다리며 비어 있을 때인가요? 담긴 음식을 다 먹고 흔적만 남아 다시 비어 있을 때인가요?

 저마다 아름다움과 가치가 묻어나지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접시는 오늘도 자신의 역할을 해나갈 뿐입니다.


 공원 벤치에 빈 의자가 있습니다. 지금은 비어있는 의자이지만 이 의자에는 아련한 추억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나란히 의자에 앉아 손을 꼭 잡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함께 하자는 약속을 하고요, 절대 헤어지지 말자는 맹세도 합니다. 의자는 두 연인을 말없이 지켜봅니다.

 삶에 지친 이가 의자에 걸터앉아 긴 한숨을 내쉽니다. 한두 방울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니 곧바로 흐느껴 울기까지 합니다. 의자는 울음이 그칠 때까지 그저 기다려줍니다.

 천진난만한 아이가 의자에 올라타고 장난을 칩니다. 아이의 엄마는 흐뭇한 미소로 바라봅니다. 아이가 의자가 부서져라 쿵쿵 굴려도 의자는 불평 한번 하지 않습니다.

 세월이 흘러 연인들은 자리에 일어나 각자의 길로 헤어집니다. 삶에 찌든 이가 힘겨운 걸음을 일으켜 세상으로 당당하게 들어갑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이제 의자에 앉은 엄마 손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접시라고 해서 음식을 항상 담을 수는 없습니다. 때가 되면 비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음식은 상할 거예요. 음식을 담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깨끗이 씻겨 다음을 기다립니다. 담고 채우고 비우고 또 비우는 일상의 연속입니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앉을자리가 없어 서있는 사람이 생깁니다. 바람에 지는 낙엽도, 날아가는 새들도 앉았다 가기도 하고요. 꽉 찰 때가 있으면 텅 빈 때도 있기 마련이죠. 비어 있으면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누군가를 기다리면 되고요. 빈 의자는 오늘도 그 누구든 상관없이 채우고 비웁니다.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고 채울수록 꽉 채우고 싶은 게 사람 욕심입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오히려 화를 불러오기도 하고요.

비워야지, 비워야지 하면서도 꼭 쥔 손에서 놓지 못하고 끙끙 가슴앓이를 합니다.


한평생이라 해봤자, 천수를 누려봐야 기껏 100년 남짓인데 욕심부리지 말고 가진 것에 감사하자, 늘 이렇게 다짐하면서도 말처럼 그리 쉽지 않습니다.

사는 게 담고 채우고 넘치고 그러다 비우고 하다못해 버리는 일의 연속임을 알면서도 말이죠.


접시도, 의자도 비어 있을 때가 있듯이 사람도 좀 비어 있어야지요.

비어야 좀 쉴 수 있고 생각이라는 것도 할 수가 있습니다.

비울 줄 알아야 채우는 즐거움을 알고요, 가지는 고마움도 느낄 수 있습니다.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고. 사는 게 늘 이러지 않았나요?

늘상 있기만 하면 해내려는 열정도, 가지려는 성취도 없을 거고요.

부족함을 채우려는 의지도, 비우고 사는 동경도 모를 겁니다.

하긴 그렇다고 맨날 없으면 그것도 꽤 곤란하지만요.


어쩌면 비움이 채움보다 아름다운 것인지도 몰라요.

여백이 많을수록 그릴 수 있는 공간은 더 많아지고, 여백의 미가 그림을 더 아름답게 해 주잖아요.

비어있는 공간이 있어야 쉴만한 자리가 있고 비어있는 시간이 있어야 일의 능률도 오르는 거니까요.

비움으로 오히려 새로운 걸 채울 수 있고요, 더 많은 걸 가질 수 있습니다.

이 깨달음을 얻고 나면 비우는 게 어렵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깨달음의 시간까지 얼마나 걸릴지가 문제이지만 말입니다.


사물의 본질이나 이치를 알아 몸에서 절로 나오게 되는 이 깨달음의 느낌표는 언제쯤 얻게 될까요? 이 역시도 먼저 비움부터 시작합니다. 일단 오늘만이라도 좀 비워볼까요?

작가의 이전글 2021년 달력을 넘기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