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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Jan 01. 2021

머릿속에 컴퓨터 기능이 있다면?

 요즘은 다들 컴퓨터를 항시 들고 다닙니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은 전화, 카메라뿐만 아니라 지도, 지갑도 들어있고요, 그것도 모자라 컴퓨터를 통째로 넣어버렸습니다. 검색은 기본이고 웬만한 문서도 작성이 가능합니다. 오늘 찍은 사진을 비롯해서 며칠 전, 몇 년 전에 찍은 사진이 있고요, 스마트폰에서 작성한 문서는 컴퓨터와 자동으로 연동됩니다. 세상 참 많이 편해졌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작업이 가능한 세상입니다.


 한날 컴퓨터를 열어보면 내 문서 안쪽에 수십 개의 폴더가 있습니다. 폴더 안에는 몇 년 동안 작업하며 쌓아둔 파일이 가득한데요, 제때 정리하지 못해 제멋대로 쌓인 파일들이 규칙도 없이 뒤죽박죽 뒤섞여 있습니다.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 하나씩 열어봅니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작성한 문서가 있습니다. 초안이라고 써둔 문서가 같은 것만 여러 개 있고요. 언제 작성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파일도 자리를 차지합니다. 여기저기서 다운로드한 자료와 수정한 문서들도 한가득 쌓여 있습니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 뭐가 중요한지 작성한 나 자신도 헷갈립니다.


 하지만 자동으로 정렬하기 버튼을 누르면 이름, 종류, 날짜, 형식 순으로 내가 정해주는 기준에 따라서 단번에 정리를 해줍니다. 내가 원하는 기준에 따라 또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리곤 파일을 모두 선택할 수도 있고요, 불필요한 건 깔끔하게 비울 수도 있습니다.



 

 컴퓨터로 작업하면서 머리를 싸맵니다. 중요한 문서는 밤을 새가며 자료를 찾고 작성합니다. 머릿속에 그려놓은 대로 작업하다 어느 순간 꼬일 때가 있습니다. 이게 좋은지 저게 나은지 갈등도 생기고요. 화가 난 상사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마저 불편합니다. 혼자 전전긍긍하며 머릿속에서 헤매기 일쑤입니다. 한번 꼬인 일과 감정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워지고 이 작업을 제대로 끝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설령 일은 어찌어찌 끝을 맺더라도 흐트러진 마음을 진정시키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잠시 쉬면서 컴퓨터의 기능이 사람 머릿속에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단 업무적인 면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랬다 저랬다 마음을 뒤집고요, 사람에게 화나고, 일에 짜증 나고, 삶에 지쳐 억한 감정이 쌓입니다.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고 원망을 달고 살고, 오지도 않은 미래를 보며 걱정하고 불안에 떱니다. 별의별 감정들이 뒤엉켜있어 심란할 때도 많습니다.

 안 그래야지, 그만 생각해야지 하는 이런 생각만 쌓아도 태산보다 높을 것 같습니다.


 머릿속 생각들을 조건에 따라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정리하고 싶을 때가 있죠. 그보다 아예 싹 비우고 싶을 때도 있고요. 컴퓨터를 처음으로 리셋하듯이 말입니다. 모든 고민들, 고통들, 짜증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것들이 모조리 없어지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은, 그러고 싶을 때가 어디 한두 번이겠습니까.


 컴퓨터에 있는 기능들 가운데 빌려오고 싶은 것이 너무 많지만요, 그중에 우선 전체 선택 기능이 탐이 납니다. 짜증, 원망, 불안, 걱정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선택하고요, 미련 없이 휴지통에 비우고 싶습니다. 나쁜 마음을 치워주고 정리하는 게 흐트러진 마음을 다 잡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그게 힐링 아닌가요?  


 감정뿐만 아니라 머릿속에 엉켜있는 갖가지 난제들, 선택지가 많아 판단도 안되고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누가 정리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는 정렬하기 기능을 클릭합니다. 중요도, 최신순. 하나의 기준으로 한 줄로 세우다 보면 잃어버린 두서도 좀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기만 하면 많은 도움이 될 텐데 말입니다.


 백업도 필요하지 싶습니다. 아무리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힘들었던 기억이라도 지나고 나면 추억으로 되돌아볼 수도 있고 이 험한 세상을 지금까지 버텨온 흔적이니까요. 컴퓨터는 알아서 백업을 해주듯 있어야겠죠?   




 사람 생각이나 마음 같은 거를 원하는 대로 정렬하고 알아서 착착 비워주는 그런 기능. 미래에는 나오지 않을까요? 알고리즘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입력되어 있을 테니 내가 좋아하게끔 정리도 해주고 치워주고 할 테니 편할 것 같습니다. 이러기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밤을 새워 고민도 하고,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을 전전긍긍하며 하나씩 풀어내면서 생각이 크고 넓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렵다 싶으면 알고리즘이 알아서 정리를 해버리면 언제나 똑같은 사고에 똑같은 결론에 똑같은 생활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사람인 내가 사는 건지, 알고리즘이 사는 건지 분간이 안될 것 같고요. 흔히 말하는 인류가 인공지능에 지배당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하니 섬뜩해집니다.   


 잠시 딴생각에 빠졌다가 뒤죽박죽 된 작업을 다시 시작합니다. 자료 하나를 더 찾아보고 문맥을 읽고 고치며 머리를 굴리는 행위야말로 가장 인간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실수도 하고 가끔은 뻔뻔스러워지기도 하고요. 걱정과 불안에 떨지만 그럼에도 이겨내며 살아가는 게 인간의 모습이겠죠. 실수는 누구나 하는 것이고 실수를 하면서 발전을 해왔으니까요.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다 잠이 들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새해가 밝았습니다. 불과 하루 만에 1년이 바뀐 오늘이지만 그래도 새해인 만큼 몸과 마음을 경건하게 하려고 합니다. 며칠 지나면 흐지부지되겠지만 우선은 스스로 나쁜 마음을 치워주고 정리하고 흐트러진 마음도 다시 잡아봅니다. 새해 소망도 빌어가면서요. 이게 평범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삶이니까요.





P.S 덧붙이는 새해 인사

2021년 올해는 신축년입니다. 우직한 소의 한걸음 한걸음이 만리를 간다는 우보만리의 자세로 한해를 맞이해봅니다. 이 글을 읽는 브런치 작가님들께 신축년 삼행시로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축년 올해는 신나는 일상을 되찾는

복받은 한 해가 되어

중 내내 즐겁고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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