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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Jan 04. 2021

눈으로 말해요

육안과 심안에 대해

눈으로 말해요, 살짜기 말해요. 남들이 알지 못하도록 눈으로 말해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눈으로 말해요>라는 노랫소리가 마음을 잔잔하게 합니다. 노래를 듣다가 우리 몸에 눈이 없다면 불편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눈으로 말하라고 하니 '눈으로 말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 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눈에 불을 켤 때가 있습니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을 때, 아들 녀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무슨 딴짓 하나 싶을 때, 연놈들이 뭔 짓 하나 지켜볼 때. 놓치면 안 되니까요. 그리고 하나 더, 이 추운 겨울에도 최전방에서 있는 군인 아저씨들도 눈에 불을 켜고 나라를 지킵니다.


눈을 피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잘못한 일이 들통날까 싶을 때, 무서운 상사가 불호령을 내릴 때, 길을 가는데 깍두기 아저씨들이 몰려올 때. 얼른 이 상황을 피하고 싶습니다. 괜히 눈을 마주쳤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까요. 하나 더 있네요. 혼자 맛있는 거 먹다가 들켰을 때.


눈이 저절로 감길 때가 있죠.

달콤한 게 입안에서 사르르 녹을 때, 좋아하는 향기를 맡을 때 또는 사랑하는 연인과 입맞춤할 때도 그렇습니다. 그 좋은 느낌이 달아나지 않게 붙들고 싶어서 눈을 감습니다. 그치만 아무리 그래도 수업 시간만 하겠습니까?  


눈을 질끈 감을 때도 있습니다.

분해서 울 때, 무서울 때도, 주사 맞을 때도 질끈 감고요, 못 볼 걸 봤을 때도 그렇겠다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굴 표정이 어떤지는 대부분 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놀란 얼굴, 망설이는 얼굴, 애절한 얼굴, 화난 얼굴, 기뻐하는 얼굴, 슬픈 얼굴까지. 얼굴이라고 하지만 귀나 코는 별다른 역할이 없습니다. 입은 올렸다 내렸다 정도가 전부고요. 눈 하나가 놀라고 망설이고 애절하고 화나고 기쁨과 슬픔까지 다 표현을 합니다.  


눈은 감정을 바꿔주기도 합니다.

눈물로 아픔과 억울함, 분노를 씻어내어 주고요, 눈웃음으로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마음을 얻습니다.

말을 안 해도 눈빛 하나로 알아서 기게 만들 수도 있고요.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을 비우곤 합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 속담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닌 듯합니다. 그만큼 신체에서 중요한 감각기관 중 하나이자 외모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크다는 의미겠죠.

사람을 만나면 우선 눈부터 마주쳐야 합니다.

첫인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요, 가장 먼저 보는 곳이 눈이죠. 눈빛 하나에 자신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자신 없어 머뭇거리는 것도 다 보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도 눈을 뜨고 눈 맞춤부터 해야 합니다. 상대를 눈으로 볼 때면 내가 상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죠. 눈을 회피하면 무슨 죄지은 마냥 꿀리기도 합니다.

부당함을 이야기할 때도, 억울함을 호소할 때도 피하지 말고 눈부터 쳐다봐야 합니다.

이러고 보면 좋든 싫든 눈을 똑바로 뜨고 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직시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니까요.  


얼굴에 있는 눈, 육안(肉眼)이라고 하죠. 근데 눈은 얼굴에만 있지 않습니다.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잖아요.

세상을 바라보는 데에도 눈이 중요합니다. 마음에 있는 눈, 심안(心眼) 말입니다.

내 인생을 내가 보고 싶은 대로만,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합니다. 설령 안 좋은 것이라도 내가 바꿔서 보기를 원하죠. 그렇게 늘상 보면은 내 스타일에 맞는 내 인생이라는 게 꾸려집니다. 그게 좋아 보일지는 몰라도 인생을 객관적으로 볼 때는 어디 그렇습니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 때로는 상대방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요, 세상 일이 뜻대로 안 될 때는 나 자신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눈도 가져야 합니다.


심안, 즉 마음의 눈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심안을 뜨게 되면 사람과 사물을 살피고 분별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게 되니 그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래서 나이 들어 노안이 찾아오는 것은 심안에 눈 뜨라는 의미라고 하는데 그럴듯하다 싶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지 말고요, 안 보인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고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보는 대로 바로바로 반응하지 말고 보다 넓게 보다 멀리 보는 안목으로 오늘을 살아가야죠.


오늘은 무엇을 보고 있나요?

눈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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