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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30. 2020

남이 하는 거는 다 쉬워 보입니다만

실은 여러분도 대단하십니다


 터키 아나톨리아 중부에 ‘고르디온(Gordion)'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생소한 지명이지만 한 번쯤은 들어봤을 고르디아스 매듭을 알고 있다면 '아하' 하실 겁니다.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아스 매듭을 끊은 역사의 현장이 바로 고르디온입니다.

 농부의 아들이었던 고르디아스가 프리기아의 왕이 된 기념으로 자신의 마차에 아주 복잡한 매듭을 묶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예언을 남겼죠.

"매듭을 푸는 사람이 세계의 지배자가 될 것이다"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매듭을 풀기 위해 애썼지만, 복잡해도 너무 복잡하게 묶여 있었기에 아무도 풀 수 없었습니다. 정복 길에 나섰던 알렉산더 대왕은 매듭 앞으로 다가가더니 바로 칼을 꺼내어 단번에 매듭을 잘라버립니다.

 알렉산더의 대왕의 이 같은 행동을 두고 후세의 우리는 문제를 발상의 전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듣고 보니 참 쉬워 보입니다.

 근데요, 어쩌면 알렉산더라는 무소 불위의 대왕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만약에 이름도 없는 저 같은 병사가 단칼에 잘랐다면? 온갖 비난에 다시 묶으라며 닦달을 당하지 않았을까 싶고요, 자칫 목숨이 날아갔을는지도 모릅니다.


 서로 달걀을 세워 보려고 내기를 하는 중입니다. 동그란 달걀이 세워질 리가 있겠습니까? 다들 조심조심 세우려고 기를 쓰는데 잘 될 턱이 없습니다. 막판에 콜럼버스가 등장합니다. 그러고는 달걀의 한끝을 깨뜨려 탁자 위에 보란 듯이 세워 놓습니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 다들 야유를 퍼붓습니다. 그런 건 나도 한다면서요. 그러자 콜럼버스가 그럽니다.

'참 나. 남이 하는 거 다 쉬워 보이지.'

 그러자 누군가가 콜럼버스를 향해 빈정대며 말합니다.

'신대륙은 당신이 아니어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발견될 거였어.'

 거기에 대고 콜럼버스가 한 말

'그래, 남이 하는 건 다 쉬워 보일 거야.'




 남이 하는 거 보면 쉬워 보이죠. 만만해 보입니다.

 아이들 초등학교 운동회에 가면 학부모들의 달리기가 있습니다. 몇몇 학부모들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섭니다. 막상 달리기가 시작되면 그 몇몇 사람이 꼭 넘어집니다. 한두 사람은 출발과 동시에 앞으로 넘어지고 한두 사람 정도는 커브를 도는데 미끄러집니다. 그런 모습이 운동회 분위기를 띄우고 웃음을 줍니다. 한편 ’어찌 저리 못 뛸까? 아무리 나이 들어도 저것밖에 안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아이 앞에서 멋지게 1등 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출발과 동시에 총알처럼 튀어나간… 것 같은데 몸이 말을 안 들어요. 마음은 결승선인데, 몸은 아직 출발선이네요. ’이게 아닌데’ 하며 이를 악물고 젖 먹던 힘을 쥐어 짜내는 순간 다리가 풀려 꼬꾸라집니다. 본의 아니게 운동회에 웃음보따리를 한 아름 선사했습니다.

 근데요 넘어진 사람들이 학교 다닐 때 운동을 못했느냐 하면 아니죠. 왕년에 자기가 좀 달렸던 기억은 있습니다. 잘했던 기억은 있는데 그때와 지금은 몸이 천지차이죠. 발이 마음을 못 따라가니까 넘어집니다. 세월을 무시하고 만만하게 보다가 혹독한 대가를 치른 거죠.


 남이 하는 일을 쉽게 보며 아주 쉽게 쉽게 말하곤 합니다.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어 기껏 갖다 놨더니 음식 가지고 탓하는 사람이 있어요. 음식이 짜니 맵니 하면서요.

 입만 가지고 일을 하시는 윗분이 있어요. '라.. 떼는 말이야'하며 일을 알아서 척척했다나 뭐라나. 그런 사람은 꼭 입으로만 지시를 해요. 아니 무슨 일이 10분 만에 어떻게 결과물이 뚝딱 나오나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상사는 귀신같이 내 실수를 집어냅니다. 부하직원은 부러울 정도로 뛰어나 아니꼬울 때가 있습니다. 수시로 고개 숙여야 되고 나 자신이 위축되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이런 말을 합니다. ’다 때려치우고 식당이나 하지 뭐’.   


 음식 가지고 뭐라고 하면 거기에 대고 한마디 하면 됩니다. ’니가 만들어 보라고!’

 입만 가지고 떠드는 윗분도 알아요. 그럴 수 없다는 것을요, 근데 그 습관 함부로 못 버립니다.  그러니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갑니다.

 사람들은 식당이나 하지 뭐, 그러는데 먹는 장사가 진짜로 힘들어요. 식당 뒤편에 가서 장사 준비하는 사람들 봐보세요. 꼭두새벽부터 준비하는 정성이 장난이 아닙니다.

 만만하게 보다가 큰코다칩니다. 운동회 때 '그 까이 꺼 달리면 되지 뭐' 하다 보기 좋게 나자빠진 것처럼 말이에요.




 알렉산더 대왕처럼 세계 정복은커녕 내 집도 정복 못했고, 콜럼버스처럼 신대륙은커녕 쌈박한 아이디어 하나도 발견하지도 못했습니다. 게다가 고작 몇십 미터 달리다 넘어지기도 하고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넘어졌던 그 아빠 엄마들이 다시 일어납니다. 일어나서 꼴찌지만 끝까지 달립니다. 그 누구를 위해 달리겠어요? 아들딸을 위해서 달리는 겁니다. 그러니 만만하게 보이는 부모님들, 알고 보면 참 위대합니다.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요? 사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아주 지루한 일상을 그 지루함 자체로 살아내는 것이 엄청나게 힘들고 어려운지 올해 톡톡히 알게 되었잖아요. 코로나 그 녀석 때문에 말입니다.

 매일매일 큰 기복 없이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그게 정말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더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낸 것도 대단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들이 사는 건 쉬워 보이지만 알고 보면 모두가 만만치 않은 일상을 살아갑니다. 맡은 바를 매일매일 조금씩 멋지게 해내며 살아내는 일, 그 어려운 거를 다들 잘 해내고 있습니까? 그럼 오늘 하루 성공하신 겁니다.

 어제를 살아냈고 지난 주도 살아냈고요. 그렇게 오늘도 삶을 이어가니까요.

 남이 하는 거 다 쉬워 보입니다만 실은 여러분들도 대단하신 겁니다.   



사진 출처 : <알렉산더가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다>, 베르텔레미(1743~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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