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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Jan 23. 2021

중간이 좋다, 중간에게 관심을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당당하게 가장 먼저 1등이 들어옵니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사람들은 찬사와 존경을 아끼지 않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모두 결승선을 통과했는데 아직 한 선수만이 힘겹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꼴찌입니다. 포기할 법도 한데 끝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메달은 고사하고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들어오는 꼴찌에게도 아낌없는 박수와 격려를 보냅니다.

 그러나 1등과 꼴찌,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열심히 경쟁했던 중간을 향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30년 만에 모인 졸업 기념행사장입니다.

 뽀얀 피부와 여드름이 공존했던 얼굴은 주름과 잡티로 변했고 앳된 소년은 중년의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혈기왕성했던 선생님은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가 되셨습니다. 몇십 년 만에 만난 친구와는 잠시 멈칫하다 이름을 듣고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얼싸안고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만 선생님은 우리들을 기억 못 하십니다. 기억하는 학생이라고는 반에서 1,2등 하던 친구와 반장. 그리고 말썽만 피우면서 꼴찌를 도맡아 하던 녀석입니다. 중간에서 허우적대던 나머지 제자들은 가물가물하신가 봅니다. 하긴 매년 50-60명씩 새로운 아이들의 담임을 맡으셨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입니다. 꼴찌도 가끔 기억합니다.

 물건을 사도 1등 제품부터 찾습니다. 친구를 사귀어도 1등 하는 친구라면 부모님이 펄쩍펄쩍 뛰며 더 좋아하십니다.

 1등 하는 선수는 언론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합니다. 세상이 이러하니 '2등은 의미 없다'라며 다들 1등을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꼴찌를 아련하게 쳐다보며 '꼴찌에게도 희망을'이라며 위로와 격려라도 해줍니다.  


 중간은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아니 존재 자체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학교 성적이 중간이면 머릿수만 채우는 데 의의를 두고요.

 대회를 나가도 중간을 하면 환호와 갈채는 고사하고 조용히 짐을 싸서 나와야 하죠.

 인구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계층은 중간층인데 중간을 향한 관심은 선거 때 잠시 반짝하고는 없는 듯합니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한다고 하지만 실은 1등만 기억하는 건 사람들입니다. 근데 중간이 없다면 의외로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대표적인 사회문제는 양극화입니다. 잘 사는 사람은 더욱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점점 빈곤에 시달립니다. 중간, 중산층이 많아야 경제도 잘 돌아가고 나라 경제도 튼튼해집니다만 중간인 허리가 줄어드니 다들 팍팍한 살림에 힘겨워합니다.


 머리가 아프거나 복잡하면 바깥바람이라도 쐬려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다리가 아프거나 못 움직이면 앉아서 책을 보거나 컴퓨터 게임이라도 할 수 있고요. 하지만 신체의 중간인 허리가 아프면 꼼짝도 못 합니다. 앉아 있지도, 심지어 누워도 불편합니다. 산책은 고사하고 책도, 게임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중간이 가지는 장점을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군대 가면 줄을 잘 서야 한다고 하죠. 줄을 서는 게 비단 군대뿐이겠습니까? 백화점에 특가 세일할 때도, 설 추석 열차 예매할 때도, 하다못해 식당에서도 줄을 잘 서야 합니다.

 빛의 속도로 달려가 맨 앞에 당당하게 줄을 섰는데 그 줄이 아니면 졸지에 꼴찌가 됩니다. 그렇다고 맨 뒤에 줄을 서면 언제 내 앞에서 잘릴지 모릅니다. 줄이 잘못되더라도, 줄이 바뀌더라도 부담 없이 줄을 갈아탈 수 있는 중간이 대처가 가장 빠릅니다. 언제든 만회할 여지가 많으니 중간이라고 실망할 이유는 없습니다.


 1등은 불안합니다. 언제 이 자리를 뺏길지 모르니까요. 1등을 놓치면 허탈해하며 우울감에 빠집니다.

 2등, 3등은 아쉬워합니다. 1등을 차지해보려고 눈에 불을 켭니다. 여유도 없고요, 1등 못하는 자신을 한심하다고 자책도 합니다.

 꼴찌는요? 미안하지만 희망이 별로 없습니다. '하면 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라고 격려하지만 꼴찌가 중간이라도 오르는 것도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죠.


 중간은 일단 부담이 없습니다. 1등 못했다고 허탈해하지도 한심하다고 자책해 본 적도 없습니다. 공부를 좀 안 해도 떨어질 여지도 별로 없고요, 우연히라도 조금만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른 티가 팍팍 납니다. 그러니 올라갈 희망이 있습니다. 노력에 따라서는 치고 올라갈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죠.


 혼자보다는 함께여서  좋다고 합니다. 중간은 넉넉함이 있습니다.

 1등으로 앞서가다 중간으로 처지기도 합니다. 이들을 진한 동지애로 따뜻하게 품어줄 수도 있고요. 꼴찌가 정신 차려 중간까지 올라오면요, 꼴찌의 노력을 진심으로 놀라며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게 중간입니다.

 혼자 앞서가는 사람을 부러워만 하지 말고요, 뒤처진 사람들을 챙겨볼 줄 아는 넉넉한 마음, 중간이 두터울 때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등이 빛나는 이유는 꼴찌가 아니라 중간이 많기 때문입니다. 중간이 없다면 1등이 그렇게 주목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조연, 그보다 많은 엑스트라가 주인공을 받쳐주기에 주인공이 빛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능성과 다양한 변신이 가능한 중간.

양극화의 해결도, 고령화, 저출산의 해결도 중간이 많아야 합니다.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중간, 중산층이 든든해야 합니다.

허리가 튼튼하면 나라의 앞날이 밝습니다.

사람도 허리가 튼튼해야 가정에서 사랑받고요, 관계도 원만해집니다.


1등에게 찬사를 보내도 좋습니다. 꼴찌에게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와 함께 중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모두가 살맛 나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등에게는 박수를 보낼 때, 꼴찌에게는 희망을 말할 때

중간에게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중간이 잘 살아야 나도 살고 가정도 살고 나라도 잘 사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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