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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Feb 09. 2021

잃어버린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기까지

우리 우리 설날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새해의 대표적인 이 동요는 해마다 두 번 듣습니다. 새해 첫날에 한 번, 설날에 또 한 번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새해 인사도 두 번 주고받습니다. 이미 약 한 달 전 2021년 첫날에 나누었던 이 인사를 설날이 되면 새해 첫날이 또 왔다며 한 번 더 주고받습니다.   

 



 ‘설날’의 ‘설’은 시간적으로 한 해가 시작되는 새해 첫날, 다시 말해 ‘한 해를 처음으로 시작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새해 첫날인 설을 양력설과 음력설, 신정과 구정이라고 불렸던 설날 두 번을 지냅니다. 언제부터 이랬을까 궁금해집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묵은해를 보내며 1월 1일을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 첫날로 맞이합니다. 새해 첫날 신정은 공휴일입니다. 그러니 전날 자정에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타종 소리를 듣고 밤을 지새워도 다음날 부담이 없습니다. 새벽 일찍 일출을 보러 산으로 바다로 갈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신정 연휴가 3일이었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참 좋았겠다 싶습니다. 반면 음력설은 구정이라 명명했습니다. 공휴일도 아니었고요, 잠시 동안 ‘민속의 날’이라고 불리며 본연의 이름을 갖지 못한 명절이 지금의 설날입니다.


 설이 두 번 있지만 설다운 설은 설날입니다.

 민족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조상께 차례를 올리고 성묘를 지내며 어른께 세배를 올리는 날은 설날입니다.

 동네 곳곳에 뜻깊은 설날을 잘 보내시라는 현수막이 나부낍니다. 언론 매체에서는 고속도로 정체 구간을 알려주는 방송이 실시간으로 나오고, 최신 영화를 비롯한 특집 방송이 이어지는 날도 설날입니다.

온 국민이 대이동을 하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해후를 나누는 날, 그동안 잊었던 조상들께 잘 봐달라고 차례를 지내는 명절이자 정겨움이 넘쳐나는 날이 설날입니다.

 그러나 설날이 오늘날 우리에게 오기까지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온갖 수난을 당한 역사가 있습니다. 설날은 우리 민족의 암흑사를 함께 겪었습니다.  




 설날을 쇠었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신라시대인 488년이라고 합니다.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설은 추석과 더불어 오래된 전통이자 가장 큰 명절이었습니다. 그런 설날이 국운이 기울자 점점 입지가 위태로워집니다.

 1898년 1월 1일, 공식적으로 설날이 폐지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에 의해 태양력이 공식 역법으로 도입되었기 때문입니다만 설날 전통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대로 열리고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나라를 합병한 후 전통문화를 말살시키는 정책으로 설날과 같은 세시 명절을 억압했습니다. 메이지 유신 때부터 태양력을 도입한 일제는 음력설을 없애버렸습니다. 양력 1월 1일은 새롭고 진취적인 의미로 신정(新正)이라 부르는 반면 음력설은 오래되고 구태의연해서 폐지한다는 의미로 구정(舊正)이라 불렀습니다.  


 그럼에도 조선인은 음력설이 되면 조선 상점은 2-3일 문을 닫고 관공서 직원은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설날을 지내기 위해 학교에 출석하지 않는 아이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음력설에 지방민들에게 노역을 하게 하고 학교는 수업을 늦게 하거나 시험을 치르게 하는 방법으로 방해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효과가 없자 방앗간의 조업을 금지시키고 설빔 입은 조선인들에게 먹물을 뿌렸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음력설 폐지는 조선인들에게 주권 상실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기에 음력설은 일제 강점기 동안 저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20년 대 일제의 경제적 수탈 정책에 맞선 물산장려운동은 음력설에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에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을 계기로 우리의 것은 우리의 손으로 조선 물산을 장려고 저~’라며 운동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일제의 탄압이 강해질수록 신정은 왜놈들이 정한 명절이라면 더더욱 지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구정 때 몰래 조상에게 술 한 잔 올리고 성묘를 하는 것을 식민 지배에 항의하는 운동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이 염원하던 해방은 되었지만 설날은 명예는커녕 이름도 찾지 못했습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여러 공휴일을 지정하면서도 음력설은 제외했습니다. 우리 민족과 큰 관계가 없던 크리스마스는 공휴일로, 신정은 3일간 연휴로 지정했습니다. 오히려 음력설은 '우리 민족의 수치’라고 표현하며 철저히 무시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도 별반 차이 없었습니다. 설날에 하던 모든 행사는 양력설에 하도록 유도하였습니다. 당시 캠페인이 ‘허례허식, 이중과세를(새해를 두 번 쉬는 것) 하지 말자’라며 음력설을 추방하려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일제 시대에나 했던 방앗간 조업 단속을 다시 하고, 구정 때마다 했던 임시 열차의 증편 운행을 금지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984년 12월에 설날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뜨겁자 음력설을 공휴일로 지정했지만 명칭은 설날이 아닌 듣고 보도 못한 ‘민속의 날’로 정했습니다. 공휴일로 지정되자 온 국민이 민속의 날을 더더욱 설날로 여기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1989년 2월이 되어서야 민속의 날을 '설날'로 부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설날을 인정한 해입니다.

 일제 식민 시대와 군사 독재 정권 동안 수난을 받아오다 100년이 지난 후에야 우리 민족의 전통인 설날을 되찾았습니다.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설날은 설날이 아니었습니다. 설날이라는 이름이 너무 따뜻하고 친숙하여 우리 역사와 더불어 오랫동안 함께 해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는 민족의 아픔과 수난을 고스란히 겪었고 일제와 군사 정권의 탄압을 이겨낸 모진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설날이 더 포근하게 느껴지고 훈훈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숱한 아픔을 겪고 이겨낸 민족의 DNA가 이 나라 국민들처럼 설날에도 심겨 있으니 말입니다.

 설날 이름을 지켜낸 아름다운 선조들에게 고마움의 인사도 빠뜨리면 안 되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작년에 닥친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올해 설날은 역사상 처음으로 5인 이상의 가족이 모이지 못하는 명절이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받아들여야겠지만 설날이 갖는 의미와 넉넉한 마음만은 잃지 말았으면 합니다. 온갖 어려움을 이겨낸 꿋꿋한 설날의 기운을 받아 우리 모두도 이 어려움을 이겨내리라 믿으니까요.


 뿌듯한 마음으로, 자랑스러운 기운을 담아 다시 한번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우리 설날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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