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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Feb 17. 2021

적당한 거리의 무관심, 그 적당함이란?

적당한 거리두기는 예의입니다

 길을 걷다 보면 늘 제자리에 서 있는 나무를 만납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보기도 하고요. 공원을 산책하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산을 오르면 무수히 많은 나무와 마주합니다.  

 시커먼 매연을 뿜어대는 공장 한구석에도, 차들이 쉴 새 없이 다니는 도로가에도, 울창한 숲이 우거진 산에도 나무는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멀리서 보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보이지만 어느 나무도 꼭 붙어 있지 않습니다. 나무는 나무끼리 항상 적당한 거리를 지킵니다.  




 비단 나무뿐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도로에 차들이 밀려 도무지 움직일 기미가 없습니다.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짜증이 밀려오는 순간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급히 달려갑니다. 사고 난 차량을 견인할 견인차도 보이고요. 안전한 거리를 확보했다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더라면 사고를 피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자 턱밑까지 차올라왔던 짜증은 조심해야지 하는 경각심으로 바뀝니다.  


 일상에서도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보고 듣고 즐길 수 있습니다.

 글이 마음에 들어서, 책이 너무 재미있다고 눈앞에 바짝 갖다 대면 읽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멀리서 보면 하얀 종이에 점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가까워야 알아보고, 좀 멀어야 보인다면 병원부터 가보시고요.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때도 다를 바 없습니다. 그림 같은 경우도 제대로 감상하려면 한발 물러나서 보라고 합니다. 작품의 짜임새와 구성, 작품의 형태와 크기를 먼저 보려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감상을 시작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연애를 막 시작해 사랑이 불타오를 때는 방금 끊은 전화를 다시 하고, 돌아서면 또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알게 되고 정이 쌓이면 연애할 때의 닭살 애정은 자칫 속박이 되기 쉽습니다.

 아이가 공부할 때는 관심이라는 이름하에 옆에 바짝 붙어 있으면 아이는 부담만 느낄 거고요.

 둘도 없는 친한 친구라도, 마음을 터놓는 사이라고 해도 매일 연락하며 지낼 수는 없습니다. 평소 적당한 거리를 두다가 만나야 진한 반가움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소중한 사이일수록 적당한 거리의 무관심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너무 가까워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멀어서도 안 되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 그 적당함은 어느 정도여야 좋을까요? 정해진 규칙이나 수식은 있다면 도움이 될 텐데 말입니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는 사람 사이에 거리가 필요하다면서 그 범위를 이렇게 정하고 있습니다.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으되 상대 영역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 거리, 간섭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방해하지도 않는 거리가 적당하다고 말합니다. 서로가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봐 주자고 합니다.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는 언제나 함께할 수 있습니다.

 힘차게 걸어도 부딪히지도, 한 바퀴 빙글 도는 춤을 춰도 걸리지 않습니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져도 방해받지 않습니다.

 힘들면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요,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줄 수 있습니다. 눈물 흘리면 조금 더 다가가 닦아줄 수 있는 거리, 기쁜 일이 있으면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나눌 수 있는 거리이니까요. 사랑하면 꼬옥 안아줄 수 있습니다.  


 너무 가깝지 않아야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사고로부터 나를 지키려면 안전벨트를 매듯이 사고 나지 않으려면 나부터 안전거리, 적당한 거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꼭 붙어 있으면 숨 막히고, 늘 가까이 옆에만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질려 버립니다. 피를 나누고 살을 맞대는 가족이라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인간관계 역시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서만 보면 가슴이 전해지는 따뜻함을 건넬 수 없고요, 안 보이면 안 보일수록 그동안의 쌓았던 관계는 시들시들해지기 마련입니다.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지켜보는 거리,

언제든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는 사람 사이의 거리.

적당한 무관심으로 적당한 거리에서 늘 바라보는 사이가 오래오래 이어집니다.

관심은 가지되 그렇다고 방해하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말입니다.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는 적당한 거리의 관계,

그런 예의를 갖추는 관계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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