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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Apr 08. 2021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데

 '즐거운 곳에서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네.'

 즐거운 나의 집 노래 가사 첫 소절입니다.

 듣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만 노래는 노래일 뿐, 현실은 즐거운 곳에서 나를 오라고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라고 해도 나라에서 거리를 두고 사람들을 만나지도 말라고 하니 그럴 일은 더더욱 없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소중한 줄 몰랐던 1년 전만 해도 집은 안식처였습니다.

 해가 저문 지도 한참 지난 늦은 밤, 지친 몸을 끌고 가면서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간절했습니다.

 ‘집에 가서 얼른 누워야지’

 ‘집에 가자마자 뻗어야지’.

 집은 일에 찌들린 우리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기운을 회복시키고 에너지를 충전시켜 주었습니다.




 인간은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동물인가 봅니다. 영어에 'home body'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우리말에는 집돌이, 집순이가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평일을 열심히 일하고 휴일 하루는 온전하게 뒹굽니다. 친구가 불러도, 재미있는 일이 있다 해도 만사가 귀찮아 다음으로 미룹니다. 바삐 정신없이 움직이는 삶 가운데 아무 생각하지 않고 딱 하루만, 하루 종일 자고 또 자고 단지 숨만 쉬며 죽은 듯이 지낼 수 있는 곳은 집뿐입니다. 집이 아니고서는 어디서도 할 수 없는 홈바디입니다.  


 화장은 고사하고 세수조차 안 해도, 흐트러진 모습으로만 있어도 눈치 볼 필요 없는 공간, 개개인의 삶의 영역이자 가장 신성하고 사적인 장소가 우리 집입니다.

 부대끼는 가족이 귀찮을 때가 있고, 잔소리하는 식구에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만 막상 떨어져 있으면 그리워지는 게 가족이요, 집입니다. 이 때문에 '집 나가면 고생이다’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여행은 고사하고 봄꽃 나들이, 여름 물놀이, 가을 단풍 구경, 겨울 눈꽃 축제 모두 그림의 떡인 1년을 보냈습니다.  

 식당에도 가지 못하고 헬스장도 문을 닫았습니다. 휴가도 언감생심이었고요. 직장도 재택근무로 바뀌고 아이들 학교는 원격 수업으로 대체되어 집에만 머무는 시간과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집에 콕 박혀 있어야 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배달음식도 집밥 그릇도 쌓여가고 홈트니 뭐니 하면서 구입한 물건들도 자리를 차지합니다. 갈수록 비좁아지는 공간, 이제 집은 먹고 자고 쉬는 안식처를 뛰어넘어 피난처가 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집이 좋은 집돌이, 집순이라고 해도 1년 넘게 집안에만 있어야 하니 집을 둘러싼 사방들이 답답하고 밖으로 나가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합니다. 조금 더 집에서 머물라고 합니다. 갑갑하지만 또 참으라고만 하니 언제 이 상황이 끝날지 모르는 막막함으로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집을 나서기 전, 집에 들어올 때.

멀리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할 때나 바로 집 앞 가까운 곳을 다녀올 때도 이런 인사를 나눕니다.

"갔다 올게."

"다녀왔습니다."


하루 일과에 지치면 다들 그러잖아요.

'집에 가고 싶다'라고 말입니다.

돌아갈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집은 나를 받아주고 품어주고 나와 하나가 되어 숨을 쉬는 안식처이니까요.

나만의 안식처가 본의 아니게 피난처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집'하면 단연 편안함입니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했습니다. 역병이 창궐하는 이 시국에 괜히 집 나갔다가 감염이라도 되면 개고생 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다들 집을 더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집에만 있는 시간을 더 견뎌야 하니 짜증만땅이 됩니다만 그래도 그런 집이 얼마나 고맙습니까? 이렇게라도 생각하면 숨통이 조금은 트이지 않을까요?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조차 찾기 힘든 요즘이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내 집만큼 편한 곳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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