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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Apr 23. 2021

마음 비우기, 아직도 버퍼링 중이십니까?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들, 언제 넣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반찬들이 꽉 들어찬 냉장고를 보며 결심을 합니다. 냉장고를 싹 비우겠다고 말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음식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주구장창 해먹으면서 또 한 번 다짐을 합니다. 딱 먹을 것만 사자, 쟁여두지 말자. 하지만 그런 다짐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집안 구석구석에 자질구레한 짐을 쌓아두지 않겠다고, 쓰잘데기 없는 물건들로 널널한 선반을 정신 사납게 채우지 않겠다고 다짐을 합니다만 그것 역시 번번이 무너지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새 컴퓨터를 구입합니다. 포장을 뜯고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전원을 켭니다. 첫 화면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찰나 같은 순간이면 충분합니다. 깨끗한 상태의 컴퓨터가 켜지는 속도는 그야말로 빛의 속도, 어마어마하게 빠릅니다. 덩달아 기분까지 뿌듯합니다. 거침없이 빠른 컴퓨터가 내 앞길도 막힘없이 뻗어가게 해 줄 것 같습니다. 그러다 몇 달 지나면 로딩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마다 다짐합니다. 꼭 필요한 것만, 오늘 먹을 것만 사겠다고 말입니다. 마트를 돌아다니면서 굳은 다짐은 원 플러스 원에 흔들리고 나도 모르게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정육 코너에서 폭탄세일을 한다는 소리가 들리면 전력 질주를 하고, 오늘 마지막 세일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무섭게 손은 주워 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늘도 냉장고를 한가득 채웠습니다. 내일 먹으면 되지 하는 마음과 함께 말이죠.

 인터넷 쇼핑이든 TV 홈쇼핑이든 '빅세일’이라며 오늘 이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다급한 외침은 어김없이 사자 주문에 걸리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사들인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테트리스 하듯이 집안 구석을 착착 채워갑니다. 때가 되면 언제나 그랬듯이 후회는 밀려오고 현타가 찾아옵니다.  


 새 컴퓨터 안에 이것저것들로 가득 차기 시작합니다. 로딩 속도가 갈수록 느려지는 건 컴퓨터가 켜질 때 함께 실행되는 프로그램이 쓸데없이 많기 때문입니다. 몇 개 없던 바탕 화면 아이콘은 언제 만들었는지 기억도 없는 폴더와 바로 가기 사이트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요, 나도 모르게 틈틈이 다운로드한 프로그램은 실행 한번 하지 않은 채 공간만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비우기보다는 어떤 것을 실행할지 고민하느라 버퍼링 중입니다. 더 채우려고 말입니다.


 비운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채우는 건 익숙합니다. 채울수록 신바람도 납니다. 하지만 비워야 새로운 게 들어갈 텐데 어느 순간 필요한 것조차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너무 꽉꽉 채워만 놓았으니까요.  




 마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는 인간. 근데 그 생각은 어제 한 걱정, 그제도 한 근심을 오늘도 하고 있고요, 어제 한 결심은 오늘은 할까 말까 망설이다 흐지부지되기 일쑤입니다. 아마 내일도 이러고 있지 않을까요? 마음 편하게 살아야지, 마음을 비워야지. 굳게 결심했다가도 돌아서면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알 수 없는 내일이 두려워서인지 걱정을 사서 하고 있습니다.

 마음에도 안 좋은 생각으로 꽉 채웠으니 좋은 생각, 즐거운 상상, 흐뭇한 추억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미니멀리즘, 말만 미니멀리즘이지 잘되지 않습니다. 뭐든 비워내야 가벼워질 텐데 말입니다. 그러니 점검이 필요합니다. 다짐의 점검, 마음의 점검을 꾸준히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지럽힌 마음도 점검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껏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채 불쑥 튀어나오는 응어리를 억누르려고만 했을 뿐, 제대로 풀어준 적이 없었습니다. 우선 나 자신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분한 마음이 들어 고함을 지르고 싶던 아픔, 숱한 이불 킥을 날리게 했던 행동, 생각만 해도 치밀어 오르는 분노. 이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감정은 감정대로, 생각은 생각대로 분리시켜 마음을 다독거리며 비워 나갑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고, 지나간 대로 흘려보내고 새로운 꿈을 꾸겠다는 노래 가사를 떠올려 봅니다. 마음의 짐을 버리고 비우다 보면 자신에게 집중할 여유가 생깁니다. 여백이 생길수록 빈 공간이 만들어지듯이 생각을 비울수록 새로운 꿈을 채울 수 있습니다. 비운 공간에 새로운 꿈을 담는 순간 지금의 나는 변화를 시작합니다. 비움으로서 더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습니다. 걷기만 해도 숨이 가쁘고 다리는 천근만근입니다. 그런데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기까지 하면 힘듦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모래주머니를 벗어던졌을 때의 그 기분, 정말이지 날아갈 것 같습니다. 진정 비워낸다는 건 이런 기분 아닐까요?


 수북이 쌓인 먼지를 쓱 닦아내면 깨끗해지는 것처럼 산만하게 쌓인 물건도, 복잡하게 얽힌 머리 속도, 온갖 상념에 뒤죽박죽인 마음도 싹 비워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컴퓨터 포맷하듯이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로딩 속도는 어떠십니까? 아직도 버퍼링 중입니까? 그렇다면 우선 비워보시죠.

 특히 고민한 지 하루 이틀도 아닌 너무 무거운 생각들부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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