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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May 03. 2021

달라도 너무 다른 이달의 운세를 받아 들고

 만물을 소생시킨 봄이 꽃샘추위를 뚫고 우리 곁에 온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의 끝자락에 서있다.

 만물은 푸른 실록을 향해 거침없는 에너지를 뿜으며 자라난다. 1년 중 활동하기 가장 좋은 계절 5월, 그러나 아직도 밖에 함부로 나다니지 못하는 상황이다.

 잔인한 4월을 보내고 맞이하는 계절의 여왕 5월, 파릇파릇한 새싹이 쑥쑥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 일상도, 내 인생도 쭉쭉 뻗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며칠 전 이달의 운세를 보고 있는 친구에게 운세에 왜 그렇게 집착하냐고 물었다. 내가 보기엔 맹신하는 수준처럼 보였으니까. 이 친구의 대답은 의외였다.

 녀석은 매달 첫날이 되면 두 군데 포털 사이트에서 이달의 운세를 본단다. 어떤 내용이 있는지 보면서 그 달 마음가짐을 다지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운세가 좋게 나오면 기분 좋게, 자신 있게 그렇지만 겸손함도 잃지 않으려 하고, 반면 운세가 엉망이면 조심하며 냉정한 마음을 가지려고 한단다. 그리고 한 달이 끝날 무렵 운세가 얼마나 맞는지, 자신이 이달 초에 가졌던 마음가짐을 지켰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듣고 보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포털 사이트에서 무료로 보는 거라 시간도, 돈도 들지 않고, 매달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자세도 괜찮을 듯싶었다. 더군다나 한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보는 시간까지.


 5월 첫날 휴일. 코로나 바이러스는 1년 넘게 거리를 활개 치고 있어 여전히 사회적 거리를 두라고 하니 집에만 머문다. 심심하던 차에 친구 말이 생각나 운세를 찾아본다.

 



 우선 우리나라 대표 포털 사이트 N사의 이달의 운세를 검색했다. 이름은 넣을 필요 없고 생년월일을 기입하고 양력에 클릭하고 태어난 시간대를 선택한 후 확인을 눌렀다. '짜잔~' 운세가 펼쳐졌다. 이달의 운세를 읽을수록 인상이 굳어져만 갔다.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요약하면 취업운이 상당히 불안하다. 애정운도 불안하다. 우울해지는 시기다. 대인운이 약해질 수 있으니 양보해라. 기분이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낭패를 본다. 충동적인 모습으로 재물이 갑자기 나가버리는 일이 생긴다고 나왔다.

 '이걸 굳이 왜 찾아봤을까' 후회막심이었다. 5월 첫날부터 기분 잡치는 소리만 들었으니 말이다.

 유쾌, 상쾌, 통쾌한 일이 생겨도 시원찮을 판에 취업, 애정, 대인, 재물운까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은 다 생길 수 있다는 말 아닌가. 짜증만땅, 이 한 달은 어찌 살아갈까 첫날부터 막막함이 밀려왔다.


 짜증과 씩씩대는 화를 억누르며 다른 포털 사이트 D사로 들어갔다. 이미 나쁜 운세란 운세는 다 경험한 터라 이보다 더 나쁠 수 있을까 하는 반항심과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운세를 클릭했다.

 '이게 웬 열?' 읽을수록 내 눈을 의심했다.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D사가 알려준 운세는 능력을 발휘하고 소원을 이룬다. 가만히 있어도 주위에서 도움을 주고 재물이 들어온다. 뜻하는 바를 넓게 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는 일이 막힘이 없다. 기쁨이 두 배의 시기다. 애정운도 상승한다. 가정에 경사가 생긴다고 선명하게 쓰여있었다.

 내 팔자에도 이런 경사스러운 운세가 있구나 싶었다. 유쾌, 상쾌, 통쾌를 넘어 두둥실 구름을 타고 하늘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근데 가만. 같은 생년월일에 같은 시간대의 사주를 넣었는데 다르다 못해 180도 딴판으로 나오는 이유는 뭘까? 달라도 차이가 크지 않으면 그러려니 할 텐데 이처럼 극과 극으로 나오니 어떤 사이트를 믿어야 할지 난감하다.

 당연히 운수 대통인 D사의 운세만 믿고 가자니 N사의 최악 운세가 신경에 쓰였다. D사가 틀리고 N사가 맞을 수도 있지 않은가? N사에서 양보하고 조심하라는 말은 일반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조언이다. 그렇다고 N사 운세를 믿자니 화부터 난다. N사는 소극적으로, 더 준비하고 양보하라고 하고 D사는 적극적으로 하라고 하니 대체 어느 장단을 춤을 춰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운세를 보는 컴퓨터도 사람을 가리는 건지, 경쟁사 지들끼리 단합해서 악역과 선한 역할을 나눈 건지, 무슨 일이 있을까 호기심에 본 운세가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연말연시뿐만 아니라 중요한 결정이나 우환이 닥칠 때, 혹은 큰일을 치러야 할 때면 사람들은 사주부터 찾고 운세를 보러 갑니다.

 시험을 앞두고 있으면 붙을 수 있는지, 붙을 수 없다면 붙을 방법은 없는지까지 묻고 매달리기도 합니다. 결혼을 하려면 궁합이 맞는지는 물론이고 결혼 전에 조상의 노여움은 없는지를 살핍니다. 집안에 나쁜 운이 있어 이번 일은 틀렸다고 하면 두 손 두 발 빌며 벗어날 방법을 구합니다. 부적 한 장은 기본이고 여러 장을 사서 집안 구석구석에 붙이고 속옷에도 넣고 다니기도 합니다. 몇백만 원 하는 굿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사주팔자에 대한 집착은 유별난 것 같습니다.

 그러니 00 철학관, 00 역술원, 00 도사, 00 법사, 00 선녀까지 수많은 점집과 철학관이 인공지능 시대라는 말을 무색하게 지금도 성행 중입니다. 인터넷에도 00 사주 카페, 00 타로점까지 가세하여 점술과 관련한 사이트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갈수록 첨단화, 현대화로 업그레이드되는 운세 사이트는 찾는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으니 4차 산업혁명 시대가 곧 도래한다는 말이 맞나 싶기도 합니다.


 사주팔자는 분명히 존재하고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은데 그럼 어디까지 알 수 있을까요? 어디까지 맞고,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심심풀이로 보는 사람들부터 절대적으로 맹신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니 똑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직은 사주팔자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니까요.

 사주풀이의 정확성, 알 수 있는 범위와 관련된 의문은 여전히 많습니다.  


 똑같은 시간에 태어난 쌍둥이는 사주팔자가 똑같을 텐데 그럼 똑같은 삶을 살까요?

 동일한 생년월일에 동일한 시간대에 태어난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여럿 존재할 텐데 그들은 모두 동일한 삶을 살아갈까요? 범위를 넓혀 전 세계적으로 보면 같은 생년월일에 같은 시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텐데 그들 모두 국적에 상관없이 같은 인생길을 가고 있을까요? 물론 환경적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하나 그 요인이 미치는 정도 역시 아직은 미지의 영역입니다.

 한 가지 더, 의학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좋은 사주를 받기 위해 자연분만 대신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는 원래의 사주에서 새로운 사주로 바뀔까요? 인위적으로 사주를 바꿀 수 있다면 본연의 사주팔자는 존재 가치가 없지 않은가요?

 아직까지 이에 대하여 명확한 해답은 없다고 합니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단지 참고사항으로, 조언으로 받아들이면 나쁠 건 없다고들 말합니다.

 올해 운세에 액운이 있고 삼재가 들어 고생길이 훤하다고 하면 미리 조심하고 매사를 주의해서 살아가는 게 올바른 처신임은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올해 사주가 좋게 나온 사람은 좋게 나온 대로 그것을 얻기 위해 더 노력하면 되고, 사주가 설령 나쁘게 나왔다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매사에 조심하며 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만 이건 운세와 상관없이 평소에도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입니다.


 심지어 시험에 붙게 해 달라, 악재를 피하게 해 달라, 이사를 가야 되나, 직장을 옮겨야 하나? 사업을 언제 시작해야 하나? 언제 무슨 주식을 사야 하나? 구체적인 사안 하나하나를 사주풀이에 의존하는 사람이 적지 않고 이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시간 낭비, 돈 낭비는 물론 인생까지 통째로 망치는 극단적인 피해 사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하니 도가 지나쳐도 한참을 지나쳤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미리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나 있습니다. 보다 잘 살기 위해 역술을 보러 가고 액운을 피하기 위해 부적을 붙이고 굿을 합니다. 그만큼 삶에 대한 애착입니다.

 그러나 운명은 부적을 몇 장 붙이고 굿을 한두 번 해서 바뀌는 그런 간단한 성질이 아닙니다. 부적 몇 장과 굿 한두 번에 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이 시간에도 운명과 맞서서 악전고투하며 이겨내는 사람들은 뭐가 되겠습니까?


 그나저나 달라도 너무 다른 이달의 운세를 받아 든 나는 어떤 걸 믿어야 할까요? 운세를 보기 전이나 보고 난 뒤나 모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저 조심하며 즐겁게 살자는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다짐만 할 뿐입니다. 이달 마지막 날에 어느 운세가 맞는지, 마음가짐은 제대로 지켰는지 확인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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