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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May 11. 2021

묵묵히 그림자가 되어주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부모 마음, 미리 알게 할 수는 없을까요?

 


 우렁찬 울음소리로 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이던 그날,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누워서 엄마 젖만 먹고 잠만 자고 시도 때도 없이 울어 젖혀도 마냥 이쁘기만 했습니다.

 엉금엉금 기다가 두발로 서서 뒤뚱뒤뚱 걸음마를 하다 넘어져도 아낌없는 찬사와 격려를 보냈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비뚤비뚤한 글자만 써도, 손가락을 쳐다보며 숫자를 셀 때만 해도 나를 전혀 닮지 않은 천재인 줄 알았습니다.

 사는 게 고달파도 이 녀석의 올망 똘망한 눈동자만 쳐다봐도, '아빠, 힘내세요~' 한 마디만 들어도 없던 힘이 불끈 솟아올랐습니다.

 이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이 녀석을 끝까지 지켜줄 거라 굳은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요? 변하지 않는 건 없다더니 흐르는 세월 속에 급변하는 세상처럼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걸 보며 느끼는 뿌듯함도 잠시, 사랑도 애정도 변해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어느새 나보다 더 커버린 녀석을 보면서 인생무상함을 실감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아무리 천금 만금보다 귀하다는 내 자식이지만 커갈수록 속에서는 부글부글 마그마가 끓어올라 터지기 일보 직전입니다. 요즘 대세인 사회적 거리 두기도 이 녀석과는 불가능해서 맨날 부대끼며 살다 보니 사사건건 부딪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우렁찬 울음소리는 툭하면 '싫어, 안 해' 소리가 되었고, 하루 종일 빈둥빈둥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 없어 보입니다. 뒤뚱뒤뚱하더라도 걸으려고 애만 써도 좋으련만 휴대폰 게임에 푹 빠져 꼼짝달싹하지 않는 모습에 열불이 납니다. 천재는 개뿔, 하다못해 지 밥벌이만 해도 소원이 없겠습니다.

 이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나중에도 지금처럼 달라붙어 먹여 살려야 하는 건 아닌가 싶으면 아찔하기까지 합니다.

 겉으로는 애써 백두산이나 한라산처럼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있지만 휴화산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그마에 열불이 더해져 언제 폭발할지 모를 활화산으로 돌변하는 건 시간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이, 엄마. 나처럼 착한 아들이 어디 있다고 그래? 내가 밖에 나가서 뭐 말썽을 부려, 사고를 쳐? 집에서 엄마 심부름도 곧잘 하는데. 솔직히 엄만 나 없으면 어찌 살려고 그래?"

 "아빠는 나 같은 딸이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 나만 한 딸이 또 어딨어? 나니까 아빠한테 이렇게라도 하지, 아빠처럼 고지식한 사람과 같이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하는 거라고는 쥐뿔도 없으면서 그럴싸한 말만 앞세웁니다. 내내 상전 노릇만 하면서도 자식들은 언제나 부모 앞에서 당당합니다.


 부모도 사람인지라 자식에게 한소리 늘어놓습니다. 한소리가 잔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말귀를 알아듣는 시늉만 해도 그만하려 했는데 말이 씨알도 먹혀들지 않아 화까지 내었습니다. 그랬더니 도리어 이 녀석도 따라 화를 냅니다. 나이가 많아도 내가 몇십 년은 더 많은데 절대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이가 없는 것도 잠시, 먼저 토라져 제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 후론 불러도, 말을 걸어도 대답은커녕 아예 투명인간 취급입니다. 그걸로 또 화가 나려다 ‘내가 너무 심했나?’ 후회하기를 여러 번, 결국엔 내가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받아주기만을 기다리는 꼴이 됩니다. 이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나 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된다고 합니다. 지금 세상은 온통 사회적 거리를 두라고 하지만 집에서는 그 거리가 사라집니다. 가족이기 때문이죠. 아무리 가깝고 좋은 사이라고 해도 너무 붙어만 있으면 지내는 게 힘들어집니다.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가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막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절대 하지 않으면서 가까우니까 하지 말아야 될 얘기를 하고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서로 아파하고 서로 후회합니다. 이래서 또한 가족인가 봅니다.


 가끔은 부모도 휴식이 필요합니다. ‘나 좀 내버려 줘!’라고 외치는 자식처럼 부모도 좀 내버려 두면 좋겠습니다만 그러기도 쉽지 않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무게를 하기 싫다고 한들 없어지지 않으니까요.

 자라는 아이의 눈높이는 부모가 맞춰야지 아이는 절대 부모 눈높이를 맞추지 못합니다. 성인이 되고 가정을 꾸리게 되면 모를까 그전까지는 어림없습니다.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마는 자식이 잘못되면 모두 부모 탓이라고 하니 부모 노릇도 참 어렵습니다.

 문득 먹고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에 우리 부모님들은 줄줄이 낳은 아이들을 어찌 다 키웠을까 싶습니다. 부모가 되어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하더니 이제서야 조금씩 이해를 합니다.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고 하죠. 어릴 때는 그저 생각 없이 불렀던 노래였는데 인생 반환점을 도는 나이가 되어서야 부모님의 고마움을 알게 되니 느지막이 철이 드나 봅니다.   




 먼 훗날 이 녀석들도 내 나이가 되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까요? 만약 하게 된다면 그 생각을 미리 앞당겨서 지금 조금이라도 해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긴 나 역시도 부모님 마음을 너무 늦게 알았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피붙이인 부모 자식 간의 관계, 언제 터질지 모를 활화산이 되지 않게 현명하게 잘 해결하는 수밖에요. 어떡하겠습니까?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요, 내 인생에 둘도 없는 선물이니까요.  


 오늘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그마를 담고 이 녀석과 티격태격합니다. 근데 오늘은 뭔 일인지 헤헤거리는 얼굴로 '아빠, 사랑해'라고 합니다. 용돈이 필요해서 일까요? 알면서도 그 말 한마디에 ‘암, 그래도 내 새끼가 최고지!’라며 꿍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립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에 오늘도 묵묵히 아이의 그림자가 되어주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삶의 무게를 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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