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감의 기술 May 20. 2021

얼굴 & 인생을 책임질 나이

매일 아침 세수할 때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그렇게 절망할 정도는 아닌데 카메라에 찍힌 사진의 얼굴은 참 이상하게 보입니다.

누군가에게 카메라로 사진 찍기를 청하게 되면 이런 당부를 하곤 했습니다.

"자~알 찍어 주세요"

내 얼굴을 내가 장담할 수 없어 자꾸 그런 부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진 찍는 분은 빙그레 웃으며

"아이고, 걱정 마세요. 사진 잘 나올 테니 염려 붙들어 매세요."라고 안심시킵니다.


하지만 걱정은 늘 현실이 되어 좌절하고 맙니다.

"사진 잘 나왔네, 실물보다 훨씬 낫네"

보는 사람들마다 생긴 거랑 똑같이 잘 나왔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사진이 영 못마땅합니다. 그렇다고 직접 대놓고 말은 못합니다.

'뭐야? 자기가 그렇게 잘 생긴 줄 알았던 거야?'라는 모종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될 테니까요. 그래도 이상한 건 이상한 겁니다. 사진 속의 늙은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사진 찍기를 꺼려 하는 걸 종종 보게 됩니다. 젊었을 때는 '왜 저러실까' 싶었는데 나이가 드니 나 역시도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얼굴을 볼 자신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카메라 렌즈의 굴절은 도무지 예상할 수가 없어서 사진 찍기가 두렵기까지 합니다. 렌즈는 냉정하기까지 해서 얼굴의 잡티를 샅샅이 포착하여 만천하에 드러내니까요. 어디 그뿐인가요? 주름, 처진 피부, 피곤한 안색, 멍한 눈빛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적나라하게 찾아냅니다.


요즘은 셀피, 셀카라고 해서 스스로 사진을 찍는 시대이니 다른 사람한테 찍어달라고 부탁할 일이 없습니다. 스마트폰에는 얼굴을 자동으로 보정해주는 앱들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 사진을 부담 없이 찍습니다. 보정하는 앱은 주름 제거는 물론 미백 기능, 눈동자를 또렷하게 보이는 기술도 있고요, 주위 배경도 운치 있는 화면으로 다양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찍고 나서 클릭 몇 번으로 몰라보게 달라진 내가 사진 속에서 멋진 폼을 잡고 있습니다. 덩달아 기분도 좋아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보정 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예전 앳된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과 비교하면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링컨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의 일화입니다.

절친한 친구가 링컨에게 아는 지인을 대통령 비서로 추천했습니다. 링컨은 친구의 인격을 믿었기에 그 사람을 채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추천받은 사람을 면접하고는 그 자리에서 돌려보냈습니다.

친구가 이유를 묻자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은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해. 마흔 이후의 얼굴은 스스로 만드는 거야. 그런데 그 사람 얼굴을 보니 진실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어."


'나이 마흔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잘생기고 못 생기고의 잣대로 얼굴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인품을 얼굴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찡그린 인상으로 무뚝뚝한 표정은 깊게 파인 주름이 되고 늘 미소 짓는 얼굴은 얇고 잔잔한 주름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매일같이 찡그리기만 한 얼굴도, 미소가 끊이지 않은 얼굴도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면 얼굴에 깊은 흔적으로 남습니다. 그러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인품을 가졌는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링컨이 대통령 하던 때만 해도 평균 수명이 50년 남짓이었으니 백세 시대로 들어선 요즘은 책임져야 할 나이를 훨씬 더 늦춰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따라 살아온 얼굴에 생기는 주름, 처진 피부 같은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을 막을 도리는 없습니다. 의술이 발달해서 나이 듦의 상징 같은 노화를 성형으로 지울 수 있다고 하지만 완벽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마음만큼은 스스로 가꾸어야 합니다.


마흔 이전의 얼굴은 부모의 유전이 만들고 마흔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만든다고 했습니다.

거짓과 욕심으로 살아가는 얼굴은 불만과 불평, 고집과 시기 같은 감정들이 표정으로 나타나 경계심을 불러옵니다. 반면 부지런히 덕을 쌓은 사람은 그 얼굴에서도 덕이 빛나 주위 사람들에게 믿음을 줍니다.

다행히 사람의 인상은 나이 들면서 바뀔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스스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40대 이후 중년이라도 주위를 생각하는 넉넉함과 여유를 가져야겠습니다.


처진 어깨도 구부정한 허리도 펴고, 무뚝뚝한 인상 대신 입꼬리를 억지로 올려봅니다. 늙어가는 외모는 어쩔 수 없다 해도 표정만은 환하게 지어보는 연습도 해야겠습니다. 일부러 웃더라도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이 생긴다는 말을 믿고 따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감에서 진짜 웃음이 나와 삶을 즐겁게 살아가게 될 테니까요.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나이지만, 팔팔한 청춘은 아니지만 그래도 당당하게 힘차게 살고 싶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얼굴 표정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얼굴뿐만 아니라 인생도 책임을 다하고 싶습니다.

나를 바라보면 찡그렸던 인상에서 잔잔한 미소가 피어나도록 인품을 가꾸어야겠습니다.  




셀프 또는 셀카에 능한 요즘 세대는 사진 찍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해할까요? 이렇게 말하면 라떼는 말이야 라며 꼰대라고 하겠지만 카메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어 어색해하는 마음도 어느새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고 있지만 어쩌겠습니까? 적응하며 가꾸고 살아야죠. 웃으면서 말입니다.

 

찍을 때마다 알아서 보정해 주는 폰 덕분에 주름 하나 없는 매끈한 얼굴, 초롱초롱한 눈동자, 십 년도 넘게 젊어 보이는 사진을 보며 친구는 싱글벙글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이런 감탄을 마구 쏟아냅니다.

"우와, 이것이 정녕 나란 말인가?"

그러자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가 그럽니다.

"야, 야. 바나나 우유라고 그래서 바나나만 100% 들어간 거 아니지? 그래도 바나나 우유라고 그러잖아!"

그리곤 그 친구를 향해 결정타를 날립니다.

"우리 나이는 사진에 나오는 얼굴보다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인품이 더 중요한 법이야.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네가 쏴라!"

역시 인품을 중요시 생각하는 친구 하나는 정말 잘 둔 것 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의 눈높이를 맞춘다는 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