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은 내 손안에 있습니다.
요즘 마스크 없이는 어디라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습니다.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마스크가 필수품이 된 지도 1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실내는 당연하고 실외에서도 웬만하면 마스크를 벗을 수 없으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사람을 만나도 표정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얼굴을 대신해서 희로애락은 물론 다양하고 섬세한 표정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신체기관이 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힘차게 악수를 나누고 뜨겁게 포옹하면서 서로의 진심도, 사람의 온기도 느낄 수 있는 바로 손입니다.
손바닥, 손등, 손가락으로 이루어진 손목 앞에 달린 기관으로 한쪽에 27개의 뼈로 이루어져 있는 손, 인간만이 가지는 유일한 특징이 손이라고 합니다.
손은 인간뿐만 아니라 원숭이, 침팬지 같은 일부 영장류 동물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손이라기보다는 앞발에 가깝다고 합니다. 인간과 달리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닿지 않아 인간처럼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순수한 의미로 손을 가진 유일한 동물은 인간뿐이고, 손은 인간을 동물과 구별 짓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손이 다른 동물처럼 앞발 정도이거나, 애당초 없었다면 인류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감각적인 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손이 있어 연필을 쥐고 글을 씁니다. 요즘은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대신합니다.
물건을 가볍게 또는 세게 자유자재로 쥘 수 있는 기관도 손입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아직까지 따라 할 수 없는 미지의 인간 능력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아름답게 그리고, 악기를 잔잔하게 연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밥 먹을 때도 손은 절대적입니다.
그 말고도 헤아리기 힘들 만큼 손의 능력은 무궁무진합니다.
손이 할 수 있는 어여쁜 일이 있습니다.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일이다. 그 촉감 앞에서 우리는 어떤 공포로부터, 어떤 소름으로부터, 어떤 아픔으로부터 진정되곤 한다."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합니다.
무시무시한 공포 영화를 봐도 누군가와 손을 잡고 있으면 무서움이 덜합니다. 거세게 밀려오는 세파에 견디다 지쳤을 때 누군가의 어루만짐으로 마음이 진정되고 기운을 차리곤 합니다. 그 사람의 온기와 다정한 마음이 내 몸과 마음으로 전해져 안정을 찾게 해주니까요.
어렸을 때 뭘 잘못 먹었는지 배가 아팠습니다. 지금처럼 24시간 갈 수 있는 응급실은커녕 변변한 병원 하나 제대로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럴 때는 엄마 손이 내 배를 어루만져 줍니다. 엄마 손은 약손이었죠. 엄마 손이 닿으면 아프던 배가 금세 낫기도 했습니다. 내 배에 손을 얹고 시계 방향으로 또는 반대 방향으로 살살 문질러 주시면 마음이 평안해지면서 아프던 배가 나은 것 같은, 이 또한 엄마의 온기이자 사랑이었습니다.
이 말고도 손만이 할 수 있는 따뜻한 일이 많습니다.
믿음을 확인하는 약속도, 반가움의 표시로 힘차게 흔드는 악수도 있습니다. 사랑해서 껴안는 포옹의 마무리도 손이고요. 힘들어서, 서러워서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는 행동도 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잘했다고, 감사하다고 힘차게 보내는 박수도 그렇고요. 친한 사이끼리 등을 토닥토닥, 엉덩이를 툭 치는 친근함도 손이 하는 따뜻함입니다.
그런 손이 가끔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화나고 억울해서 부들부들 떨리는 부위도 손입니다.
주먹을 꽉 쥐어 들고 손바닥을 나에게 향하게 한 뒤 가운뎃손가락을 올립니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다들 아실 겁니다. 자칫 주먹다짐으로 이어져 폭력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부끄러워 손으로 얼굴을 감쌀 때도 있고요, 너무너무 기뻐 두 손을 번쩍 들며 만세를 부를 때도 있습니다.
희로애락 모든 감정을 손으로 다 표현할 수 있습니다.
손은 정직하기까지 합니다.
손으로 다양한 문물을 만들어 만물의 영장이 된 인간, 머리뿐만 아니라 손도 인간의 지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기관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인간의 나이나 건강 상태도 손으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손은 표면이 거칠어지고 잔뼈가 드러납니다. 노화 현상으로 아무리 외모를 가꾸어 어리게 보이더라도 손만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비만도까지 알 수 있어 다른 부위를 보지 않고 손만 봐도 그 사람이 살찐 정도를 꽤 정확히 추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손은 운명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미래를 알려준다고도 하죠.
손바닥에 그려진 손금에는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생명선, 어떠한 성향의 두뇌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두뇌선, 감정적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감정선, 목표의식이나 책임감을 나타낸다는 운명선이 그려져 있습니다. 운명을 보여주는 손이 신기합니다.
그럼 운명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제 주먹을 꽉 쥐어봅니다. 생명선과 두뇌선, 감정선과 운명선은 어디에 있나요? 바로 내 손안에 있습니다. 내 운명은 내 손안에 있으니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 운명을 맡길 필요도, 흔들릴 이유도 없습니다.
오늘도 손으로 밥을 먹고, 일을 하며 물건을 집었다 내려놓기를 무한 반복했습니다. 아이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고, 친구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고,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합니다. 손에 가방을 든 채 집으로 향합니다.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검색하며 오늘 저녁은 뭘 할까 생각하면서요.
밤하늘 별이 유난히 빛나는 이 밤.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들이켜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손이 없었다면 맥주는 어떻게 따서 마셨을까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래저래 새삼 고마운 두 손입니다.
손으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담긴 토닥토닥과 손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인 어루만지기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편안해집니다. 더군다나 내 손안에 내 운명이 있으니 자신감도 생깁니다.
요즘 같은 땐 손으로 하는 마음 표현도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마저도 손을 깨끗이 꼭 씻고 해야 하죠.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한 일이니까요.
오늘은 운명을 담은 내 손이 할 수 있는 따뜻한 일, 어여쁜 역할을 누구를 위해 해 볼까요?
따뜻함과 어여쁨이 많을수록 운명도 따뜻해지고 이뻐질 것 같은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