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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May 24. 2021

"아빠, 우리집 가훈이 뭐냐고요?"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선생님이 부모와 함께 하는 숙제를 내주셨다며 내밀었습니다. 숙제는 다름 아닌 우리 집 가훈을 적어오라는 거였습니다.

 '우리 집 가훈이라..'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도 똑같은 숙제를 받은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때만 해도 한 반에는 60-70명의 아이들로 시끌벅적하였고 집에서는 4-5명의 형제가 티격태격하며 살았습니다. 떠드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며 선생님은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습니다.

 밤늦게 들어오신 아버지를 붙잡고 우리 집 가훈이 뭔지 여쭈었습니다. 아버지의 대답은

 "가훈? 우리 집에 그런 거 없는데?" 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죠.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형제들이 같은 숙제를 받았고 학교 숙제는 안 해갈 수 없어 아버지는 잠시 고민을 하시더니 가훈을 급조해 내셨습니다.

 맨날 치고받고 다투는 5남매를 보면서 아버지는 근엄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자"  




 가훈뿐만 아니라 학교에 가면 급훈이 있고 회사에 가면 사훈이 있습니다.

 가훈으로 한집 건너 애용되는 '가화만사성'. 이걸 한자로 써서 액자에 담아 거실 한복판에 걸어두곤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하면 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고진감래' 같은 급훈으로 공부를 독려했고요.

 회사에서는 사회의 시선과 직장 내 분위기를 중요시하여 '인간 중심 경영', '인화단결'도 있고 목표 달성을 강조해서 '근면, 성실', '일신우일신' 같은 사훈들이 걸려 있습니다.


 허구의 세계이지만 수많은 가문이 등장하여 왕좌의 자리를 놓고 피도 눈물도 없는 스토리로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 있습니다. 그 드라마에는 쟁쟁한 가문들이 등장하는데 가문마다 눈길을 끄는 문장과 가훈이 있습니다.

 '겨울이 오고 있다'

 드라마에서 중심 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스타크 가문의 가훈입니다. 아직 겨울이 오지 않았는데도 곧 혹독한 겨울이 닥칠 것이니 대비하자는 의미인데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요즘은 '겨울이 오고 있다'라는 말이 점점 실감 나면서 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자가 나라를 다스리고 권력은 돈에 따라온다 라고 믿는 가문이자 항상 피를 부르는 라니스터 가문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라'라고 외칩니다. 나쁜 가문이라 그런지 듣기만 해도 분위기가 섬뜩해집니다.

 '굽히지 않고 꺾이지 않고 부서지지도 않는다' 마르텔 가문의 가훈처럼 험한 세상에 살아남기 위한 결의를 다져봅니다.


 사회 운동이나 시위 같은 데서도 자신들의 요구를 집약시킨 슬로건은 빠지지 않습니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이나 정당들이 자신의 주장을 간결하게 내세울 때도 슬로건은 맨 앞에 등장합니다.

 수많은 광고나 캠페인에도 슬로건이나 표어가 사용되는 이유, 목표를 확실히 지향하기 위해서이겠죠.

가훈도 사훈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아빠, 우리 집 가훈이 뭐냐고요?"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었는데 아들이 묻는 물음에 다시 정신을 차렸습니다.

 실은 그때까지 우리 집 가훈은 없었거든요. 가훈은 옛날 옛적 어른들이나 쓰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숙제는 잘해가야 하니 저도 아버지를 본받아 가훈을 급조했습니다.

 '즐겁게 살자' 아니면 '재미있게 살자' 같은 걸로 가훈을 정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랬으면 좋겠다고, 진짜 재미있고 즐겁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으니까요. 멋도 모르는 초등학생 아들이지만 그걸 받아 적으면서도 뭔가 이상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공부도, 목표도 재미있어야 능률이 오르고 가화만사성을 위해서는 분위기가 즐겁고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재미와 즐거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고까지 할 정도이니 다들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요.

 '즐겁게, 재미있게 살자'라고 정한 가훈과는 달리 삶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하루하루 버티는 데만 급급하며 살았습니다.  


 인생, 살아봐서 알잖습니까? 지금 20대 30대이든, 60대 70대이든 10년이란 세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금방 가버린다는 사실 말입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즐겁고 재미있게 사는 게 행복이라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다들 그렇게 꿈꾸고 있으면서 오늘도 긴 한숨을 내쉬고 있지 않습니까?   




 한동안 잊고 살았던 우리 집 가훈, '즐겁게, 재미있게 살자'.

 세월이 한참 지났지만 그때 바라 마지않았던 가훈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겨울은 오고 있지만 굽히지도 꺾이지도 부서지지 않고 싶습니다. 그 어떤 환경이 닥친다 해도 그 순간순간 곳곳에 있는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 누리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게, 재미있게 살자'.

 살아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이보다 더 훌륭한 인생 슬로건이자 가훈은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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