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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Jul 05. 2021

오늘 하루 밥값, 5년 뒤의 밥값

오늘 밥값 하셨습니까?

 직장인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거나, 일하는 게 신통찮아 보이면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오늘 밥값은 했냐?"


 지긋한 백수 생활에 오늘도 집에서 빈둥빈둥하는 걸 보다 못한 부모님이 넋두리를 하십니다.

 "밥값 좀 해라. 밥값은 벌어야지."  




 오늘 밥값 하셨습니까?

 무례하게 들리는 질문이지만 사실 '밥'만큼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를 잘 표현하는 단어도 없을 겁니다. 흔히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하듯 말이죠. 우리가 나누는 일상 대화에 '밥'이라는 한 글자에는 밥심 말고도 다양한 뜻이 담겨있습니다.


 '밥'은 단순히 매끼 먹는 음식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가끔은 매일 먹는 밥이 지겹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밥이 아닌 음식으로 몇 끼 먹다 보면 금세 생각나는 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 한 공기입니다. 밥은 당연히 생명입니다.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님이 통화를 하면 제일 먼저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니?" 이 말보다 더 진심이 담긴 말이 있을까 싶습니다. 오랜만에 집에 온 자식에게 따뜻한 집밥을 환한 미소로 짓는 어머니의 마음, 밥은 사랑입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짐이 아쉬워 약속을 잡습니다. "언제 우리 밥 한 번 먹자."라고 하면서요. 당장 같이 밥 먹을 여건이 되지 않아 하는 빈말일지라도 다음을 기약하는 마음으로 '밥 한 번 먹자'라며 헤어집니다. 밥은 약속입니다.


 걱정거리에 휩싸이거나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 "밥이 잘 안 넘어간다"라고 합니다. 밥이 안 넘어가면 큰일이잖습니까? 소중한 사람이 밥이 잘 안 넘어간다고 하면 지금 엄청 힘들어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으며 다독거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밥은 위로입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엉뚱한 곳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번듯한 직장을 놔두고 다른 진로를 고민할 때 이런 말을 듣습니다.

 "그게 밥 먹여주냐?" 밥은 돈입니다.  


 밥은 살아가는 힘이자, 사랑입니다. 밥은 따스함을 품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때론 밥은 잔인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특히 밥이 생계를 쥐락펴락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진상 고객한테 하루 종일 시달려도,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하루에 수십 번 넘게 해야 할 때도,

 소위 갑질에 달달 볶임을 당해도, 이놈의 직장을 당장 때려치우고 싶어도 꾹 참아야 하는 이유는 '밥'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딜 가든지 '밥값만은 하자'라고 결심했습니다. 뭘 하든 '밥값은 하겠지'라고 생각했고요, '산 입에 거미줄 치랴'라는 속담처럼 밥값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는 거라 자신했습니다. 근데 살면 살수록, 겪으면 겪을수록 밥값을 하고 산다는 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장 먹고살아야 하니까, 오늘도 밥줄이 끊어질까 봐 눈치를 보고 오늘의 밥값에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정말이지 먹고살기 팍팍합니다.


 하루는 후배 책상 위에 처음 보는 문제집이 잔뜩 있었습니다. 승진 시험도 아닌데 뭔가 싶어 물었더니

 "얼마 전 자격시험을 봤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평소 회사일에 성실한 녀석이라 의아했습니다. 제 마음을 알았는지 말을 이어갑니다.

 "제가 이 시험을 왜 봤는지 궁금하시죠? 진짜 왜 보려고 했을까요? 제 나이 마흔둘인데요. 단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무언가를 해봐야지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도전한 건데 그래도 시험 보고 나니까 뭔가 성취감이 느껴집니다. 물론 합격 여부는 알 수 없지만요."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당장 오늘의 밥값을 벌기보다 5년 뒤의 밥값을 내다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먹고살기도 급급한데 5년 뒤의 밥값을 내다보겠다고 하니 왠지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훗날을 위해 참고 견디고 노력해보겠다는 결심이니까요.


 모 신부님이 '밥값 하고 삽시다'라고 하시면서 밥값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밥값은 '한 끼만큼의 노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끼를 먹은 만큼 마음이 넓어져야 하고, 눈이 부드러워져야 하고, 이웃을 배려하고 있는 것을 나누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밥값'이다"이라고 말입니다.

듣기만 해도 넉넉한 밥값이고요, 다들 이런 마음으로 밥값을 한다면 세상은 참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산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으려고 삶의 무게를 짊어집니다. 무게가 버거워도 인내하면서 말입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라고 했는데 언제 먹을지 모를 그 열매를 위해, 오늘도 밥값을 위해 애를 씁니다.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던 후배의 이 한 마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지금 하는 이 밥값은 오늘 밥값인가요? 한 달 치 밥값인가요? 아니면 평생의 밥값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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