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감의 기술 Jun 28. 2021

청춘 단상 (靑春 斷想)

 춘향전을 보면 이몽룡이 춘향에게 소위 작업을 거는 장면이 나옵니다.

 "네 성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 살이뇨?"

 "성은 성(成)가 이옵고 연세는 십육 세로 소이다."

 "허허 그 말 반갑도다. 네 연세 들어보니 나와 동갑 이팔이라."

 여기 나오는 이팔은 우리가 흔히 쓰는 '이팔청춘'을 뜻하고요, 16세 무렵의 꽃다운 청춘 즉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을 의미합니다.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쳐 있는 나이를 청춘이라고 부릅니다.

 가끔 30대 초반도 청춘이라고 우길 때도 있고요. 나이 지긋한 기성세대들도 꿈을 잃지 않으면 청춘이라고 외치지만 엄연히 30대 중반이 넘으면 기성세대라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청춘'하면 젊음을 떠올립니다.

 젊음은 나이가 많고 적다는 느낌이 많은 반면 청춘은 젊음이 가지는 특성에 더 관심을 가집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감, 세상을 바꾸고 싶어 끓어오르는 뜨거운 가슴, 갓 나온 햇과일 같은 풋풋한 사랑, 물불을 가리지 않고 겁 없이 뛰어드는 과감함과 한계를 넘으려는 도전정신. 청춘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처럼 보입니다. 물론 친구와의 다툼과 절교 선언, 머뭇거리는 짝사랑과 가슴 찢어지는 실연, 젊은 날의 좌절과 방황. 이 역시 청춘일 때 누릴 수 있는 아픈 경험들입니다.  




 질풍노도의 10대와 꽃보다 청춘이라는 20대를 한참 지나고 난 지금 나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습니다. 나만 청춘을 별 볼일 없이 보냈는 줄 알았는데 내 주위 친구들도 비슷한 후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지금 젊은이들도 나이는 분명 청춘인데 청춘의 특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현실 같습니다. 


 그네 타는 성춘향에 반한 이몽룡이 사랑에 빠졌던 16세.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대다수 10대들은 대학 가려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문제집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학교, 학원을 오가며 버스 탄 여학생에 반한 남학생도 '사랑은 대학 가서'라며 돌아섭니다.

 대입 준비로 10대 후반을 통째로 날리고 대학에 왔지만 남자는 나라를 지키려고 군대를 갑니다. 예전보다 복무 기간이 줄었다고 하지만 이래저래 기간을 따지다 보면 황금 같은 20대 초반도 나라를 위해 통째로 바칩니다. 대다수 기성세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대의 남은 아름다운 날들은 취업 준비로 스펙을 쌓느라 허우적댑니다. 게다가 취업마저도 하늘의 별 따기인 지라 20대 꽃 같은 시절은 사실상 고통의 시기나 다름없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말이죠. 


 사춘기 때는 질풍노도라며 방황한다고 하지만 실은 대입이라는 큰 산 앞에 사춘기가 언제 사춘기였는지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뜨거운 사랑도 해보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며 다양한 사회 경험을 해야 할 20대는 취업난으로 혼자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고생만 하다 지나갑니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내 청춘을 어떻게 보냈는지, 청춘은 뭐였는가 싶습니다.

 청춘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적어도 그렇게 허무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이상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별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얼마 전 우연히 내가 청춘일 때 감동적으로 봤던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30년 전 파릇파릇한 젊은 모습인 위노나 라이더와 에단 호크, 벤 스틸러를 볼 수 있는 영화, 청춘 스케치(reality bites)였습니다.

 우리나라 제목은 청춘 스케치이지만 영어 제목은 reality bites였습니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현실이 물다?'. Bite가 '상처 주다'라는 뜻이 있으니 '현실이 상처를 준다, 그만큼 현실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청춘 스케치라는 낭만적인 제목보다 영어 제목이 청춘의 아픔을 실감 나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23살이 되면 뭔가 되어 있을 줄 알았던 청춘들이 시련을 겪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부푼 꿈을 안고 사회에 뛰어들었지만 냉정한 사회와 기성세대의 높은 벽 앞에서 갈등하고 분노하고 반항하다 깨지는 모습이 담겨 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삼각관계의 애정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영화의 이런 유명한 대사가 있습니다.

 "거 봐, 우린 이것만 있으면 돼. 담배 몇 개비, 커피 한 잔, 그리고 약간의 대화. 나, 너 그리고 5달러" 


 그때나 지금이나 '청춘'하면 방황하고 고단하고 냉소적이기도 합니다. 허세를 떨기도 하고요. 자신만만하게 도전했다가 깨지고 그러다 털고 일어섭니다. 청춘의 이미지 하면 반항과 도전 아니겠습니까? 하긴 청춘이라서 가능한 거겠죠. 


 우린 이것만 있으면 된다는 이것, 청춘을 지나온 지금에 이르러서도 이것만 있으면 되는,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행복, 건강, 사랑, 돈. 아니면 친구? 가족? 꿈? 집?

 청춘은 덧없이 흘러갔습니다. 꿈이 있으면, 도전할 수 있으면 청춘이라고 하지만 나이 듦은 어쩔 수 없습니다. 시간은 무정하게 멈춤 없이 지나가고 세상은 그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내 어깨에 짓눌린 짐은 점점 무거워지고, 책임져야 하는 것들은 늘어납니다만 그럼에도 이것만 있으면 된다는 이것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정말 내가 바라고 원하는 '이것'인가요?  




 담배 몇 개비, 커피 한 잔, 그리고 약간의 대화만 있으면 된다는 그 시절의 청춘 스케치. 다시 봐도 청춘은 역시 청춘이었구나 싶습니다. 커피 대신 술 한 잔에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밤새 울분을 토로할 수 있었던 지난날의 추억도 청춘이기에 가능했으니까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담배? 커피? 대화? 어림도 없습니다. 담배 대신에 종합 비타민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고요. 커피는 되도록이면 안 마셔야 밤에 잠이라도 잡니다. 대화는 솔직히 귀찮아 혼자 있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밤새워 이야기 할 체력도 안되고요. 너무 꼰대 같은 아재 마인드인가요? 


 오늘이 내 남은 날들 가운데 가장 젊은 날이라고 하죠. 그러니 오늘이 내 남은 인생의 가장 청춘이기도 합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피고 또 지는 꽃잎처럼~'

 '청춘'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오늘이라는 청춘도 가고 없을 테죠. 내일이 되어 오늘을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게 가버린 지난 시절, 내 청춘에 대한 예의일 테니까요.

이전 13화 생각의 전환, 있는 성격대로 살아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