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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Aug 17. 2021

'빨리빨리' 외치다 놓치는 삶의 디테일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진동벨을 받고 기다립니다. 근데 한참을 지나도 감감무소식, 나올 때가 됐는데 싶으면 괜히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혹시 진동벨이 고장 났는가 싶어 진동벨을 잡고 위로 아래로 들여다보는데 이런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언젠가는 울린다"


 커피를 주문했으면 언젠가는 진동벨이 울릴 테니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을 그 짧은 시간 동안 왜 그렇게 초조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안달한다고 빨리 나올 것도 아닌데, 초조한들 나만 답답할 뿐인데 말입니다.

 한순간이나마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기다리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일까요?


 사는 동안 이렇게 여유가 없나 싶습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우리나라 사람임을 단번에 알아보는 말과 행동이 있다고 하죠. 다름 아닌 '빨리빨리'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단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하는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키도 작고 말라깽이이지만 예쁘고 글도 잘 쓰는 소녀가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씁니다. 편지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삶을 마치 경주라고 생각하는 듯해요. 그리고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헉헉거리며 달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아름답고 조용한 경치는 모두 놓치고 마는 거예요. 경주가 끝날 때쯤에는 자기가 너무 늙고 지쳤다는 걸 알게 되고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지요."라고요.


 유명 관광지로 들뜬 마음으로 여행을 가든, 이름난 산을 기분 좋게 오르든 다들 하는 행동은 비슷합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장 유명하다고 알려진 지점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직진입니다. 그리곤 그곳에서 환한 웃음으로 손가락을 V자로 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여행은 뭐니 뭐니 해도 사진, 추억은 오로지 사진으로만 남을 뿐이라며 내가 다녀간 흔적을 남기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직진입니다. 왔던 길 그대로 말이죠. 빨리 다음 장소로 가야 하니까요.


 배우들의 움직임은 어색하게 바쁩니다. 대화는 거의 랩 배틀을 하는 수준입니다. 자막은 다 읽기도 전에 넘어가고 배경음악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120분짜리 영화를 두 배속 빨리 감기로 한 시간 만에 해치웁니다. 요즘 휴대폰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이를 스킵이라고 한다죠. 그리곤 다음 영화를 봅니다. 마찬가지로 두 배속으로 빨리 감기를 합니다. 빨리빨리 봐야 하니까요.


 빨리빨리, 더 빨리. 우리 일상에서 언제부터 이렇게 자연스러워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도 빨리빨리 처리해야 인정받고 뭐든 빨리빨리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고요, 매사 빨리빨리 해야 뒤처지지 않은 것 같아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빨리 달리기만 하다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놓칩니다. 음미하며 감상할 여유가 없으니까요.

 빨리하기만 하면 사람도 놓치고 사랑할 시간도 놓칩니다. 사람을 진지하게 대할 틈이 없으니까요.


 언제부터인가 딱히 바쁘지 않아도 빠른 걸 좋아하는 우리.

 유명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어디를 가든 마음만 내려놓아도 볼거리, 즐길 거리가 무척 많습니다.

 카페에 앉아 잔잔한 음악을 듣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요, 진한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도 쳐다봅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그런 시간이 힐링이 됩니다. 천천히 쉬어가는 시간이 주는 즐거움입니다.

 영화 하나를 봐도 배우의 세세한 표정과 몸짓, 목소리는 물론 배경음악이 섞이는 타이밍과 볼륨의 차이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극적 긴장감을 높여가며 몰입하게 합니다. 그 속도를 무시하면 그 영화만이 가진  이유 있는 디테일은 다 놓쳐 버립니다. 빨리 감은 영화는 그저 줄거리만 있는 영화일 뿐이죠.  




 갈수록 가성비와 효율에 집착하는 세상입니다. 시간 투자 대비 가성비도 필요하고 효율도 중요하지만 일상 속에 있는 디테일을 놓치면 사는 게 재미 없어지기 쉽습니다.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보다 나은 인생을 꿈꾼다면 찬찬히 되돌아볼 여유가 필요합니다.


 빨리 갈 때는 당연히 빨리 가야 되고 빨리해야 할 때는 주저하지 않고 빨리해야 합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바쁘게 사는 우리, 가끔이라도 한없이 늘어질 때는 한없이 늘어지는 게으름을 피워 보는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늘어진다고 핀잔을 받을지 몰라도 한없이 늘어지는   다시금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거니까요.


 인생을 경주라고 생각하고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달려가느라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치는 사람들. 늙고 지친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들을 보며 예쁜 소녀 주디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목적지에 도달하든 도달하지 못하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죠. 저는 차라리 길가에 주저앉아 작은 행복을 많이 쌓을 거예요. 위대한 작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말이에요. 저만큼 훌륭한 여성 철학자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정말 그렇지 않나요? 목적지에 빨리만 가려고 주위 경치를 놓치는 어른들보다 차라리 길가에 앉아 작은 행복을 많이 쌓는 어린 소녀가 삶을 즐길 줄 아는 철학자입니다.  




 아침이면 괜히 더 바빠지는 마음입니다. 혹시 놓친 건 없나요? 오늘 아침은 여유를 갖고 자연이 주는 디테일을 챙겨봅니다.

 여름의 끝자락인 아침입니다. 선선한 바람이 마치 가을이 머지않아 고개를 내밀 것만 같습니다. 아직 낮 기온은 많이 올라 뜨거울 거고요. 공기도 깨끗합니다. 나뭇잎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아침입니다.

 그런 디테일들, 일상에서도 챙겨보시면 바쁘게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조금은 재미와 여유가 있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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