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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Nov 29. 2021

눈 깜빡하는 사이, 찰나의 순간

 눈 깜빡했더니 하루가 지났습니다. 언제 하루가 지나갔나 싶었는데 또 한 번 깜빡하고 나니 일 년도 금방입니다.

 눈 깜빡했더니 어느새 어른이 되었습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될 줄은 몰랐습니다.

 눈 깜빡깜빡했더니 떡하니 아이랑 남편이 옆에 있습니다. '아…'

 '아' 다음에 나오는 '… ' 이 점들 안에는 수만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마도 눈 한번 다시 깜빡하면 아이가 장성했을 겁니다. 


 눈을 한번 감았다 뜨는 순간에 빛은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돈다고 합니다.

 눈 한번 깜빡했을 뿐인데 30년이 훌쩍 지났고 50년도 후딱이라는 어르신의 말씀이 일리가 있구나 싶습니다. 눈 깜빡하는 찰나의 순간인데 인생은 빛의 속도로 흘러가니까요.  




 '찰나의 순간'

 '찰나'는 불교에서 나타내는 시간의 최소 단위입니다. 찰나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75분의 1초, 약 0.013초에 해당합니다.

 눈의 깜박임(Blick des Augues)에서 유래한 독일어인 '순간(Augenblick)'. 순간(瞬間)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는 '지금'이라는 지극히 짧은 시간을 규정하는 말입니다. 순간의 개념을 처음으로 규정한 철학자는 플라톤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0.1초도 안 되는 지극히 짧은 시간인 '찰나의 순간'

 삶은 긴 여정처럼 연속적으로 이어져 간다고 생각하지만 살아온 날을 돌아보면 순간순간만이 기억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말이죠. 

 시험에 떨어져 재수, 삼수를 해서 겨우 들어갔던 대학 시절도, 3년이란 시간이 언제 끝나나 막막했던 군대 생활도 지나고 보면 찰나의 순간이고요.

 청춘을 바쳐 밥벌이해가며 아이를 낳고 키웠던 인생의 황금기도, 이제는 성인이 되어 제 갈 길을 가는 아이를 보며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도 모두 찰나의 순간입니다.

 하물며 몇 날 며칠 마음고생했던 고민, 사이가 틀어져 열 받았던 관계, 이 일이 안되면 세상 무너질 것 같았던 사건은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

 무인도를 표류하며 몇십 년을 고생한 꿈을 꾸었지만 우리가 꾸는 꿈은 단지 몇 초에 불과하듯 말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순간이 길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지각을 다투는 출근 시간, 내려오지 않는 엘리베이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순간도, 약속 장소로 마음은 급하고 무념한 빨간 신호등을 보며 얼른 꺼지기를 바라는 순간이 그렇습니다만 잠시 후면 까마득히 잊어버릴 시간입니다.

 눈 깜빡하는 찰나의 순간을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몇 초 동안 깊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새파란 하늘을 보며 마음이 넓어지는 걸 느끼는 순간처럼 말입니다.

 우울하고 버거운 일상생활 속에서 행복한 잠깐의 순간이 있고요, 보기만 해도 웃음 지을 수 있는 즐거운 한때도, 고된 생활 속에서 희망이 담긴 찰나의 순간도 분명 있기 마련, 인생이 힘들어도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찰나의 순간이라고 무시하면 큰일 날 수 있습니다.

 작업 공정은 끝없이 길게 느껴집니다만 안전사고는 한순간에 일어납니다.

 손바닥을 자유자재로 뒤집듯 쉬운 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간의 방심이 대형사고를 불러옵니다.

 눈 깜빡한 차이로 생사를 오갔던 사람들은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 찰나의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요. 


 사람마다 느끼는 시간은 다 다릅니다.

 영원도 시간, 찰나의 순간도 시간. 그러니 시간을 어찌 규정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찰나의 순간이 모여야 삶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매일 찰나의 순간 같은 잠깐만을 입에 달고 살아갑니다.

 잠깐의 여유로 숨을 돌리고 잠깐의 휴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하니까요.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잠깐 동안의 일을 가지고 영화 같은 삶을 만들기도 하고요,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장편 소설이 완성되기도 합니다.  


 현대인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시간을 낭비하는 거라고 합니다. 그건 아마도 우리에게는 지금만 있고 찰나의 순간만 살아가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는 시간을 잡을 수도, 시간에 맞춰서 맞서 싸울 수도 없습니다. 눈 깜빡하는 찰나의 순간한테 늘 지게 되어 있습니다. 늘 그랬듯이 '시간이 언제 쏜살같이 갔을까?' 아쉬워하니까요. 


 눈 한번 깜빡했더니 일 년이 지나가고, 눈 깜빡할 때마다 강산이 변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빛의 속도로 흘려가는 인생, 그래서일까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은 빛의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이 두려워서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있는 반면 아직 시간의 흐름을 눈치채지 못한 아이들은 얼른 어른이 되고픈 마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가 봅니다.  




 일상을 꾸리는 게 그렇습니다. 채우면 텅 비고, 먹어도 때 되면 허기지고, 이 걱정이 없어지면 저 걱정이 생기고 그래서 사는 게 팍팍하고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먹고 일용할 근심을 떨치고 일용할 욕망을 다스리며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빛의 속도처럼 눈 몇 번 깜빡이면 없어지는 게 인생이라면 당장의 고민과 근심이 우주에 떠다니는 먼지처럼 하찮게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습니다. 물건 하나도 그럴진대 인생은 말할 필요 없습니다. 매 순간순간이 쌓여 삶이 되고, 매 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삶의 질도 결정됩니다.

 '영원한 것은 절대 없다'라는 말처럼 삶은 순간순간만 있을 뿐입니다. 그 순간마다 마음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아가다 보면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니 찰나의 순간이 가볍게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인생을 지배한다고 하죠. 그럼 찰나의 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인생을 지배한다는 사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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