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세 걸음
J. R. R. 톨킨이 지은 판타지 소설 <호빗>에서는 이런 수수께끼가 나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잡아먹는다. 새들, 짐승들, 나무들, 꽃들.
무쇠를 갉아먹고, 강철도 깨문다. 단단한 돌을 가루 내버린다.
왕들을 죽이며 마을을 폐허로 만든다. 그리고 태산마저 무너뜨린다."
이 수수께끼의 정답인 이것은 만물의 파괴자이자 만인의 살인자라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느 소설가는 이것이 가장 무섭다고 이야기합니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이것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 없거든."라고 하면서요.
인간은 이것이 부족하다고 항상 불평하면서도, 마치 이것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은 이것이 해결해 준다'라고 이솝우화에서는 말합니다.
'이것이 도대체 뭘까?'라는 고민을 오래전부터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연구하며 생각을 발표했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나오겠지만 아직까지 '이것이 무엇이다'라고 명확하게 밝혀진 건 없다고 합니다. 이론만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하죠.
오늘날에도 실체를 모르는 '이것'은 시각과 시각 사이의 간격 또는 단위를 일컫는 '시간'입니다. 빅뱅 우주론에 따르면 현재 우주에서 흐른 시간은 약 138억 년이라고 합니다.
아주 오래 전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때가 있고, 5년 뒤, 10년 뒤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지난 일을 과거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미래로, 지금 이 순간을 현재라고 합니다만 우리는 대체로 어제, 오늘, 내일. 이 3일의 시간에 묶여 살아갑니다.
'어제 뭐 했지?' '오늘 뭘 먹을까?' '내일 어딜 갈까?'라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사니까요.
이 3일이 두 번 돌면 일주일이 갑니다. 일주일이 4번을 돌면 한 달이 가고, 봄여름 가을 겨울을 따라가다 보면 1년이 훌쩍 지나갑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 1440분이 공평하게 주어졌다고 합니다.
시간은 금이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다며 인생에서 가장 귀한 거라고 말합니다.
분명 좋은 말인데 현실은 과연 그런지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사는 사람은 시간을 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하는 사람은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시간은 어느 편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열심히 살았는데 과로사라도 당하면 시간한테 당한 꼴이 아닌가요? 빈둥거리며 게으름을 피운 사람이 가늘지만 길게 살아가면 시간을 엄청 많이 산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주장했던 대로 시간은 절대량이 아닌 상대적인 물리량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모 교수가 강연을 하였습니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픈 주제인 시간에 대해 늘 고민하던 교수님은 그 강연에 달린 베스트 댓글을 보는 순간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한 남학생이 쓴 댓글 내용은 이렇습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 여자들에게 물어봤는데 다들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웃음이 터지는 이 댓글은 어쩌면 시간의 실재에 대해 가장 시원하게 표현한 글이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연구 중 하나는 시간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간의 흐름을 입증하는 증거도 없다고 하는데 이건 또 무슨 말인지 어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시간에 대해 누구나 이런 생각을 가집니다. 시간이 있든 없든 참 빨리 흘러간다는 사실입니다.
하루하루는 지겨워도 한 달은 금방 갑니다. 일주일은 멀게만 느껴져도 일 년은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나는 언제 어른이 되나 싶었는데 이미 어른이 된 지도 오래고요, 이 아이는 언제 클까 싶었는데 어느새 나보다 더 큰 어른이 되어 있으니 세월 참 빠르다는 사실, 이론을 떠나 두말하면 입만 아픕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멈춰 있다'.
시간이 가지고 있는 세 가지 걸음이라고 합니다.
멈춰 버려 다시는 오지 않는 과거, 주저주저하는 미래를 기다리다 쏜살같이 날아가는 현재를 살아서일까요? 이래서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야속하게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면 제대로 해놓은 게 없습니다. 부질없는 걱정으로 시간만 축낸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 나오는 대사가 위로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사랑하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가는 시간은 잡을 수도, 오는 시간은 막을 수도,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도 없습니다. 다만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조금 늦게 가느냐 빨리 가느냐 그걸 느끼며 살아갈 뿐이라고 합니다.
시간에 맞설 수는 없지만 정해진 시간이라면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인생 알차게 보낼 수 있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이상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오늘을 사랑하는 삶이라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방황하고 어영부영 헤매고 나태해질 때도 있고요, 때론 게으름을 피우기도 합니다.
언제 나를 데리고 갈지 모르는 시간이 망설이고 주저하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인생은 흘러가고 있는데 거기 멈춰 뭘 하고 있느냐?'라고요.
가는 세월이 야속하다고 시간 탓을 해봤자 의미 없습니다. 세상만사가 모두 시간 따라 흘러갈 뿐입니다. 다만, 다만 제대로 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체크하면서 살아가야겠죠.
누구나 가지는 바람, 앞으로의 시간은 희망차고 행복하기를 소망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