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자 봉지를 들고 한입에 탈탈 털어먹다가 얼떨결에,
우산도 없는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우두둑 떨어질 때면 자연스레,
골치가 아파 목이 뻐근할 때 뒷목을 잡고 주물리며 '아이고' 하다 우연히,
한 끼 식사로 시킨 된장찌개, 한 숟가락 뜨며 맛보는데 더는 볼 수 없는 엄마 손맛이 생각날 때 불현듯.
그럴 때 우리는 문득 하늘을 쳐다보게 됩니다.
동서남북, 사방팔방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하늘이지만 하늘이라는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살아갑니다.
신나고 재미에 푹 빠졌을 때는 하늘을 볼 틈이 없습니다. 놀고 즐기느라 정신이 팔려 있으니까요.
일에 치여 바쁜 날에는 하늘을 볼 겨를이 없습니다. 일처리 하기도 급급해서 하늘이 있는지도 모르죠.
힘들고 괴로운 나날은 하늘을 볼 여유가 없습니다. 고개를 들기엔 몸과 마음이 천근만근이거든요.
심심하고 지루한 시간은 하늘을 볼 생각을 못합니다. TV 갔다, 스마트폰 갔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하니까요.
눈앞에 펼쳐져 있는 하늘을 제대로 못 보고 넘어간 하루가 의외로 참 많습니다.
'하늘 위엔 무엇이 있을까?' '신들이 살고 있을까?' '하늘에 가면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늘을 동경한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하늘을 보며 올라가 보고 싶어 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땅 위에 있는 인간들에게 사방에 이름을 떨치고 신과 동등해지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늘 꼭대기까지 탑을 높게 쌓아 올리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이런 오만함이 하느님을 화나게 합니다. 진노한 하느님은 모든 인간의 말을 제각각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온 땅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했습니다. 미완으로 남은 이 탑은 혼돈을 의미하는 바벨(Babel)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이카루스는 밀랍 날개를 달아 하늘을 날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높이 오르고 싶은 욕심 때문에 태양빛에 의해 밀랍이 녹아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이카루스의 아버지가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말이죠.
지평선과 수평선 위로 보이는 무한대의 공간이자 고대부터 지금까지 경외의 대상인 하늘은 우주를 품었습니다. 해와 달은 물론 수십억 개의 별을 담았으니까요.
하늘이라는 이름에는 뭔가 모를 오묘한 기운이, 이 세상의 색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색깔도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하늘, 하늘이라는 이름 그 자체가 하늘이 하늘임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하늘은 순우리말이라고 합니다. 옛날 우리말에 '하늘'의 형태로 쓰다가 '하늘'에서 아래아(ㆍ)가 사라지고 ㅡ가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의 문헌에는 '한'(큰)과 '울'(울타리)의 합성어가 하늘의 어원이라고 추측한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큰 울타리라는 뜻을 가진 하늘, 그래서인지 기대고 싶은 든든함이 느껴지고 알게 모르게 우리는 하늘을 의지하곤 합니다.
주체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감격스러울 때는 하늘을 보며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감당할 수 없는 시련에는 하늘을 향해 제발 한 번만 살려 달라고, 큰일을 앞두고 있는 자식을 위해 부모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도와달라고 빌고 또 빕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크게 틀어질 때는 하늘을 보며 무심하다는 원망도 하고요, 복수할 힘이 없는 연약한 이는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라며 하늘의 힘을 빌리곤 합니다.
사랑하는 이는 잘 있는지 하늘에게 안부를 묻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은 하늘을 보며 가슴에 묻습니다.
오늘도 큰 울타리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도돌이표를 왔다 갔다 하며 쳇바퀴를 굴리고 또 굴리는 일상이라고 하지만 살면서 희한하게 하늘 한번 볼 짬이 나지 않습니다. 딱 1초만 있으면 되는데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잠깐 동안 멈춰 서서 머리 위 하늘을 봐라고 한 노래도 있습니다. 하늘 한번 쳐다보면서 세상사 시름을 잠시 잊고 하늘의 기운을 받으면 때론 도움이 될 텐데 말이죠.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오늘의 날씨를 챙겨 봅니다.
분위기가 서먹해진다 싶으면 날씨가 좋다 나쁘다 하며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애씁니다.
하루 일과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본다는 오늘의 날씨, 어쩌면 날씨라고 하는 게 하늘의 표정을 보며 이야기하는 건 아닐까요?
하늘의 표정이 좀 짓궂다 싶으면 구름이 잔뜩 끼여 흐리고,
오늘은 표정을 영 찌푸린다 싶으면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하늘의 표정이 막 환하게 웃는다 그러면 그날은 맑다는 걸 테고요.
거센 비바람 뒤에 뜨는 무지개는 하늘이 우리에게 힘내라고 외쳐주는 화이팅 같죠?
듣도 보도 못한 8월의 장마도, 잠 못 이룬 열대야도 끝나가는 여름입니다. 아직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거고 태풍도 간간이 찾아오겠지만 그래도 다가오는 가을을 품을 하늘은 일 년 중 가장 눈이 부시게 푸를 테죠. 하늘이 조금만 참으라고 다독거리듯 아침저녁은 조금씩 시원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우리를 든든하게 감싸주는 큰 울타리 하늘,
오늘은 하늘을 마음껏 쳐다보면서 기운 좀 받아보시죠?
지금 하늘 표정은 어떤가요?
p.s
하늘의 옛글자 모양은 대문사진 화면에 띄웠습니다. 본문에 쓰려고 하니 옛글자 모양이 '하나ᆞ갏' 이렇게 변해 버려 부랴부랴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제가 문서 편집이 좀 약해서.. 너그러운 양해의 말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