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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Jan 08. 2021

당신은 어떤 징크스를 가지고 있습니까?

징크스 Jynx 깨뜨리기

 

 이른 새벽에 잠을 깼다. 잠이 들듯 말 듯 침대 위를 뒤척였다. 시계는 6시를 향해 달려간다. 잠은 다시 들 것 같진 않고 잠시 잔다는 게 늦게 깰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척이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낼 바엔 출근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이른 시간이라 도로는 여유롭다.

 파란 하늘, 따스한 햇살,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들, 하나둘 늘어나는 차량들, 어제도 그제도 늘 그 자리에 서있는 건물들, 건물 하나에 수십 개 매달린 간판들, 그 틈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늘 대하는 낯익은  풍경이다. 아침의 여유를 느끼는 순간 인상이 찡그려졌다. '에이' 짧은 탄식이 튀어나왔다. 일순간에 기분이 나빠진다. 내가 싫어하는, 나만의 징크스를 불러오는 숫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3자리 특정 숫자다.

 나에게는 이 숫자와 얽힌 아픔이 많다. 이 숫자를 본 날에 전혀 예상치도 못한 봉변을 당한 적이 있었다. 별 문제없을 거라 안심했던 일이 꼬이기도 했고 기분 좋은 술자리가 말다툼으로 끝나는 황당한 경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숫자를 보는 날이면 하루 종일 찜찜했다.

 오래전에 사람에 치이고 상처 받고 스트레스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생긴 숫자 징크스다. 주위에 널린 게 숫자이고 깔린 게 글자인데 당연히 자주 보는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감정적으로 떨쳐내지 못하니 힘들다. 숫자와 관한 징크스를 이야기하면 바보 취급당할 수도 있다.

 

 후회가 밀려왔다. 왜 하필 오늘 일찍 나왔을까? 왜 하필 그 순간에 거기로 고개를 돌렸을까? '왜 하필..' 물음이 되풀이될수록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불길함이 엄습한다. 숫자를 봤다는 것보다 또 어떤 지랄 같은 일이 일어나 괴롭힐지가 염려된다. 아침부터 기분 잡쳤다.

 회사에 다다를 무렵 장의차 한 대가 지나갔다. 문득 친구의 징크스가 생각났다. 전 프로야구 감독이 아침에 장의차를 보면 그날 경기를 이긴다는 징크스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후로 친구 역시도 아침에 장의차를 보면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거라 믿고 산다고 했다. 오늘은 그 기운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징크스란 무엇일까요? 불길한 일,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운명적인 일을 일컫는 말입니다.

 사전에는 본디 불길한 징후를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선악을 불문하고 불길한 대상이 되는 사물 또는 현상이나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일 등을 말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즉 징크스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일어나는 불길한 일을 의미합니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징크스 자체가 황당한 부분이 많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의외로 징크스를 신봉하거나 징크스라는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찜찜합니다. 그러다 기분 나쁜 일을 겪으면 징크스 탓으로 돌리고 연결 지으니 징크스는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징크스를 가진 사람은 주위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험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메뉴 하면 단연 미역국이죠. 미역과 시험은 하등의 상관이 없지만 시험을 앞두고 먹기엔 부담백배입니다.

 연애와 관련한 징크스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가 아닐까요? 근데 이보다 더 공감하는 연애 징크스가 있다네요. '애인에게 닭 날개를 먹이면 바람피운다'가 한 조사에서는 1위라고 합니다.

 전 프로 구단 감독은 팀이 연승 중일 때는 속옷을 갈아입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속옷은 1주일 넘게 갈아입지 않아도 팀이 연승하고 있으니 불편해도 감수합니다.

 신인 프로 선수들 중에 2년 차 징크스가 있습니다. 데뷔 첫 해 빼어난 활약을 보였는데 2년 차 들어 부진을 겪고 성적이 신통치 않은 선수들을 지칭하는 징크스입니다. 흥행과 실패가 달린 영화계도 2년 차 징크스가 있습니다. 속편이 전편만 못하다는 '소포모어 징크스'라고 합니다.

 또한 크리스천들 사이에서는 13일의 금요일은 불길한 날로 꺼립니다.

 우리나라에서는 '4'라는 숫자가 죽음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병원은 병실번호에 4를 빼버리고 4층을 없애고 5층으로 표기하기도 합니다.

 아침부터 까마귀가 울면 불길한 일이 생길 거라 걱정하고 까치를 보면 반가운 손님이 올까 봐 기대하는 것 역시 징크스입니다.   


 세계 신기록이 존재하는 이유는 기록을 깨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징크스도 깨라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연전연승을 달리던 팀이 오늘 경기에 패배해서 연승이 끝났습니다. 일주일 넘게 갈아입지 않은 속옷 때문에 더 지저분하고 수염은 더욱 자라 산적처럼 얼굴을 가렸는데도 징크스를 이어가지 못하고 깨집니다.

 2년 차 때 혹독한 시련을 겪었던 신인 선수는 부진한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작년에 너무 잘 나가서 방심한 건 아닌지, 자만하고 있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작년에 잘 나갔던 만큼 상대 팀에서 집중 분석하고 대비를 갖추었기에 올해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속편이 전편만 못하다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극복한 영화도 적지 않습니다. 대부 2, 터미네이터 2, 그리고 배트맨 시리즈는 다크나이트로 화려하게 성공했습니다.




 징크스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일종의 미신이라고 여깁니다. 인과관계를 찾기보다 우연히 생긴 걸로 간주합니다. 그럼에도 징크스에 집착합니다. 안 좋은 일이 닥칠까 봐 걱정되고, 기분 잡칠까 봐 찝찝하고, 불행은 미리 피하고 싶고 혹은 기분 좋은 일이 생길까 봐 기대하는 이 모든 징크스는 뒤집어 보면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삶의 애착입니다.  

 징크스는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단지 미신으로, 우연으로 간주하면 인간이 고민한다고 해결된 성질이 아닙니다. 징크스가 인간이 알 수 없는 운명과 관련된 영역이라면, 우리가 알 수 없는 놀라운 운명의 비밀이 숨어 있을지라도 그 역시 인간이 관여할 영역이 아닙니다. 우연이든 운명이든 찾지 못할 해결책을 고민하며 헛수고할 이유가 없습니다. 해결책을 찾지도 못할뿐더러 징크스도 며칠 뒤면 까마득하게 잊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징크스를 깼다"는 말을 듣습니다. 특정 팀에 연전연패하여 이번에도 당연히 질거라 체념한 승부를 극적으로 이기거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체념한 일을 극복하고 해낼 때 쓰는 말입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는 마음, 보다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소망,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어두운 감정이 사라지고 밝은 마음이 내 안에 자리 잡습니다. 징크스를 극복할 에너지가 생겨납니다.

 잘살기를 바라는 삶의 애착인 징크스가 또 다른 속박을 가져옵니다. 징크스를 날려버리는 것은 내 안의 또 다른 속박에서 벗어나는 일이고, 또 하나의 자유를 얻는 일입니다.


 

 오늘도 내가 가지 않은 길에 장의차가 갑니다. 방금 내가 지난 자리에 혐오하는 숫자가 지나갑니다. 내가 보지 않은 나무에서 까마귀가 울고 까치가 날아다닙니다.

 기분 잡치는 징크스는 여지없이 깨버리시고, 기분 좋은 징크스는 쭉 이어가시기를...
 이렇게 바라는 마음은 미신일까요? 아님 운명을 부르는 걸까요? 이 또한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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