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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Oct 14. 2020

낙서와 작품 사이

 인류의 역사 중 99%를 차지하는 구석기시대, 어두컴컴한 동굴 안에서 노인과 젊은이가 말다툼을 한다. 노인이 젊은이에게 점잖게 훈계를 하지만 젊은이는 시대가 변했는데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느냐며 오히려 말대꾸를 한다. 노인은 화가 났지만 힘으로는 젊은이를 당해 낼 수 없다. 젊은이는 노인을 고리타분하다고 타박하고는 동굴을 나가버렸다. 화가 난 노인이 분을 삭이지 못한다. 발밑에 차이는 돌멩이 하나를 주워 동굴 벽에 아무렇게나 쓰고 그린다. 마지막에 이런 글을 적었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 말세야. 말세"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청년이 도시 거리의 벽면, 지하철 플랫폼에 아무렇게나 그려진 낙서들을 보며 영감을 얻었다. 그 후 길거리, 지하철, 클럽에서 벽면이 보이기만 하면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공공기물 훼손으로 경찰에 붙잡혀간 적도 있었다.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과 무분별한 핵개발을 반대하는 그림도 그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평범한 사람들이 그림을 알아보고 열광하기 시작했다.  


 경쟁만이 목적이 되어버린 인생, 앞만 보며 달려왔는데 또 앞을 보고 가려니 막막하게 느껴진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이름 있은 대학에 가기 위해,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젊은 날을 불살랐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회사를 다니며 먹고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청춘을 다 보냈다. 어느덧 인생의 중반에 들어선 지금 고뇌에 빠졌다.

 '내가 살아온 게 맞는가? 이게 인생일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꿈이 뭐였더라?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었던가?' 자신에게 물어보며 몇 글자 적었다. 삶이 고민될 때마다,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 때마다 마구 써 내려갔다. 낙서는 그렇게 쌓여만 갔다.



  

 글씨나 그림 따위를 장난이나 심심풀이로 아무 데나 함부로 쓰는 걸 '낙서'라고 합니다.

 지루한 수업 시간, 선생님의 말씀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책에 그대로 있는 판서를 따라 적기보다 잡다하게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을 흐르는 그대로 노트에 쓰고 그립니다.

 답답한 회의 시간, 질책과 격려가 쏟아지지만 결론은 '고객에게 잘해서 하나라도 더 팔자'로 정리됩니다. 어차피 뻔한 결론일 텐데 회의는 끝날 기미가 없습니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회의자료 빈 여백에 아무렇게나 적고 그려봅니다.

 오랜만에 산을 등반합니다. 정상에서 세상을 바라보니 가슴이 탁 트입니다. 기분은 상쾌해집니다. 내가 다녀간 흔적을 남기고 싶어 정상에 놓인 커다란 바위에 뾰족한 돌멩이를 들어 한 문장을 새겼습니다.

 '0월 0일 000 왔다감'


 분노, 불만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낙서로 분출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습니다. 쓰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긍정적인 마음을 글로, 그림으로 표현하며 믿는다는 것 자체로도 위안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에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낙서를 통해 존재를 나타내고 싶어 합니다. 유명 장소에 누가 언제 다녀갔다는 낙서로 존재감을 드러내듯이 말입니다.


 낙서는 어떤 걸 쓰든 무엇을 그리든 상관없습니다. 쓰고 싶은 거, 그리고 싶은 거를 원 없이 쓰고 그리면 그만입니다. 어느 누구도 좋다, 나쁘다를 말할 수 없는 나만의 낙서입니다.

 낙서를 할 때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업이라고, 예술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현실, 지금 하고 있는 생각 그대로를 표현할 뿐입니다. 낙서에 몰입하다 보면 의미 없는 선과 원이 만나 흐름이 만들어지며 상상력이 자극됩니다.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튀어나온 단어와 단어들이 돌고 돌아 어디선가 이어지고 영감을 얻습니다. 창의성이 폭발합니다. 어느덧 작품으로 탄생합니다.


낙서는 휴식입니다.

낙서는 또한 몰입입니다.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손이 움직이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쓰고 그려 나갑니다.

어느 순간 스토리텔링이 됩니다.

낙서를 통해 세상을 말합니다. 

평범한 낙서가 특별해질 수 있고 특별한 낙서가 주목을 받습니다.



 

 몇십 만년 전에 그려진 낙서 하나가 동굴벽화로 후세의 주목을 받습니다. 알려진 게 없던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기성세대의 생각은 그대로 유전이 되었나 봅니다.


 2차 세계 대전 후 풍요와 베트남 전쟁으로 혼란을 겪던 1960년 대 미국에서는 그라피티, 이른바 담벼락 낙서가 유행했습니다.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자신의 불만을 낙서로 표현했습니다. 담벼락 낙서는 1980년 대 들어 더욱 성행했습니다. 지하철 벽면에, 길거리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다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유명한 팝 아티스트인 키스 해링입니다. 지하철 광고판에 5000 여점의 낙서를 남기기도 했던 '낙서를 사랑한 아이'였습니다.

 

 '내가 살아온 게 맞는가', '나는 누구인가?' 고민될 때마다 생각을 적고 모아둔 낙서가 몇 년 후 한 권의 책으로 빛을 받았습니다. 낙서가 인생을 180도 바꾸었다고 고백한 작가였습니다.


낙서는 부담 없이 쓰고 그리기에 즐길 수 있습니다.

낙서는 일이 아니기에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습니다.

내 머릿속의 상상을 펼쳐나가는 것, 내 마음 가는 대로 그려나가는 것, 떠오르는 대로 써나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따분한 상황에서 아무렇게나 쓰거나 그리는 낙서가 작품이 되기도 합니다. 후세에 역사를 남긴 벽화도, 팝아티스로 명성을 날린 작가의 그림도, 인생이 180도 바뀐 작가의 책도 낙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낙서를 하며 삶을 이야기합니다.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상상력을 깨우고 창의성을 불러옵니다.

깨작거리는 낙서가 새로운 삶을 도전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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