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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Oct 12. 2020

2021년 다이어리를 펼치며

 무더운 여름철, 더위와 싸우고 모기를 쫓아내며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얼른 선선한 가을이 왔으면.’   

 다들 가을을 기다리는 한여름에 가을이 아닌 내년을 준비하는 곳이 있어요. 바로 내년 다이어리를 만드는 문구업체입니다. 이미 온라인이나 서점에는 2021년 다이어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년도 다이어리를 주문, 판매한다는 광고가 나온 지도 꽤 됐더군요. 갖가지 색상과 다양한 모양의 다이어리들이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내년이 되려면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2021년 다이어리라니 세월이 빠르긴 빠릅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가을을 만끽합니다. 그새 달력은 추석을 지나고 10월의 절반을 향해 내달립니다. 그러고 보니 올해 2020년은 이제 2달 남짓 남았네요.

 올 한 해는 뭘 했는지 돌아봅니다. 예년보다 그리 깊게 고민할 것도, 딱히 생각나는 일도 없습니다. 그 흔한 모임도 자제했고 어디 다닌 곳도 없으니 말입니다.


 올해 봄. 학생들은 방학이 끝났는데도 방학처럼 집에만 있었습니다. 한 달 두 달 미루던 개학을 어렵사리 했건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집에서 공부하라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수능도 연기시켰습니다.

 직장인들도 휴일이 아닌데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백수는 아니고요.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하라고 합니다. 대신 밖으로 돌아다니지 마라고 하네요.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아침부터 밤까지 집에서만 지냈습니다.


 계절의 여왕이 한걸음에 달려왔건만 마중 나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이름하에 봄날이 와도 꽃구경 한번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습니다.

 올여름은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기가 망설여졌습니다.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눈치 보게 되고요, 무엇보다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하늘이 무척 슬펐나 봅니다.

 여름 내내, 6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빗속에 갇혀 산 것 같아요. 역대 최장기간이라는 기록이 말해주듯 장마는 지겹도록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50일이 넘게 장마가 이어졌으니 말 다한 거죠.  

 징글징글했던 장마가 그치고 잠시 무더위가 반짝, 여름다워지나 싶더니 이번엔 태풍이 찾아왔습니다. 전 세계 면적의 0.04%에 불과한 이 조그만 땅덩어리에 태풍이, 그것도 3개나 연이어 상륙했습니다. 모진 비바람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하늘이 슬픈 게 아니라 노했을까요?


 태풍이 지나가면서 여름답지 않았던 올여름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9월의 마지막 날에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고 10월 첫날이 추석이었죠. 연휴는 자그마치 5일이나 되었습니다. 예년 같으면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텐데 올해는 어림없었습니다. 여름휴가 대신 국내여행을 계획해보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민족의 대이동도 자제시켰습니다. 추석 때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이 내건 플래카드가 ‘불효자는 옵니다’ 였잖아요.

 추석 연휴가 끝난 10월, 세월은 심심한 11월의 달력을 지나 크리스마스까지 단숨에 달려갈 텐데 이렇게 올 한 해도 끝나겠네요.


 올해 마지막 날, 한해를 떠나보내는 카운트다운을 하며 내년 다이어리에는 무슨 소원을 적고 있을까요?

 합격, 승진, 건강, 연애, 결혼, 대박, 행복, 화목, 성공, 운동, 다이어트 등등 해마다 저마다의 소망이 있습니다. 당연히 소망하는 바람은 염원하겠지만 행여 그때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하루빨리 끝나기를’ 하며 빌고 있지나 않을지, 어쩌면 올해 초부터 쓴 마스크를 벗지 못한 채 1년 내내 코로나 종식을 기원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세상에는 편을 가르고 분열시키는 것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러나 올해만큼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친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올해만큼은 여태껏 마음 졸여가며 같은 소원을 간절히 빌었잖아요.

 '이 장마가 물러가고 쨍쨍한 햇빛이 나기를',

 '이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 피해 없기를',

 '이 코로나가 얼른 끝이 나 평범한 일상이 다시 찾아오기를' 하고 말입니다.


 고난과 시련은 사람들을 한마음으로 뭉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60-70년 대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 같이 잘살아보자고 노래를 불렀고,

 IMF로 나라가 망했을 때도 너도나도 금을 모아 다 죽어가던 나라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장마로 물에 잠기고 태풍이 할퀴고 가더라도 내일이면 힘을 합쳐 쓰러진 일상을 되돌려 놓았고요.

 코로나로 마음 편치 않고 대부분의 일상을 잃어버렸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끝이 있을 거예요. 

 코로나라는 위험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근심이 가라앉는 평온한 일상을 위해 오늘도 다들 힘을 합치고 있잖아요.

 

 2021년 다이어리를 펼치며 내년에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들을 상상합니다.

 우선 내년에는 마스크 구입하려고 날짜를 표시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연인과 영화 약속, 동료와 술자리, 친구와의 저녁 모임, 결혼식과 생일파티 같은 가족행사들이 빼곡히 적혀 있으면 좋겠고요.

 해외여행, 국내여행 계획이 다이어리 한 면을 크게 장식하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올해 겨울은 참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모두 다 말입니다.

 올해 겨울은 아무리 추워도 마스크 쓸 일이 없기를 기대합니다.

 올겨울은 숨 한번 마음대로 내쉬고 거리낌 없이 거리를 활보하며 새해를 맞이하기를 벌써부터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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