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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Oct 09. 2020

웃자란 가지, 웃자란 마음

 가을이 절정을 향해 갈 때면 아파트 화단에서도, 길에서도 벌초 기계가 ‘윙’ 돌아가며 풀들을 베고 있습니다. 삐죽삐죽 웃자란 풀들을 가지런히 정리를 합니다. 가지런히 정리된 풀들이 보기에는 좋지만 다른 풀보다 한껏 자란 풀을 왜 베어버리는지 궁금했어요.
 ‘웃자란 가지’가 있어요. 여름철 이후에 다른 가지들보다 길게 자란 가지인데요.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는 개화 결실에는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헛가지’라고 부릅니다. 과일나무에 웃자란 가지가 있으면 영양분을 모두 허비한다고 해서 잘라내는 게 일반적이랍니다.

 ‘웃자라다’. 사전에는 쓸데없이 보통 이상으로 자라 연약하게 된다고 정의합니다.
 초목에는 웃자란 풀, 웃자란 가지가 있다면 사람에게는 웃자란 마음이 있어요. 쓸데없이 부리는 욕심, 남들에게 과시하고픈 허영심, 남을 이기고 오르려는 시기와 질투, 이뿐만 아니라 지나친 걱정, 과도한 불안, 비우지 못하는 집착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평안, 겸손, 감사, 용기 같은 좋은 감정들이 보통 이상으로 자랐으면 좋겠는데 부정적인 감정이 웃자라 우리를 연약하게 합니다. 


우리 모두가 태아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나올 때 우리 모두는 다 빈손으로 나왔으니까요. 누구나 시작할 때는 단순했습니다. 배고프면 울고, 엄마 젖 먹으면 웃고, 아빠 품에 포근하게 안기면 자고. 더는 바라는 게 없었죠. 더 가지려는 욕심도 없었고 남들을 시기, 질투도 하지 않았습니다. 비교 따위도 물론 없었고요. 

 머리가 커가고 세상을 알게 되면서 순수했던 마음을 잃어갑니다. ‘하나 더’,’ 이것만 더‘. 욕심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내 것보다 남의 것에 눈이 돌아가고 가진 것보다 없는 것에 신경이 쏠립니다. 얻으면 만족하기보다는 더 큰 걸 얻으려 오늘을 희생하고 심신을 혹사시킵니다. 그렇게 살아야만 치열한 사회, 한 번뿐인 인생을 잘 사는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살아보니 인생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때가 더 많습니다.
 대학만 들어가면, 취업만 하면, 결혼만 하면, 승진만 하면, 이번 사업이 성공하면, 이 문제가 해결되면 더는 고생할 일은 없을 거라 기대했지만 사는 게 어디 그렇던가요?
 이번 일이 성공해도 언제 넘어질지 모를 위험은 항상 도사리고,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어 한숨 돌리면 그새 또 다른 문제가 터져 골머리를 썩힙니다. 어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러고 있으면 어쩌나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누구나 이번 생은 처음입니다. 다음 생을 누가 알겠으며 안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다들 만만치 않은 일상을 살아갑니다. 쉽지 않은 시기를 통과하느라 애씁니다. 이 터널이 지나면 수월해질까요? 물론 그러리라는 보장도 없고 장담도 못 합니다.
 인생이라는 게 뭘 장담해 주거나 약속해 주지 않잖아요? 아량이 넓은 실재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저 무덤덤하게 무심하게 살아가야죠. 인생은 그 사람이 살아가는 대로 그저 흘러갈 뿐입니다.




 웃자란 가지를 잘라내고 난 뒤 식물을 쓰다듬습니다. 식물을 잘 자라게 하려면 물을 주고, 바람도 쐬어주고, 햇볕을 받게 해야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험한 세상에 상처 받고,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우울에 빠지고, 일에 치여 지칠 때 이겨내는 방법은 어렵지 않아요. 잘 먹고 잘 자고, 기분을 환기시켜주고 밖에 나가 햇볕과 바람을 쐬며 심신을 달래는 거죠.

 여러 개의 식물을 키우다 보면 그중에 시름 앓는 애가 있어요. 이럴 때는 햇볕 잘 들어오는 창가에, 공기 잘 통하는 곳에 두어 특별 관리를 해주어야죠. 자칫 무관심해서 방치했다가는 시들시들하다 영영 빛을 못 볼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도 아프고 지치면 쉬어야죠. 방전되면 충전시켜주며 자신을 소중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스스로를 소홀히 했다가 가장 소중한 자신을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이미 크게 자란 웃자란 마음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버리지 못해 쌓아 둔 감정을 처리하지 못해 여유가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는 마음을 이제라도 좀 비우려 합니다.
누구나 빈손으로 태어난 것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출하게 행동하고 단정하게 말하는 것부터 하려고요.
소중한 것을 진짜 소중하게 여기기 위해서 소중하지 않은 것을 비웁니다.

 일 년 중 가장 높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즐기는 계절, 가을입니다.
 오랜만에 지저분한 차를 세차시키고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며 어떤 말로도 표현이 부족한 하늘을 바라봅니다.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번쩍 빛이 나는 늙은 애마도 쳐다봅니다. 나도 모르게 절로 흐뭇해지는 이 기분, 사는 게 별 거 있나요? 인생, 별 거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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