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0여년이 흘렀다. 당시엔 누가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었는지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한 선배가 기타를 치고 우리가 함께 따라 불렀던 노래였는데 부를때마다 웬지 마음이 뭉클했다. 어인 일인지 지금도 3절까지 외우고 있는 노래이다.
공장 누이들의 삶을 담은 노래가 20대 청춘의 마음을 깊게 울렸나보다.
위 노래는 김민기 작사, 작곡의 ‘강변에서’이다.
아침 이슬, 상록수등 널리 알려진 노래도 많지만 인생노래를 꼽으라면 망설이지 않고 난 이 노래를 선택하리라.
그가 얼마전 지구별 소풍을 마치고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을 탐하며 요란스러운 삶을 살아가려 아등바등하는데 무대 뒤 낮은 자리를 고수한 인생 高手(고수)이자 敲手(고수)였던 사람, 스스로를 ‘뒷것’이라며 자기 삶의 원칙을 끝까지 내려놓지 않았던 우리 시대 스승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참으로 슬프다.
그는 무엇도 ‘끝내 사라짐’을 알았기에 내세우지 않고 나서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이 시대의 드문 ‘바보’이다. 내가 뭔가를 해야 하고, 그래서 주목을 받아야만 잘 살아가는 것인양, 진정성 대신 허명이 범람하는 가짜 인생들의 틈바구니에서 그의 존재는 참으로 빛났다.
그가, 連帶(연대)의 무기였던 그의 노래가 없었다면 민주화를 외쳤던 우리들의 구호가 얼마나 삭막했을까.
순간 그의 노래와 함께 사람의 세상, 정의로운 공동체를 꿈꾸며 싸웠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선진국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아래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언제부터인가 아침이슬과 상록수의 그 정신은 오간데없고 이제 기득권에 빠져버린 그때 광장의 청춘들의 삶을 마주하니 한숨이 절로 나오고 마음이 아리다.
이런 세상에서 뒷것 김민기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견딜수 없는 분노가 치민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추억팔이나 감성적 추모가 아닌 내 삶을 돌아보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새롭게 세워야하지 않을까. 뒷것 정신이 탐욕과 불평등의 먹구름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익산 함열, 그에겐 기억조차 없을지도 모르는 고향의 후배로서 진즉에 만나 삶의 이야기라도 나눴으면 좋았을거라는 뒤늦은 회한이 밀려온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하나이 울고 서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아름다운 사람, 그가 바로 김민기였다. 푹푹 찌는 炎天(염천)의 시절에 벌써부터 그가 몹시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