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가을바람이 아니라 겨울느낌이 나는 한기를 머금은 바람이다. 지난 여름의 기세등등하던 무더위는 꽁무니를 빼고 달아나버렸다.
소심한 성격까지 가세하여 염려과 걱정이 등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이러다가 그냥 겨울이 오는 것은 아닐까. 지난 여름의 폭염에 생태계 교란이 일어났을 꽃이며 나무들을 생각하니 더 심란해진다.
날씨와 기후만 그런게 아니라 세상을 돌아봐도 그렇다. 서로 다른 존재로서 살아가다 보면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툭하면 갈등과 충돌이 일어난다. 그래서 적절한 타협과 조화의 공간, 약간의 거리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점이지대이다.
점이지대는 두 지역의 특성이 함께 나타나는 지리적 범위를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충돌완화는 물론 다양한 문화가 출현하는 문화의 샘물같은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이지대에서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다. 바로 易地思之(역지사지)의 정신이다.
일상이든 지구촌 어디든 갈등과 충돌이 일상화되어 있는 시대 ,요즘만큼 역지사지의 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가 있었을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며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살리고 상대도 살리는 공생공존의 길이다.
바로 이 역지사지를 위해서도 완충지역인 점이지대는 꼭 필요하다. 그런데 점이지대가 사라지고 있다. 봄, 가을의 실종등 기후와 계절이 그렇고 일상에서도 그렇다.
우리에겐 분단의 아픈 상징이지만 DMZ은 완충지역의 대표적 사례이다. 돌발행동에 대처하고 서로에 대해 여유를 갖게 하는 의미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평화공존에 기여해 온 DMZ의 존재 의미가 위기에 처해있다. 남북의 날선 말들이 오가고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한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드세다.
기후와 계절, 남북의 상황이 닮아간다. 세상도 그렇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지구촌 현실을 돌아보면 점이지대,완충지의 실종은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러한 현상은 공멸을 부른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함께 죽자며 핏대를 올리는 형국인 것이다.
한쪽이 다 죽을때까지 진행될 것 같은 가자지구 중동전쟁이나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 틀안에 있다. 거기에 인권이나 생명존중은 발 붙일데가 없다. 완충지대나 완충적 사고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다.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게 세상인데 작금에 목도되는 것들은 반세상이요, 반인간이다. 이러다가 끝내 반드시 공멸에 이르고 말 것이다. 단순한 흑백논리, 획일적 사고가 팽배하고 ‘나만이 옳으니까’ 너죽고 나살자의 살벌한 논리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 안타깝고 슬픈 우리의 현실이다.
회색지대라고 할지는 몰라도 점이지대, 완충지 역할을 하는 바로 그 지점이 필요하다. 한걸음 떨어져 바라보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저만치의 거리’ 말이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보자. 내가 먼저 점이지대, 완충지대의 역할을 해보자. 우리의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