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소년이 온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십수페이지를 읽지 못하고 멈춘 책이 있다. 더 이상 읽기가 두렵고 미안해서였다.


1980년 고3 시절, 이웃 광주의 아픔과 참상을 당시 제대로 몰랐던 것도 그렇고 그 후 더 치열하게 살지 못한 내 삶이 부끄러워서 였는지도 모른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고 나서 다시 그 책을 펼쳤다. 초판 23쇄 2016년 5월 31일 인쇄된 ‘소년이 온다’를 단숨에 읽었다. 한강 작가가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써내려 갔듯이 나 또한 전남도청 한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읽은 느낌이다.


어쩜 이리도 생생하게, 담담하게, 치열하게 써내려갔을까.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그 곳에서 두려움대신 뜨거운 마음으로 주먹을 불끈 쥐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을까.


"당신이 죽은 후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어디서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우리는 그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 거야."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소년이 온다’를 읽다보니 40여년전 그 열흘이 내 뇌리를,내 가슴을 후벼파고 들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도 모르게 터져나왔다. 80년 광주는 내 형제,자매,가족 그리고 우리 이웃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에 대항하고 민주주의를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권력욕에 찌든 자들이 국가를 빙자하여 총부리를 들이대고 살육을 일삼은 참담한 우리의 역사이다.


우리는 이를 광주정신이라 말한다. 그것은 사람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양심이요,정의이며 보편적 상식일 뿐이다.


이 소설을 피해갈 수 없었고, 이 소설을 통과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다는 작가의 고백이 따뜻한 무엇이 되어 다가온다.


‘소년이 온다’는 이러한 광주정신을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그 점으로 인해 광주라는 한 도시를 넘어 세계시민의 인권이자 보편적 양심으로 귀결되었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동아시아의 특수성을 벗어나 전 세계적인 보편성을 얻었으며 나아가 광주정신이 전 세계시민들에게 확산되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분단의 질곡속에서 갈등과 분열이 심화된 사회를 살아가다 보니 광주정신의 폄훼나 왜곡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하지만 광주정신은 소아병적인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큰 정신이자 인류의 보편적 가치요 인권, 평화의 정신이다.


이제 이념이나 진영논리, 갇힌 사고,낮은 수준의 삶에서 나와 한 차원 높은 단계의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우물안 개구리, 나만의 개울이나 강을 떠나 큰 바다로 나아간다면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전기가 될 것이다.


이번 한강 작가의 수상을 갈등과 분열이 아닌,조건이나 상황논리로 바라보지 않고, 인류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켜 더 나은 사회로 가는 동력으로 삼는 성숙한 선진 대한민국의 모습을 그려본다.


소년이 온다. 광주정신이 살아나고 있다.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광주 망월동 묘지,

그 소년을 만나러 가야겠다.


(지난 11월 29일 광주 망월동에서

그 소년을 만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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