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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향 Jun 15. 2024

나의 안식 1

인천댁의 행복 찾기

서울 광진구에서 인천 남동구까지 지금의 남편과 3년여의 연애 끝에 2014년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처음 인천 예비시부모님께 인사 오던 날, 아파트 단지 가까이에 소래습지생태공원이란 표지판이 보였다. 이런 곳이 있다니 궁금하고 기뻤다. 주차를 하고 내렸는데 바다 내음이 코끝을 찔렀다. 생선 비린내면 질색을 하는 내가 바다 가까이 시집을 오다니 사실 처음엔 달갑지 않았었다!

2000년 3월 시부모님이 입주받아 사시던 집을 전세 주고 시댁식구들은 모래내시장 근처 주택을 리모델링해서 이사 나가셨다. 시부모님의 도움으로 부평구 굴포천역 근처에 전세를 얻어 큰아이를 낳고 동갑내기 동네 친구도 만들며 살았다. 2년 새에 전셋값이 9천만 원이 올라 2016년 3월 우리 세 식구는 아는 이 하나 없는 지금의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 왔다. 시부모님이 쓰시던 방을 안방으로, 남편이 쓰던 방을 아이 방, 아가씨 방을 내 서재로 꾸몄다. 그 집에서 말 배우는 아이와  9시에 퇴근하는 신랑만을 기다리며 한동안 꽤 외로웠다.

소래습지공원은 2016년 4월, 아장아장 걷던 큰 아이와 처음 가보았다. 당시엔 가는 길이 정비가 되어 있지 않고 목줄 없는 개들과 큰 트럭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그렇지만 생태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신기하게 대비되던 고요한 평화가 있었다. 생경한 갯골 위로 갈매기와 오리들이 보였다. 인천의 제주도 같다며 감탄하며 자주 와야지 했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터라 그 뒤로 통 가보질 못했다.



둘째 아이 출산 후 마음의 안정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인천이 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습지생태공원에 푹 빠지게 된 건 2021년 6월, 17개월이던 둘째의 이른 기상 덕분이다. 빠르면 다섯 시, 늦으면 여섯 시면 눈뜨는 둘째와 아침에 일어나서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말똥말똥 깬 아이는 다시 잠드는 법이 없었다. 이럴 바엔 그냥 밖에서 산책이나 하자 하고 유모차를 끌고 습지생태공원으로 향했다.


아침 6시 20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할머니들은 둘셋씩 짝을 지어 초입에 들어서는 나와 반대방향으로 돌아오고 계셨고, 땀이 송골송골 맺혀 달려가는 사람, 바쁘게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사람, 개와 산책하는 사람, 파워워킹하는 사람 들을 보며 트루먼쇼의 주인공이 된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푸른 하늘과 탁 트인 시야, 상쾌한 공기, 해당화와 소나무, 새들이 나와 아이를 맞아주었다. 발길 닿는 대로 가다 염전에 비친 해를 보고 감탄하며 한참을 사진을 찍었다. 그날 나는 큐피드의 화살을 제대로 맞았다. 마치 영혼의 스위치가 켜진 것 같았다. 새벽이면 습지가 궁금해서 절로 눈이 떠졌고 오늘은 어떤 풍경과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설레었다. 물때를 따라 갯골의 모양새가 달라지는 걸 확인하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걸어갔다. 갈림길에서 다른 길로 가면 어떤 풍경을 만날지 기대하는 재미도 있었다. 운이 좋으면 일출을 보았고 신랑이 조금 일찍 마치는 일요일은 퇴근 후 신랑을 데리고 가서 습지의 일몰을 함께 보기도 했다. 주말이면 출사나 촬영 나온 사람들과 자전거 동호회, 산책 나온 사람들로 훨씬 활기를 띠었다.

평일 새벽엔 한적해서 내가 무얼 해도 상관이 없었다. 춤을 추기도 하고 음악을 듣다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누가 보면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을 하며 울기도 했다. 맨발 걷기도 하고, 그림자 사진도 찍었다. 의자에 누워 하늘과 구름을 보기도 하였으며 명상도 해보았다. 아이와는 비눗방울도 하고 곤충이나 철새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매일 매일이 새날이었다. 하늘은 매 순간 다른 모양과 속도로 구름을 띄웠고 계절별로 갈대는 옷을 갈아입었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습지는 나를 안아주었다. 이런 좋은 곳을 곁에 두고 여태 몰랐다니! 감격과 감사로 습지를 누비다 보니 자연스레 내 머릿속 습지 지도가 어렴풋이 완성되었고 아침 기상시간에 따라 코스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혹 아이가 눈을 안 뜬 날은 혼자 나가 자유를 맛보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 보면 아이는 거의 깨있었는데 아빠를 붙잡고 울고 있거나, 아이 손에 아빠 핸드폰이 있었다. 나에게 전화 한번 하지 않고 내 시간을 지켜준 신랑에게 참 감사하다.

2021년 한여름은 매일 습지를 만나며 뜨겁게 습지와 사랑했다. 그렇게 그곳은 내 영혼의 집이 되었다. 지금은 예전만큼 자주 가진 못해도 자칭습지홍보대사로, 습지일출을 지인필수코스로 넣곤 한다. 습지의 곳곳이, 내가 사는 동네가 점점 더 좋아졌고, 이곳이 좋아진 내가 더 좋아졌다. 그렇게 나는 평생을 인천에서 산 남편보다 습지를 더 애용하는 진정한 인천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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