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제 역할을 다 했다.
“모두가 제 역할을 했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시큰둥하게 보기 시작했는데, 비스듬히 누워 있던 자세를 바로 세우고 빠져들기까지 채 5분이 지나지 않았다. 따분했던 명절 연휴 무심코 클릭한 넷플릭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의 믿기 어려운 장면들 때문이다. 보통은 맘 졸이는 게 싫어 재난 영화는 거의 ‘픽’ 하지 않는다.
생명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광활한 안데스 설원, 72일 만의 생존, 실화…. 45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우루과이 공군기가 난기류를 만나 안데스 산맥에 추락한다. 비행기 추락의 생생함에 잠시도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다.
반토막 난 비행기 앞부분 승객 27명은 살아남았지만 죽어가는 사람들, 죽은 사람들, 살아난 사람들로 아비규환이다. 밤이 된다. 기온이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면서, 맥주병이 얼어터진다. 체온을 잃지 않기 위해 산 자도 죽은 자도 함께 껴안는다. 다친 이들은 고통으로 신음하고, 다치지 않은 이들도 비명을 지른다. 잠들면 안 돼 잠들지마….그 밤에 몇 명이 얼어 죽는다.
생존자들 모두 살아남기 위해 각자 역할을 하는데, 리더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생존자 중 절반 이상이 우루과이 대학 럭비팀 선수들이기에, 초반엔 주장 ‘마르셀로’가 리더로 나선다. “우리는 20대지만 여기서는 연장자야. 어른답게 행동하자”며 상황을 지휘한다. 가방을 뒤져 먹을 것을 모으고, 비행기 잔해와 가방을 이어 붙여 환자를 누이고 밤을 지낼 공간을 만든다. 시체는 따로 모은다. 리더의 지휘하에 일사불란하다. 수색 비행기가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마르셀로’는 구조의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독려한다. 그러나 다음날 ‘구조 포기, 눈 녹은 뒤 수색 재개‘라는 라디오 방송이 나온다. 사람들은 오열한다. 9일째 굶고 있는데, 영하 30~40도 눈뿐인 설원에서 수개월을 버티라니. 죽으라는 것이다.
구조의 희망이 사라진 그 순간부터는 럭비팀원인 ‘난도’가 리더로 부상한다. 추락 충격으로 3일간 정신을 잃고 깨어나니, 어머니는 이미 죽었고, 여동생도 앓다가 죽게 된다. 살아남아서 홀로 남은 아버지에게 돌아가기 위해 상황에 냉철해진다. 가능하지 않은 희망에 의지하지 않는다. 구조 포기 방송 며칠 전, ’ 난도’는 ‘시체라도 먹고 살아남자 ‘고 한다. 그러나 주장 ‘마르셀로’는 ’ 구조대가 오니,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말자’고 한다. 생존과 인간의 존엄성 사이에서 의견은 다르지만 서로를 존중한다. 운동화 끈을 씹어 먹고 담배의 연초를 뜯어먹으며 버틴다. 누군가가 ‘내가 죽으면 날 먹어도 좋아. 그래서 너희가 살 수만 있다면 말이야’라고 말하자, 다른 친구들도 ‘나도 그래’ ’ 나도 그래 ‘ 하며 동조한다.
결국, 생존을 위해 누구도 먼저 시작할 수 없는 일을 ‘난도’와 친구들이 시작한다. 칼을 다룰 줄 아는 ‘스트라우치가 사촌들‘은 멀찌감치서 모두의 눈을 피해 ’할 일‘을 한다. 먹는 이들에게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게 하기 위해, 멀리서 칼질을 하는 것이다. ‘난도‘가 가장 먼저 먹는다. 누군가는 ‘시작’ 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반대했던 주장 ‘마르셀로’도 수색 포기 방송을 듣자, 살기 위해 먹고, 살리기 위해 먹지 않겠다는 사람들을 설득한다. ‘이제 우리에겐 목숨 밖에 없어. 필사적으로 지켜야 해’
이런 상황에서 두 차례의 눈사태까지 덮친다. 포용의 리더였던 주장 ‘마르셀로‘는 눈더미에 매몰돼 죽는다. 오래 파묻혔던 ‘아루트로’는 폐에 물이차 죽어간다. 수색대가 올 때까지 연명하기엔 안데스 설원은 희망이 없다는 판단을 한 ‘난도’는 생존 사실을 직접 알리기로 한다. 설산을 넘는 데 며칠이 걸릴지, 몇 주가 걸릴지 알 수조차 없다. 중간에 어떤 위협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체력을 기르려 운동을 하고, 동료 로베르토를 설득해 출발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설산의 봉우리들을 넘고 헤쳐 열흘 만에 현지인을 만나게 된다. 그 순간은 거대한 자연의 매서움을 이겨낸 인간 승리의 벅찬 순간이다. ‘산은 당신이 달아나려 할수록 더욱 매섭게 공격해 온다 ‘는 말에도 불구하고 ’ 나는 저산을 넘을 거야 ‘라는 난도의 의지가 대자연의 공포를 이긴 것이다.
이 영화는 살아남은 ‘난도’및 16명의 생존자가 아니라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 누마 ‘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된다. 살아남은 자들의 생환의 기쁨과 불굴의 의지보다 죽음으로 동료를 살린 죽은 자의 헌신을 알리고 추모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리라.
‘누마’는 리더 ‘난도’와 함께 수색대로 활약하지만, 한쪽 다리를 못쓰게 되면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게 된다. 고민 끝에 자신의 역할을 찾는다. 사람들이 가족에게 돌아갈 때까지 버틸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누마’는 ‘먹어야 살아’라고 하는 친구에게 음식을 거부하고 잠든 채로 죽음을 맞는다. ’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귀한 사랑이 없나니 ‘라고 쓴 쪽지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기에 인육을 먹는 것에 반대했고, 가장 늦게 인육을 먹었던 그였다. 하지만 결국은 남은 친구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주는 것이 지극한 사랑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해줄 역할이 없다고 괴로워하다가 결국 가장 숭고한 역할을 찾았다. 영화의 마지막 부문에 ‘모두가 제 역할을 했음을 알린다’라는 글이 나온다.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며 귀한 사랑을 실천한 ‘누마’가 왜 내레이터였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폐에 물이 차 죽어가던 ‘아루트로’가 독실한 크리스천인 ‘누마’에게 신을 얘기하는 대목도 뭉클하다. “믿음을 잃지 마”라는 누마의 말에, 아루트로는 “믿음이 이렇게 강했던 적도 없다”며 “미안하지만 내 믿음은 너의 신을 향한 믿음이 아니야”라고 한다. 아르투로는 “너의 신은 이 산에서는 길을 알려주지 않아. 여기서 일어나는 일들은 예전의 눈으로는 바라볼 수 없어. 난 이제 다른 신을 믿어. 나의 신은 로베르토의 머릿속에 깃들어 있어. 내 상처를 치료해 주지. 난도의 다리에 깃들어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가지. 나는 다니엘의 손을 믿어. 고기를 자르는 손 말이야. 그 고기를 건네는 피토를 믿어. 누구의 살점인지는 함구해. 그 덕에 먹을 수 있는 거야. 그들의 눈을 떠올리지 않게 해 주지. 나는 그 신을 믿어. 그리고 먼저 간 친구들을 믿어”라고 말한다. 신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살기 위해, 살리기 위해 애쓰는 친구들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고난에서 헤쳐 나온 ‘난도’의 솔선수범과 불굴의 정신, 삶과 죽음을 함께하는 생존자들 서로에 대한 뜨거운 신뢰, 우정, 죽음의 헌신까지. 흔한 영웅식 재난 영화가 아니라 인간의 숭고함과 삶에 대한 진심이 깃든 영화에 가슴이 먹먹하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살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을까? ‘모두가 제 역할을 다했다’는 말에 사랑, 우정, 삶에 있어서 ’역할‘에 대한 고민도 함께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