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 퇴사생활
직장에 들어가기 전 취업 준비생이었던 나는 종로의 수많은 빌딩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많은 회사가 있는데 내 자리 하나 있기 어려운 걸까?' 우여곡절 끝에 나는 취업에 성공했고 그 회사에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직장인이 되었던 순간 나는 잠시 행복했지만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렇게 타의 반, 자의 반 시작했던 나의 직장생활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깊은 마음 한 켠에는 '퇴사하기 위해 오늘도 출근합니다'라는 다짐이 존재한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내가 처음 퇴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회사 생활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아서, 내가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서, 일단 여기는 아닌 것 같아서 등의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지금 이 곳이 좋아서, 여기서 배울 것이 많아서, 스스로 도전할 수 있어서 기타 등등 많은 이유로 퇴사하기 위해 오늘도 출근하고 있다. 단지 업무적인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라는 곳은 돈을 받으면서 '나'라는 사람을 가꾸어 가는 곳이 아닐까? 그렇다면 학원, 학교를 넘어 진정한 삶과 배움의 현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특정한 계기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인생에서 특별한 실패를 맛보지 않았던 나는 그 순간의 좌절감이 굉장한 패배로 느껴졌다.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만 했는지, 왜 쟤가 아니라 나여야만 하는지 원망하고 불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결국 받아들여야 했고 그렇다면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기쁨과 행복을 스스로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내가 왜 그런 일을 겪게 되었을까?라는 고민은 나에 대한 성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힘들었는지, 그렇다면 다음에는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하는지, 내가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액션과 달성할 수 있는 최고점은 어디인지 능동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으며 시작이기도 했다. 외부와 타인에게 향했던 시각을 나에게로 돌려오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나의 마음은 어떤 건지 고민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니 '퇴사'라는 의미가 점점 다르게 보였다.
실패와 패배라고 생각했던 내가 외부에서 내부로, 타인에서 나로 시각을 향하고 나니 조직 내에서도 내 마음이 원해서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 첫 걸음마로 윗분들을 여러 번 설득한 끝에 차선인 듯 최선이었던 목표를 달성하게 되었고 그렇게 제2의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타인이 이런 거야, 상황이 이랬던 거야, 조직이 이 모양인 거야 하는 등의 불평, 불만보다는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나는 이 직장에서 무엇을 얻고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기로 선택하니 직장 생활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퇴사는 언젠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의미를 내가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나의 직장에서의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왜 상사가 이런 일을 시키는지, 이런 말을 하는지 몰랐었던 나는 상사의 입장에서 나를 보기도 하고 업무적으로 협조해야 할 때면 이 사람과 어떻게 해야 최상의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 고민해봤다. 때로는 내가 하는 실수들에 대해서 쳐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오묘하게 나에게 끼워 맞춰 보기도 했다. 그렇게 하니 직장은 이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유로 퇴사를 해야 하는 곳이 아니었다. 퇴사 하기 위해 현재에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바라보니 '아. 회사 생활은 단순히 업무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단계별로 성장하는 하나의 장과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퇴사하기 위해 출근을 했다.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회사였는데 이렇게 좋게 바라봐질 수가 있나하고 스스로도 의아했다. 하지만 먼훗날 이 시간을 되돌아봤을 때 항상 걸어갔던 출퇴근길, 동기들, 팀원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 회사에서 보냈던 나의 시간들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한 편의 추억으로 저장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나는 만끽해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지나간 것은 그립고 아쉽기 때문이다.
직장은 생각보다 큰 배움의 장이다. 나는 그걸 직장 4년 차가 되어가는 시점에 깨달았다. 다소 늦게 깨달은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미련을 버리고 지금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도 나는 매일 도전의 연속인 날들을 보내고 있다. 때로는 또 난관에 부딪힌다. 하지만 나는 그전에 불평, 불만만 하고 이 회사 나가버려야지! 했던 것에서 다각적으로 고민해보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니 회복탄력성이 좋아졌고 내 삶에 대한 만족도,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게 되었다.
우리 모두 언젠가 퇴사를 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나는 삶을 더 배우고 싶어서 이 자리에 남아있다. 때로는 너무 좋고 편안하고 사람들이 좋아서 여기에 안정적으로 이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가도, 환경을 바꾸어 새롭게 도전해야 하는 면도 인생에 존재하기에 퇴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생은 예측 불가능한 시점에 나를 최선의 선택지로 옮겨놓을 것이다. 그러기 전에 나는 지금 회사에 있는 순간, 공간, 사람에 최선을 다하고, 삶을 배우고 배움을 접목시키는 현장으로 만들고자 한다.
지금의 나는 과거와 다른 의미로 퇴사를 원한다. 이 곳에서 최선을 다한 후 후회없이 떠날 나의 미래를 위해, 온전히 노력했을 때 얻는 기쁨, 다 완수하고 났을 때의 뿌듯함을 위해 현재, 그리고 이 공간에서 매일 도전하고자 한다. 그것이 설령 업무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회사에서는 사람과 공간 그리고 상황 속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내일도 퇴사하기 위해 출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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