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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피 Jul 05. 2020

뽀글 머리 파마 아주머니와의 당근 마켓 거래 2탄

이번에는 내 물건을 팔아봤다!


지난 주말, 당근 마켓에서 필립 코틀러 마켓 4.0 책을 3,000원에 아주 좋은 가격에 구매했다. 나의 첫 거래였다. 내가 먼저 도착해있다는 이유로 더운 날씨에 멀리서 뛰어오던 여자분. 책의 좋은 상태. 그런 기억들이 나에게 당근 마켓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만들어줬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내 물건을 팔아보기로 했다.




'장사'라는 것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던 나였는데 물건을 팔아보기로 생각하니 어린 날의 추억이 떠올랐다. 동네 문방구, 슈퍼를 자주 들렸던 어린 날의 나는 막연히 나중에 커서 문방구, 슈퍼 주인을 하면 행복하겠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물건을 많이 가질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문방구, 슈퍼 주인을 하겠다는 꿈은 머나먼 뒤안길로 보내고, 당근 마켓에 팔 물건을 찾고 있었다. '장사'라는 것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물건을 팔면 좋을까? 생각해보다가 나름의 기준을 마련했다.




1. 다른 사람이 사용해도 문제, 하자가 없는 제품일 것


2. 내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사용할 일이 적을 물건일 것




그러자 화장대 서랍 구석에 자리를 차지한 판 고데기가 떠올랐다. (판 고데기는 여성들이 곱슬머리나 웨이브 머리를 스트레이트로 필 때 사용하는 스타일링 기구이다.) 판 고데기는 생머리가 잘 어울리지 않는 내가 1년에 1번 사용할까 말까 한 물건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돈을 주고 사더라도 쓰는데 문제, 하자는 없는 제품이었다. 나는 판 고데기를 당근 마켓에 판매하기로 결심했다.



어쨌든 상품이라는 건 다른 사람이 사고 싶게 끔 만들어야 하니까 사진도 신경 써서 찍기로 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새삼 판 고데기 틈 사이로 껴있는 먼지와 흔적, 생각보다 오래된 제조년월일이 보였다. 물건을 사용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이 사용했었는데 막상 팔려고 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1. 먼지와 흔적

상대방이 샀을 때 사용한 흔적이 최대한 느껴지지 않아야 계속 사용하고 싶은 물건이라고 생각해서 판 고데기의 틈 사이에 있는 먼지나 흔적들을 꼼꼼하게 제거했다. 먼지는 뾰족한 도구로 80%는 제거했다. 사용할 때는 보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물건을 사용한다는 건 흔적이 만들어지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2. 생각보다 오래된 제조년월일

이건 복병이었다. 2011년으로 적혀 있었다. 대학교 때 산 건 기억하고 있었는데, 숫자로 보니 물건의 세월이 느껴졌다. 아무리 쓰는 데 하자가 없다지만 상대방이 오래전에 제조된 제품인 걸 모르고 구매했을 때는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라벨을 떼거나 제조년월일을 지우고 싶지는 않아서 판매글에 솔직하게 밝히고 가격을 많이 내리기로 했다.



그리고 당근 마켓에 판매 글을 올렸다.







가격과 같은 모델 최저가 가격을 알려주고 제조년월일도 적었다. 160-210도로 온도 조절이 가능하고, 머리가 쫙쫙 잘 펴지며 금손이면 s컬도 가능하다고 적었다. 이틀에 걸쳐서 '관심'을 4개 받았다. 당근 마켓에서 '관심'은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본인의 관심 목록에 저장해놓는 것을 말한다. 과연 누가 내 고데기를 데려갈까, 4명의 경쟁자 중 고데기를 차지할 1명은 누구인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고 어떤 분이 채팅을 걸었다.









첫 거래가 성사되는 걸까. 두근거렸다. '이 채팅을 잘하면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 들어온 기회를 잡고 싶었다. 친한 친구들이나 직장에서도 저런 친절함은 묻어 나오지 않는데 나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물건을 사겠다고 하는 것이 새삼 신기해서 어떻게든 성공 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단전에서부터 친절함을 끌어올렸다.







채팅을 하면서 판매를 성사시키기 위해 나는 다수의 도서에서 읽거나 어디서 곁다리로 들은 판매 전략을 보이기로 했다. 나의 첫 판매가 성공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2개씩 제시해서 어떻게든 상대방이 선택하게 했다. 그런 나의 의지가 통했는지, 채팅에 답을 한 당일 바로 거래를 하겠다고 대답해주셨다. 원래 나는 퇴근 후 집에 돌아가는 길에 편하게 판 고데기를 드리려고 했는데, 어차피 집에 가서 저녁 먹고 운동하는 겸 따릉이를 타고 가서 전해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 했기에 채팅을 한 당일 바로 거래를 하기로 했다.



약속 시간 정시에 나는 도착을 했다. 저번 당근 분은 시간을 칼같이 지켜주셨는데, 이분은 3분 후 연락이 오셨다.



'네. 5분 정도 소요 여정입니다."



걸으면서 카톡을 하시는 건지 예정이 여정이라고 오타도 났고, 소요 예정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나이가 약간 드신 분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분이 나의 판 고데기를 구매하러 오시나 하는 호기심은 줄어들 줄 몰랐다. 예측하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당근마켓의 매력인 것 같았다.



한 10분 정도 지나자 도착했다는 채팅이 왔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혹시 당근...?"


"안녕하세요~"



뽀글 머리 파마를 한 아주머니가 막 직장에서 돌아오는 차림으로 눈인사를 건네 오셨다.



"제가 급히 오느라 봉투에 돈을 넣어오지 못해서요~"



그날 건네받은 종이봉투




라고 하시면서 하얀 A4용지를 접어서 돈을 넣어오셨다고 말했다. 종이의 모양이 예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돈을 받는지는 상관없었는데 그런 말을 해주시는 것이 새삼 고마웠다. 마치 최불암씨가 진행하는 한국인의 밥상을 보는듯한 정성이 느껴졌다.



그렇게 한 1분도 안되어 거래가 끝났다. 조심히 가시라고 말한 뒤 나는 따릉이를 돌려 집을 가는 횡단보도 쪽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만나서 아주머니도 고데기를 확인하지 않으시고, 나도 돈을 확인하지 않았다. 이런 게 당근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진 모르겠는데 바로 돈을 확인해보는 것이 조금 미안했다. 그래서 시간이 조금 지나고 꾸깃꾸깃 접힌 A4용지를 폈다. 천 원짜리로 5개, 5,000원이 들어있었다. 5,000원이 들어있는 것은 당연한 건데 싶으면서도 반전이 있을까 생각했던 생각을 다시 집어넣었다. A4용지로 접어진 봉투도 다시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따릉이 페달을 밟으며 생각했다. 당근 아주머니는 마치 막 갓 볶은듯한 뽀글뽀글한 파마머리를 하고 계셨는데, 판 고데기는 왜 필요하셨던 걸까? 아이를 해줄 생각이셨나, 아니면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나? 아니면 미용실에서 일하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매하신 이유는 듣지 못했지만, 여러 가지로 상상해보는 생각들이 재미있었다. 장사를 하거나 물건을 팔아본 경험이 없는 나는 이번 거래를 통해 뿌듯함을 느꼈다. 적은 돈이지만 스스로 벌었다는 생각에 기뻤다. 직장인으로서 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5,000원을 버는 게 쉬운 일은 아니기에 마치 직장을 다니지 않던 시절 용돈을 번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이니스프리에 들려 1,300원 주고 마스크팩 1개를 샀다. 참새가 방앗간을 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구나.


5,000원 벌고 1,300원을 쓰고 돌아오는 나였다.




아직 1탄을 보지 않으셨다면!

https://brunch.co.kr/@happyin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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