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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피 Nov 18. 2021

이제 없는 사람

슬퍼할 겨를도 없이



최근에 엄마로부터 사실 지인이 작년 12월에 스스로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직장을 다니고 어느 정도 숨통이 틔었다 생각할 무렵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집에서 아주 가끔 나눈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아빠 친구의 딸이었는데, 나보다 한세 살 정도 어렸고, 어렸을 적 그 집 가족과 함께 바다도 놀러 가고, 그 집에 놀러 가서 자고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갔던 추억이 있다.

 

내 앨범에도 함께 찍은 필름 사진이 남아있는 친구였다. 바다에 놀러 가서는 같이 파도를 맞으며 파도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라는 대화를 했던 기억도 난다. 경주에 놀러 가서는 많은 문화재들을 보며 하하호호 웃었던 기억도 있다. 그 기억이 좋았어서 가끔 우리 집에서 그 가족의 이야기가 나오면 같이 식사나 함께 하자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던 작년 가을, 그 집 아주머니가 유방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사실은 아주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그 해 12월에 그 작고 귀여웠던 아이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들었다.


초등학교 때나 봤었던 아이여서 어떻게 컸을까 궁금했고, 애교도 많고 생김새도 하얗고 귀여웠던 친구라서 지금은 어떻게 자랐을까 만나고 싶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간호사를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많이 의지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상심이 컸다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그 친구 옆에 한 명이라도 따뜻한 위로를 해주는 사람이 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나를 기억하지 못했을  있지만, 내가 멀리 서라도 본인을 기억하고 보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달랐을까? 아마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그런 결정을 했겠지만, 조금이라도 맘을 돌리거나 선택을 다르게   있는 점이 있었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제 이 땅에는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도 난 일 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소식을 들었다. 없는 사람인데도 간간히 이야기하면서 잘 자랐을까 보고 싶어 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아빠는 친구와 통화를 했고, 아마 그 아저씨도 무겁게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그렇게 아빠는 엄마에게, 엄마는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고 보면 다들 사는 게 쉽지 않다고 하는데, 서로 도우며 살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 아빠 엄마 나 그리고 오빠, 강아지까지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 동안에는 행복하게 살고 서로 말도, 언어도, 행동도 상냥하고 따뜻하게 살자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무얼 해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친구가 되었다는 게 슬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만일 그 집이 같이 살았더라면,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웠다면, 어머니가 먼저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주변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직업이 좀 덜 힘들었다면 하는 여러 가지 내 프레임으로 재단한 잡다한 물음들이 생겼다.


이미 떠난 사람이 한 선택에 대해서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지만, 나는 살아있기에 앞으로 남은 내 생과 내 주변 사람들의 생, 사람의 생에 대해 여러가지 질문들이 교차했다. 열심히 이 땅에서 잘 살아보고자 다들 애를 쓰고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걸까, 난 작은 공간에서 나만을 보며 내 주변인들만 보며 살아가고 있지만, 어떤 걸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이 생 이후에 어떤 생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선택한 길은 부디 행복하게 살고 있다면 좋겠다. 먼저 간 사람들이 남기고 간 산 자들의 몫이라 함은 오늘 하루 감사하고 소박하게 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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