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요일 밤 과자점 Jun 04. 2021

It must be my lucky day 3

다른 시공간을 다녀오고, '으른'이 되었다.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었다.

옆에 간호사 분이 무어라 말을 시켰는데 마취약이 덜 깨서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쨌건 수술은 끝나 있었다. 오래 기다린 것에 비해 수술은 정말 금방 끝났던 것 같다. 오후 1시를 넘어서 시작한 수술이었는데 회복실에서 깨어난 시간이 대략 오후 4시쯤이었던 것으로 봐서.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계속 말을 걸어주던 간호사 분이 영국에 언제 왔냐 왜 왔냐 이런 얘기를 하다가 1년만 런던에 있는 거고 학생이라고 했더니 그런 와중에 맹장 수술을 한 거냐며 놀랬다. 네, 저도 놀랍네요. 그렇게 5시를 훌쩍 넘겨서 병실로 이송되었다.


마취약 덕분에(?) 그 시간대의 기억은 뚝뚝 끊겨있다. 특히 병동으로 이동한 장면이 삭제되었다. 마치 순간이동을 했나 싶을 만큼. 여기가 런던은 맞는 걸까, 내가 들어갔던 그 병원이 맞는 걸까 싶었다. 혹시 다른 곳에서 눈 뜬 것은 아닐까, 여기서 나가면 집에 갈 수 있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5시 반쯤 병동에 도착하여 혜림이, 서울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생존 신고를 마치고 나자, 간호사가 와서 진통제를 놔줬고 또 다른 분이 와서 대뜸 식사 메뉴를 물었다. 회복실에서부터 물을 주는 영국 병원의 환자 강하게 키우기는 범상치 않았다. 저녁 식사 메뉴로 파스타, 치킨 스테이크 같은 것들이 보였다. 가스 나올 때까지 물도 안 준다는 한국 병원과는 프로토콜이 완벽하게 달랐다. 그래도 그나마 고르고 골라서 야채 크럼블, 샐러드 그리고 죽 대용이라 생각하며 라이스 푸딩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수면.

수술 후 첫끼였던 야채 크럼블과 라이스 푸딩 + 다음 날 점심이었던 버섯 파스타와 정체모를 케이크 + 혜림이가 싸다준 보급품

저녁을 먹고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병문안 방문은 안되지만 필요한 물건은 보안에 맡기면 된다고 해서 혜림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전달받기로 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나의 플랏 메이트 혜림이가 눈앞에 똬!! 나타났다. 엉겁결에 혈혈단신 들어온 병원에서 18시간 만에 만난 혜림이가 너무 반가웠다! 병동까지 왔는데 막는 이가 없어서 그냥 들어오게 되었다는 혜림이는, 생필품과 함께 수박, 망고, 귤, 사과, 바나나, 율무차, 따뜻한 물에 내가 좋아하는 당근케이크까지 바리바리 많은 것들을 알차게 싸왔다. 엄마 같았다. 우리가 같이 살게 된 그 우연과 같은 인연 안에 이 계획도 있었던 걸까 싶을 만큼. 그녀의 존재는 든든했고, 위안이 되었으며, 감사했다.


혜림이가 돌아가고 의사(동의서 설명해준 의사는 아니었다)가 와서 아픈 곳은 없느냐, 저녁은 잘 먹었느냐 물어보더니, 수술은 잘 끝났고 회복 상태도 괜찮은 것 같아서 내일 퇴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정말, 내일 퇴원해도 되는 건가요. 역시, 강하게 키우는 영국 병원이었다. 중간에 혈압, 체온 체크를 하느라 자다 깨다하긴 했지만 잘 자고 어 났다. 생각보다 배도 안 당기고, 생각보다 걸을 만했다. 아침메뉴로 고른 죽(Oat Porridge)도 의외로 맛있어서 잘 먹었는데, 간호사가 돌아가면서 내 혈압에 관심을 보였다. 여러 명이 와서 각자 재보더니 뭔가 약을 들고 왔다. 혈압이 너무 낮은데, 현기증 나거나 어지럽지(dizzy) 않아요? 이건 혈압 올려주는 약인데 일단 이거 맞고 조금 있다 다시 재볼게요. 라며 약을 넣어줬다. 난 특별히 못 느끼겠는데...


담당의(동의서 설명해준 의사도, 어젯밤에 왔던 의사도 아니었다)라는 분과 의사들이 왔다. 모두 낯선 얼굴이었다. 응급실에 들어와서 정말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을 만났다. 세 번 이상 만난 의사와 간호사가 없다. 나는 계속 같은 사람인데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자고 일어나면 얼굴 바뀌는 우진이처럼 느껴졌다. 내게 해주는 말과 일은 같은데 얼굴만 바뀌는 느낌. 어쨌건 의사는 내게 오늘 오후에 퇴원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럼 follow-up 방문은 언제 하면 되냐는 나의 질문에, 안 와도 된다고. 녹는 실이고, 상처도 깨끗해서 올 필요 없다고 했다. 정말 드물지만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겨서 욱신거리거나 열이 많이 나면 그때는 오라고. 역시, 강하게 키우는 영국 병원.


나의 혈압은 점심 식사 후에 곧 정상 수치를 회복했고 간호사는 이제 괜찮은 것 같다며 퇴원 관련한 내용을 안내해 주었다. 학교에 제출할 진단서를 발급해 달라고 말하고, 수술이랑 입원 비용은 어떻게 지불하냐고 했더니 간호사가 지불할 비용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다 잠시 고민하더니 혹시 해외에서 왔냐며 그럼 확인해보겠다고 하더니 일단 지금은 지불해야 할 비용은 없고 혹시 생기면 병원에서 별도로 연락을 줄 거라고 알려주었다. 잠시 후에 진단서와 퇴원 확인서를 주면서 내게 환복하고 이제 집에 가라고 했다. 약은 없냐고 했더니 약 처방도 없다고 했다. 2021년 5월 13일 오후 3시. 나는 그렇게 퇴원했다. 진통제, 항생제 하나 없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캄캄한 새벽 내 발로 걸어 들어온 36시간의 긴 터널을 지나, 충수 끝 염증 난 돌기만 떼어 남겨놓고 다시 내 발로 걸어서 이 세상으로 돌아왔다. 병원문을 나설 때의 그 낯설었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머물렀던 Royal Free Hospital 7E병동 1-4호실, 내가 누워있던 병상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과 어딘지 알 수 없었던 공간들. 내 발로 이동한 공간들이 거의 없었기에 공간의 개념을 상실했고, 마취로 인한 기억 단절로 시간의 개념을 상실했다. 그래서일까, 마치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갈 수 없는 곳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문 바깥 편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 자동차 소리가 익숙하지만 생경했고, 그 사이 내린 비로 서늘하면서 습한 대기의 느낌은 좋으면서 낯설었다. 평행 우주론처럼,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다른 시공간을 다녀온 느낌이 이런 걸까 싶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의무기록이 증명해 주겠지만, 그곳이 과연 내가 알고 혜림이가 알고 기록이 말해주는 Royal Free Hospital이 맞았을까 싶은 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영국에 오기 전 2년 여의 시간 동안 태어나 처음으로 자차 운전을 하면서 서울과 세종시를 줄기차게 오가고, 강릉까지 드라이브도 가고, 강화도, 고창, 공주로 가을 여행도 갔던 시절. 나는 드디어 '으른'이 된 기분이었다. 혼자 심야 고속도로를 달리며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창밖에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좋다며 이래서 운전을 한다고. 매일 엄마나 아빠가 태워주던 차를 이제는 내가 부모님을 모시고 어디든 가게 되어서 뿌듯했다. 이렇게 어른이 되었다며 좋아했었다. 그러나 '으른'이 되는 과정은 역시 그런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취약한 순간, 누군가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홀로 남겨졌다. 아는 사람은 없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만 있었으며.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의 조각들과 기억하지만 낯선 시간이 생겼고, 내가 지배할 수 없는 공간 속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불안에 떨기보다 침착했다. 나한테 왜 이래!라고 분노하기도 했지만, 수용하고 일면 즐기기도 했다.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잘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나는 오롯이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와 역설적으로 혼자가 되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고마움을,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나란 사람을 확인함으로써, 또 한 번 진정한 '으른'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을 깨우치라고 '충수돌기염', 네가 선물해준 2021년 5월의 36시간의 기록을 여기서 마무리한다.  

문자 그대로, 그리고 반어법으로도,

It must be my lucky day!

매거진의 이전글 It must be my lucky day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