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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밤 과자점 May 30. 2021

It must be my lucky day 2

기다림 + 인내심 = 영국 병원 응급실

AM 04:00

 나도 대기실의 적막에 동참하려고 했다. 소변 검사와 혈액 검사를 끝내고 남들처럼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 인식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 뱃속은 뇌가 내리는 지령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거세게 저항하고 있었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결국 아픔을 못 참고 혈액 검사했던 진료실로 가서 아무나 붙잡고 말했다. '저기 나 배가 너무 아파서 도저히 저기 앉아서 못 기다리겠으니 침대에 누우면 안 될까?' 내가 딱해 보였던 것일까, 내게 베드를 하나 주고 누워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혈액검사 결과 때문이었는지 내가 너무 아프다고 해서인지 어쨌건 진통제는 아니었지만 수액도 하나 달아줬다. 누우니 좀 살 것 같았고 이내 잠이 들었다.

  

AM 05:10

 누군가 흔들어 깨우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응급실 당직의로 보이는 젊은 남자 의사가 매우 상냥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언제부터 아팠느냐, 어떻게 아프냐 묻더니 배를 눌러보며 아프면 말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뛰어 보란다. 제자리에서 뛰는데 아팠다. 오른쪽 배가 쿠욱 쿠욱 쑤셨다. 내 표정과 신음 소리에 그가 대충 파악이 되었다는 듯이 아무래도 맹장염인 것 같은데 그러면 수술을 해야 한다, 그런데 본인이 결정할 수 없고 수술팀과 상의를 해야 하니 기다리라고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다시 온 의사는 수술팀에서 CT를 찍어보고 진단을 확정할 예정이라며, 일단 CT를 찍고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한국 응급실을 생각하고 이제 곧, 수술팀이 오고 수술도 받을 줄 알았다.


AM 06:50

 CT를 찍어보자고 말한 지 거의 1시간 반이 지난 후에야 수술팀 담당 외과의가 왔다. 다시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맹장 맞는 것 같은데 CT를 찍어보자고 말했다. 데자뷔인가. 이 양반들아, 일단 CT찍자고 아까 말했잖아!! 그러고 나서야 드디어 양쪽 손에 투약용 바늘을 각각 꽂고 CT를 찍으러 어딘가로 실려 갔다. 실려가는 휠체어의 바퀴 소리가 무척 귀에 거슬렸다. 호러 무비에 나올 법한 끼이익 하는 소리.

 CT를 찍고 다시 응급실 간호사가 나를 응급실로 데려다주었는데, 처음 기다렸던, 앉아서 기다리는 대기실에 휠체어를 세워두고 가버렸다. 앉아 있기 힘들 만큼 아프다고 이 사람들아!!! 결국 나는 몇 분 앉아 있다가 다시 아까 누워있던 진료실로 가 간호사에게 다시 침대에 눕겠다고 말했다. 속으로는 이 센스 없는 처사에 화가 났지만 화낼 기운도 없었다. 침대에 누워 있으니 이번에는 진통제를 놔줬다. 진통제 덕분에 나는 다시 눈을 붙일 수 있었고 그렇게 또 시간은 흘렀다.


처음 달아주고 간 수액, 양손에 찔러 넣은 투약용 바늘. 각각 다른 색깔로 해주겠다며 생색내던 간호사가 생각난다.


AM 08:30

 곤히 잠들었는데 또 누가 나를 깨웠다. 이번에는 또 새로운 간호사가 와서 깨우더니 자리를 이동해야 한다고 걸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진통제 덕분에 통증은 한결 나아서 괜찮을 거 같다 말하니 응급실 당일 치료 환자용(Same Day Emergency Care) 진료소로 나를 안내했다. 아 이제 곧 의사가 오겠구나 싶어서 침대도 없는 공간이었지만 꾹 참고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기다렸나 수술팀 마취과 의사가 와서 간단히 설명을 해줬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수술은 매우 간단할 거고 1시간 이면 끝날 거예요. 복강경 알아요? 그 수술이고 오늘 수술하면 내일 퇴원할 수 있어요. 이제 수술 집도의가 와서 설명해주고 수술 동의서 쓰고 나면 수술하러 갈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이미 응급실 도착한 지 6시간이 훌쩍 넘었고, 나는 여전히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더 기다려야 했다. 그래, 조금만 더 기다리자.


AM 11:00

 진통제 약발은 떨어졌고, 나와 함께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이 차례로 담당 의사, 치료사 등등을 만나서 설명을 듣고 진료실에서 나와서 어딘가로 갔다. 그 모습을 온전히 지켜본 나는 결국, 인내심의 바닥을 느꼈다.

 "의사 언제 오는 건데? 나를 죽일 셈인가?"

 "오전 교대시간이라 회의 중이고 언제 올진 우리도 몰라. 인내심을 가져야 해."

간호사가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아파 죽겠는데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그럼 진통제라도 놔줘"

 "응. 그건 우리가 해줄 수 있지. 잠시만."

이걸 유머와 위트로 해석해줘야 하는 가 싶은 기분 나쁨을 느끼면서 진통제를 한 대 더 맞고 나서야 나는 평정심을 찾았다.


AM 11:50

 드디어 수술팀 집도의가 왔다. 또 새로운 의사였다. 나의 이 오랜 기다림에 대한 분노를 표현할 찰나도 주지 않고 너무나 상냥하고 친절한 말투로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수술에 대해서 설명해주겠다고 했다. 꽤 오랜 설명을 듣고 궁금한 게 있냐고 묻길래,

 "수술 끝나고 나면 누가 나를 보살펴 줘요?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가 방문할 수 없는 거죠?"

 "회복실에서 간호사가 봐줄 거고 병동 옮기고 나면 큰 수술이 아니라서 혼자서도 충분히 케어할 수 있을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라며 인자하고 상냥한 눈빛으로 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그가 웃으며 내민 수술 동의서에 보호자 서명란은 없었다. 나는 내 수술에 나 혼자 동의하고, 일어날지 모를 각종 위험 요소들에도 동의했다.

"수술은 1시쯤부터 준비 들어갈 테니 이제 정말 조금만 더 기다리면 돼요."

그렇게 새벽 3시부터 수술방에 들어가기까지 나는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기다렸다.


이 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내가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느긋한 성격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인내심은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이 있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음식이 좀 늦게 나와도 투덜거리긴 하지만 대놓고 타박하거나 불만을 전달하지는 않는 편이었다. 그리고 아픔이나 불편함도 잘 참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영국 병원은 나의 인내심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실험대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렇다, 영국 병원 응급실이 내게 건넨 강렬한 인상은 '기다림 + 인내심'이었다. 사람이 정말 죽음을 눈 앞에 둔 병쯤에는 걸렸어야 기다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럼 나는 기다릴 수 있는 충수돌기염 정도였던 것에 고마워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홀로 병원에 남겨졌지만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이 지루한 기다림을 랜선으로 함께 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동거인이자 식구이고 보호자이며 엄마였던 혜림이가 있었고, 매주 줌으로 수다방을 열어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나누는 독수리 오형제들과, 세종시에 터를 잡았던 2016년부터 든든한 이웃이 되어 준 세종시 반상회 친구들, 무려 20년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언제나 그 자리에 함께 있어준 고등학교 동창들, 그리고 여수에서 의무과장으로 있는 어진 사무관님의 걱정 어린 카톡 덕분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쳐갈 때쯤 보내주는 응원, 안부, 위로의 문자들로 다시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응원해주는 당신들과도 연락할 수 없는 수술이 시작되었으니, 부디 전신마취에서 무사히 깨어나기를 바라면서, 산소 호흡기를 쥔 손에 조금씩 힘이 풀리는 기분을 느끼며 귓가에 들려오는 클래식 선율 속으로 잠들었다.


-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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