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토끼 Jun 06. 2021

런던에 몸을 바친 너에게

feat. 맹장

2020년 3월, 한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한걸음 늦게 코로나가 확산된(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감지가 늦어진 걸지도) 영국에서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고 전국봉쇄령(lockdown)이 내려졌다. 초기에 집단면역 방안이 오가고 독감과 비슷하다는 둥 의료진 외 일반인은 마스크 쓸 필요 없다는 둥 한국과 아주 다른 정책을 내놓은 영국에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집에 머물 뿐, 허용된 활동은 최대한 누리는 기색이었다. 날이 좋으면 공원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했고, 가뭄에 콩 나듯 보이는 마스크나 실리콘 장갑을 낀 영국인들도 정확한 사용법을 모르는 듯 상점에 들어갈 때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마스크를 꺼내 쓰고, 장갑 낀 손으로 얼굴을 만지는 행동을 일삼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도 마스크 없이 돌아다녔고 별일 아니겠지,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쩌면 큰일났다고 생각하면 불안하고 무서울까봐 애써 외면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루가 멀다하고 한국에 있는 친구와 지인들로부터 걱정어린 메시지가 왔다. 

안 들어와? 거기 너무 심각하던데?
거기서 뭐하냐 얼른 안 오고!

바깥에서 보는 것만큼 심각하지 않으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조심하고 있다고 둘러대며 서로 건강하라는 말로 보통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이런 얼버무림이 통하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내 대학교 베프 윤미다.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윤미 때문에 패닉 옴 ^^;;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윤미의 마음이 덕분에(?) 저 대화를 나누고 패닉이 와 두어 시간 심호흡을 하고서야 안정을 되찾았다. 전반적인 의료 시스템 붕괴로 코로나 아닌 다른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실제로 상당수의 암 수술이 밀렸고 아직도 밀린 수술을 다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동양인에 대한 범죄 등 우려할 만한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윤미가 언급한 맹장 터지는 일이 실제로 발생할 줄이야. 내가 아니라 나의 동거인 유진이에게.


5월 12일 새벽. 한잠 자고 있는데 내 이름을 들은 것 같았다.

혜림아...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에서 유진이 목소리라는 인지는 한 것 같았다. 평소에도 방에 있을 때는 웬만하면 밖에서 부르지 않는 유진이라 어렴풋이 사이렌이 울린 것도 같다.

- 응?
- 나 병원 가야할 것 같아.
- 왜? 아파?
- 맹장 같아.

정확한 대화는 기억나지 않는다. 

- 알았어. 신분증 챙겨.

세수를 하지 않으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는 한시가 급한 와중에도 세수를 했다. 세수를 하면서 이럴 시간이 어딨어! 스스로에게 따졌던 기억이 난다.


평소에도 구급차를 부르면 1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영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대형 종합병원이 있다는 게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걸을 수 있겠어?

엄살이라고는 1그램도 없는 유진이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멀쩡할 걸음으로 병원까지 걸었다. 새벽 2시30분, 이 시각의 바깥 공기는 처음이었다. 걸으면서 맹장염이 영어로 뭔지 검색했다. 어펜디싸이티스, 어펜디싸이티스. 입으로 반복했다.


응급실이라 쓰여있는 입구로 들어가 얘가 맹장염 같아요는 말을 하자 유진이 체온을 측정하더니 초록색 종이 쪼가리를 주고는 나가서 바로 옆 입구로 들어가라고 한다. 얼른 옆 입구로 가서 유진이 손에 들린 쪽지를 보여주자 들어가라고 하더니 뒤따르는 나를 막아선다. 입구 컷이 이런 거구나. 보호자라고 해도 고개를 흔든다. 그 사이 유진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얼른 다시 처음 갔던 곳으로 가 나는 못 들어가냐고 묻자 코로나 때문에 환자만 들어갈 수 있다고. 그럼 앞으로 절차가 어떻게 되냐, 일단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가 맹장염이면 수술을 할 거라고. 검사 결과 나오는 데만 두 시간 넘게 걸릴테니 집에 가 있으라고. 여기 있을 곳 없다고.


그렇게 나는 터덜터덜 돌아왔다. 오래 기다릴 생각으로, 근무시간이 되면 병원에서 일할 생각으로 노트북까지 챙겨온 게 민망하게. 


집에 돌아와 식탁 의자에 앉았다. 유진이 너무 엄살이 없어서 별로 안 아픈 줄 알면 어떡하지?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빨리 해줄 텐데. 그 사이 유진이는 아픈 몸을 이끌고 접수하고 침대도 없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눈 뜨면 서울이면 좋겠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게 미안했다. 눈치없이 배는 고파와 냉장고를 여니 내가 먹는 요거트가 거의 다 떨어진 걸 본 유진이가 새로 한 통 사온 게 눈에 들어왔다. 요거트는 있는데 너는 왜 없는 거야. 요거트를 먹고 유진이와 한참 메시지를 주고 받다 샤워를 했다. 혹시라도 연락이 올까 지퍼백에 전화기를 넣고 옆에 둔 채로.


소변 검사 피 검사 CT, 코로나 검사까지 마친 유진이는 장장 10시간을 기다린 끝에 오후 1시 넘어서 수술실에 들어갔다. 그동안 유진이는 혼자 외국에서 아픈 몸으로 모든 걸 혼자 해냈다. 혹시 수술할 때는 보호자를 들여보내주려나 희망을 갖고 기다렸으나 퇴짜 맞고 유진이가 수술 들어간 후에 깍두기를 담았다. 심란할 땐 집안일이지.


수술 끝나고 필요한 물건을 전달해줄 수 있다고 해서 유진이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치약 칫솔 화장품 마스크와 혹시 밤에 배고프면 먹을 수 있게 과일과 당근케익을 싸갔다. 7층 입구에서 전달하라는 말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문을 열어준 직원이 묻지도 않고 그냥 자기 할일 하러 가버려 얼떨결에 병실을 기웃거리다 유진이를 찾았고 뜻밖에 30분 정도 머물다 갈 수 있었다.

얼떨결에 들어간 Royal Free Hospital 7층 병실. 씩씩하게 혼자 수술 받고 회복 중인 유진이.


다음 날, 유진이가 퇴원하기 전에 집 정리를 했다. 신기하게 평소에는 바로바로 치우고 정리하는데 유진이가 없으니 의욕이 없어 24시간 만에 꽤나 어지럽혔다. 청소기를 돌리고 유진이 방 환기를 시켰다. 침대와 바닥에 놓인 잠옷이 전날의 다급함을 담고 있었다. 현관문 앞에 슬리퍼가 없어 아니 설마 그 와중에 신발장에 넣은 거야? 했는데 방에 벗어놓은 잠옷 바지 밑에 숨어 있었다. 


40년의 많은 세월 중 하필 영국에 있는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 중에 존재감을 드러낸 유진이 맹장. 덕분에 유진이는 영원히 런던 햄프스테드 히스를 잊을 수 없을 듯. 아픈 맹장 부여잡고 두 발로 걸어 들어가 36시간 만에 맹장-less 버전으로 역시나 두 발로 씩씩하게 걸어나온 유진아, 쉽게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두 번은 하지 말자. 장기들아 나대지마! 

매거진의 이전글 It must be my lucky day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