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요일 밤 과자점 Jul 04. 2021

'뮤지컬 스타'를 보다가

내 꿈은 뮤덕이었나?

 나는 뮤덕, 뮤지컬 덕후다. 일 년에 최소 20편 많으면 30편 가까이 작품을 보러 다닌다. 한 작품을 회전문 도는 것(여러 회차를 관람하는 행동)은 다반사며, 좋아하는 공연을 예매하기 위해 티켓 오픈 날 일하다가도 화장실로 피신하여 티켓팅을 하고, 티켓팅에 실패하면 취켓팅(취소한 티켓이 열리는 새벽에 하는 티켓팅)을 위해 밤잠을 줄이고, 더 좋은 자리로 전진하기 위해 예대(이미 예매되어 있는 좌석의 대기자로 등록하여 해당 좌석이 취소되면 예매 우선권이 오는 것)를 거는 그런 뮤덕이다.


 영국으로 유학을 오려던 이유, 그리고 남들은 생활비가 적게 들고 영어 성적 기준이 낮아서 쉽게 갈 수 있거나 혹은 커리큘럼이 여유로운 곳을 가기 위해 런던이 아닌 지방 대학을 선택하는데 나는 굳이 굳이 런던으로 온 이유. 다른 여러 이유도 있겠으나, 사실 뮤지컬을 보고자 하는 뮤덕의 마음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난 2020년 10월에 와서 지금까지 9개월을 런던에서 지냈는데, 정작 내가 본 웨스트엔드 뮤지컬은 단. 한. 편. 도. 없. 다. 이것은 비극이고 시련이며, 분노이자 좌절이고, 상실이며 고통이다. 내가 뮤지컬 관람 제로 레코드를 세우는 동안 한국에서는 수없이 많은 작품들이 코로나 시기에도 어렵지만 꾸준히 무대에 올라갔다. 심지어 내 배우, 조승우 배우님의 '맨 오브 라만차'까지. 하. 하. 하. 그래서 내가 무슨 짓까지 했는가 하면, 어차피 가지도 못할 '맨 오브 라만차' 공연의 예대를 괜히 걸고, 그 걸어 놓은 예대 중에 정말 운 좋게 하나 건져서 실제로 예매까지 했다. 물론 취소했지만. 뭐 하는 짓인지.


 그러나 다행히 그 와중에 한국에서 진행된 온라인 공연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뮤지컬 베르테르, 젠틀맨스 가이드, 개와 고양이의 시간, 몬테 크리스토까지. 한국 시간대에 맞춰가며 어느 날은 아침 7시에 일어나 공연을 본 날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뮤덕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타는 목마름은 여전하다. 과연 언제쯤 나는 다시 공연장에 갈 수 있을까. 백신 2차까지 맞고 나면 공연장에 가려고 했는데 요즘 델타 변이로 감염자 수가 쭉쭉 올라가는 터라 가도 될지 고민이다. 알코올 분무기 지참하고 공연 보고 나오면 온몸에 알코올 샤워하고 마스크 갈아 끼고 집에 와야 하려나 싶기도 하고, 어쨌거나 모든 것이 쉽지 않다. 에잇. 이 놈의 코로나!


 그렇게 오늘도 코로나를 탓하며 하루를 보내다가 최근에 시작한 '뮤지컬 스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참가자들 저마다 각자의 노래와 연기를 보여주는데 나는 왜 괜히 소름 돋고 눈물이 나는가. 팬텀의 그 어디에, 웃는 남자의 세상은 잔인한 곳, 레미제라블의 On my own, 시스터 액트의 The life I never led, 애니의 Tomorrow까지. 뮤지컬 넘버 하나로 작품 전체가 들어온다. 그게 뮤지컬의 힘이기도 하다. 내가 보았던 많은 작품들을 짧게라도 다시 만나는 그 순간이 고마운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뮤지컬을 처음 본 순간, 뮤지컬 배우를 하고 싶다고 느꼈어요.'라고 말하던 고등학생 배우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러웠고 후회됐다.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일이 있었는데. 내 꿈이 뮤덕이 아니라 뮤지컬 배우 아니 어쩌면 뮤지컬 연출자가 될 수 있었을 그때. 그날. 그 시절.    

괜히 예매했다 취소한 조승우 배우 회차 맨 오브 라만차, 명성황후의 마지막 넘버 '백성이여 일어나라' 장면

 나의 첫 뮤지컬은 1996년 명성황후 초연이었다. 윤석화 배우님이 명성황후를, 고종 역할로 홍경인 배우님이 출연한 그 공연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백성이여 일어나라'가 올려 퍼졌던 공연장, 그 무대가 생생하다. 동생이랑 같이 보았는데 둘이 OST CD를 달달 외울 만큼 듣고 배역을 나눠서 불렀었다. 어느 날은 내가 명성황후, 동생이 궁녀, 어느 날은 나는 불란서, 동생은 노서아. 그리고 나도 그때, 그날, 그 시절에 마음을 먹었어야 했다. 모범생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짓눌리지 않고, 첫째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지 않고. 내 심장이 뛰는 내가 좋아하는 그 일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고민해 봤어야 했다.


 그리고 명성황후 25주년 기념 공연도 끝난 지 한참이 지난 21년 7월, 나는 그저 뮤지컬 덕후의 길을 걷고 있다. 어느 날은 공연장에 가서 깔깔 웃고, 펑펑 울고, 배우님의 몸짓 하나에 소름 돋기도 한다. 물론 그래서 행복하다. 그러다 때때로 무대 위에서 빛나는 배우들을 볼 때마다, 공연이 끝나고 무대 아래에서 박수받는 연주팀을 볼 때마다 내가 저 자리에 있으면 행복할까를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내 마음과 타협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냥 이대로도 행복하다고. 지금은 늦었다고. 그러다 다시 묻게 된다. 정말 내 꿈은 뮤덕이었나?


 "이 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다" -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너란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