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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밤 과자점 Aug 13. 2021

알고 보면 따뜻한 Prof. Barzelay

영국에서 만난 츤데레 교수님

 LSE에 와서 여러 교수님들을 만났고(물론 Zoom으로)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자유방임주의 교수법을 실천하셨다. 그러나 유독 딱 한 교수님이 속되게 말하면 '멱살 잡고' 끌고 가는, 하버드 MBA 식 교수법을 실천하셨는데 바로 Barzelay 교수님이셨다. (실제로 교수님은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다)


 경영학과 교수님이시면서 공공경영을 주로 가르치셨는데 커리큘럼을 살펴보고, 강의 소개 세션을 들었을 때 나처럼 경영학 배경이 있으면서 공공조직 관리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적절해 보였다. 매주 각 나라별 공공조직 경영혁신 사례가 포함되어 있었고, 혁신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론적 배경을 다양하게 접목할 수 있었다. 과목 이름부터가 Public management: 'Design oriented approach' , 언뜻 생각하기에 매우 입체적인 강의가 진행될 것 같았다.


콜드 콜, 그리고 Souvenir


 실제 수업은 강의와 세미나 그리고 특강으로 구성되었다. 정규 강의는 월요일 오전 9시에 1시간가량 교수님이 중요 내용을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하셨다. (월요일 오전 9시 강의를 하는 것을 보고 눈치를 챘어야 했다. 월요일 오전 9시는 학부 때도 필수 과목 아니면 신청하지 않던 시간이었는데) 그런데 이 수업 시간에 그 주의 케이스와 이론을 간략히 브리핑해주시고 나면, Q&A 시간이 진행된다.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묻는데 여기서 바로 교수님 성향이 드러났다. 다른 교수님들은 Q&A 시간에 질문이 좀 이상하더라도 옳은 방향으로 해석해서 질문을 수정해주시거나, 우문현답을 실천하셨다면, 우리 바즐레이 교수님은 질문이 이상하면 그건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주셨고, 역으로 교수님이 질문을 하셨다.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실 때까지.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올바른 답이 나올 때까지 물으셨다.


 강의 후 수요일에는 2시간 동안 세미나가 진행되는데 세미나 준비를 위해 이른 새벽, 늦은 밤을 가리지 않고 교수님의 추가 설명 자료들이 쏟아졌다. 다 읽고 가기에도 벅찼다. 좀 쉬엄쉬엄 하시면 안 되나 싶을 만큼. 그리고 세미 시간, 이 때는 교수님의 하버드 MBA 식 교수법이 빛을 발했다.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이번 주엔 누구로 할까를 고민하시고(아니 어쩌면 미리 생각하고 오셨던 것 같다) 한 명을 정하셨다. 그럼 그날은 교수님과 선택받은 자와의 콜드 콜(Cold Call) 시간이다. 끝없는 질문(소크라테스가 좋아했을) '왜', '어떻게',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되면'의 폭격을 받는 시간이다. 더러는 당황하고, 더러는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모든 학생들이 그래도 끝까지 답변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교수님은 인정사정없이 폭풍 질문을 하시면서 올바른 답이 나오면 얼굴에 바로 미소가, 잘못된 답이 나오면 얼굴이 바로 일그러지시는 터라, 답하는 이로 하여금 당혹감과 창피함을 처절하게 느끼게끔 해주셨다.


 그리고 하루는 내가 당첨되었다. 케이스 관련 질문들로 식은땀이 흐르나 싶을 만큼 긴장 상태로 질문과 답변이 오고 갔다. 내 시간이 끝나고 나니 그날의 남은 수업 시간은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쏙 빠졌다. 이 수업 괜히 신청했다는 후회마저 들었다. 그런데 반전은, 그날 수업이 끝나고 벌어졌다. 이렇게 멱살 잡고 끌고 가시는 바즐레이 교수님이 친히 나에게 메일을 보내셨다. 'Souvenir'라는 제목으로.


Youjin

 Here’s a souvenir of your first participation in a class with Socratic teaching about management.  Thanks for taking the risk and sticking with the dialogue.    

Souvenir

 나의 줌 회의 영상을 캡처한 사진과 함께 보내주신 메일이었다. 아, 우리 츤데레 바즐레이 교수님. 멱살 잡고 끌고 가더라도, 이렇게 귀여운 면이 있으시구나! 그 메일을 받고 교수님에 대한 꽉 닫힌 마음이 살짝 열렸다.


기한 연장과 Small gift 

 

 12주간의 빡빡했던 바즐레이 교수님과의 수업이 끝났다. 남은 것은 평가용 에세이 제출뿐이었다. 그런데 하필, 과제 제출 마감을 일주일을 남겨두고 충수돌기염 수술을 받았다. 퇴원하고 정신을 좀 차린 후, 교수님과 학과 사무실에 수술 증명서를 첨부하여 에세이 제출 마감 기한 연장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님이 두 개의 답변 메일을 보내셨다. 하나는 학과 사무실에 본인이 심사위원장 권한으로 마감 기한 연장을 허락하니 처리해 달라는 메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런던에 있었던 거냐며 아직 입원하고 있는 건지, 누구 도와줄 사람은 있는 건지 걱정된다며 별도로 메일을 써주신 것이다. 내가 퇴원했고 친구와 함께 지내서 괜찮다고 메일을 드리자 또 바로 괜찮으면 작은 선물을 보내고 싶으니 주소를 알려달라고 하셨다.

 

 먼 타국에 와서 엉겁결에 수술받고 바로 다음날 퇴원한 데다가 혜림이가 옆에 있어서 뭔가 서러움을 느끼거나 외로움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교수님의 그 메일 하나에 몇 줄 되지도 않는 문구에 갑자기 내가 꽤 큰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혜림이 말고 영국 하늘 아래에 나의 아픔을 위로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다는 사실에 위로받았다. 보내주실 선물이 무엇이 되었든 나는 그저 콜드 콜을 사랑하는 바즐레이 교수님의 세상 따뜻한 메일로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렇게 주말이 지났고 교수님은 꽃다발을 선물로 보내셨다. 쾌유를 바란다는 카드와 함께.

 

카드, 그리고 꽃다발

  

 너무나 식상한 말이지만 그래도 이 말 밖에 없다. 사람은 겪어 봐야 하고, 오래 지내봐야 안다. 한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세상 어디에서도 만고불변의 진리 이리라. 그리고 또 한 가지. 빡빡한 교수님의 강의도 결국은, 사실은, 학생들을 지극히 아끼는 마음에서 오는 열정이었다. 사랑이 없으면, 애정이 없으면, 그 누구도 무엇인가에 그토록 최선을 다하지 않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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