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런던에서 외식하기
'아직 오픈 전이니까 조금 기다려 주겠어?'
'응 그럴게. 우리 바깥 자리에 앉을 건데 괜찮지?'
'물론, 원하는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
우리에게는 늘 일어나는 일이다. 아침 8시에 문 여는 카페에 7시 50분에 도착해서 바깥 테라스 자리를 스캔하고 고심한다. 어느 자리가 사람들의 이동이 가장 뜸할까, 테이블이 넓어서 혹시 우리 옆에 누구를 앉히지는 않을까, 설마 이 아침부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까? 메뉴를 고르기 전에 자리를 고르느라 이미 한 차례 피로감이 온다. 아,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 안 쓰는 게 기본 조건인 영국에서 외식하는 어려움이란!
런던 테라스에서 아침을
영국이 4월에 한 차례 거리두기를 완화하고, 식당들이 테이크 어웨이에서 벗어나 드디어 아웃도어 다이닝을 오픈했다. 혜림이는 (물론 그전부터) 일주일에도 몇 군데씩 가고 싶은 카페, 식당을 찾았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우리의 첫 번째 외식은 혜림이가 아끼는 'Ozone', 두 번째는 'Kaffeine', 그리고 세 번째가 'HIDE'에서의 아침이었다. Ozone에서 아침을 먹었던 날은 날이 아직 너무 춥고, 해가 들지 않는 자리라 오들오들 떨며 먹었기에 맛있었지만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Kaffeine에서의 아침은 제대로 된 식사라기보다는 그냥 간단하게 커피에 바나나 브레드 한 조각이었기에 행복했지만 강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4월 30일, HIDE에 방문한 날은 달랐다.
코로나 때문에 4월만 하더라도 우리는 되도록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안에서만 돌아다녔기에 1시간 20분가량을 걸어서 HIDE(Green Park역에서 1분 거리인데)에 도착했다. 8시 30분 오픈이었으니, 우리는 7시에 집에서 출발(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진지함을 시현했다). 가장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사수하려면, 미리 예약을 했더라도 오픈 전에 도착해야 한다! 테라스 가장 끝자리에 자리를 잡고, 그리고도 못 미더워 테이블을 더 끝으로 옮겨 옆, 뒤 테이블과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오기 전에도 몇 번이고 확인했던 메뉴판을 다시 한번 스캔, 그러나 내정하고 왔던 대로 크로크 마담 하나와 각자 크로와상, 플랫 화이트를 시켰다. 미슐랭 1 스타 레스토랑의 아침이었기에 서비스도 훌륭하고 모든 것이 완벽했다.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테라스에서, 샛노란 서니 사이드업 노른자를 가르며, 잼, 버터, 각종 스프레드에 한 겹 한 겹 정성 가득한 크로와상을 먹으면서 우리는 연신 '그래 이거지', '너무 좋다', '역시 남이 차려주는 밥이지' 라며 감탄을 쏟아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느껴보지 못했을 행복감이었지만, 역으로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토록 외식이 힘들일도 아니었다. '당연한 것들'에 대한 절실함과 고마움은 개개인의 방역 개념이 한국과는 전혀 다른 런던에서 더 크게, 더 강하게 온몸으로 다가왔다.
삼박자가 맞아야 가능한 외식
그날을 기점으로, 아웃도어 다이닝을 향한 혜림이의 열정이 타올랐고 구글 지도에 혜림이가 말해 준 우리가 가야 할 곳 목록이 꾸준히 표시돼서 지금 내 구글 지도는 온통 초록색 깃발이 날리고 있다. 나도 한국에서는 나름 맛집 찾아다니는 것, 새로 생긴 카페나 식당 찾아다니는 것을 즐긴다고 열심히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커피와 먹는 것에 진심인 혜림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매우 부지런했으며 치밀했고 노련했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환경을 고려하여 철저하게 조사했고 모든 기준에 부합해야 최종적으로 나에게 통보된다.
1. 첫 박자는 메뉴
일단 아침 식사에 매우 진지한 혜림이에게 '커피'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요인이다. 이탈리아식 진하고 쓴 커피는 혜림이에게는 커피가 아니다. 적당한 산미와 적절한 묵직함을 지니면서 너무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온도의 쫀쫀한 우유 거품이 함께하는 플랫 화이트를, 혜림이는 이제 '비주얼'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걸러낼 수 있다. 그리고 식사 메뉴 역시 허투루 고르지 않는다. 혜림이가 생각하는 메뉴의 조합과 창의적인 식자재, 한마디로 메뉴 하나쯤에는 그 식당 만의 Kick이 필요했다. 또한 그 킥이 진정성 있는 것인가를 찾기 위해 구글 검색, 인스타 검색 정도는 기본이었다. 이것들을 갖췄다면 일단 후보로 들어올 수 있다.
2. 두 번째 박자는 테라스
메뉴가 괜찮다고 해도, 코로나 시대에 실내 다이닝은 하지 않는다. 7월에 모든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고 (물론 해제되기 전에도 그랬지만) 대체로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니는 런더너들과 부대끼며 실내에서 밥을 먹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실외 자리가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외 자리가 있는 것만으로는 혜림이의 조건을 통과할 수 없다. 옆 사람들과 적절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하고, 런던의 변덕스러운 날씨로 혹여 비가 내릴 수도 있으니 비를 피할 수 있는 천막이 쳐져 있는지도 봐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갖추었다면 다음은 하늘의 뜻이다.
3. 마지막 박자는 날씨
아웃도어 다이닝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다. 하루에도 비가 왔다가 해가 났다가 흐렸다가 바람이 불다가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하는 런던 날씨이기에, 마지막은 바로 '쨍하게 해나는 날'이어야 한다. 세찬 비바람을 뚫고 밥을 먹을 수는 없다. 그리고 햇살이 등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날 테라스에서 먹는 음식이 주는 행복감을 우리는 이미 'HIDE'에서 경험했다. 그래서, 그러므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날씨를 검색한다. 과연 다음 주에는 언제, 외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신이여 허락하소서.
이게 이럴 일인가
삼박자를 갖추어 정해진 D-day. 아침, 점심, 저녁 그 어느 외식이건 우리의 마지막 노력은 오픈 시간 전에 도착하는 것. 10분 전 도착을 목표로 바지런히 준비하여 나간다. 점심과 저녁은 괜찮지만 아침은 혜림이도 나도 각자의 생활패턴에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기상시간이 이른 혜림이는(새벽 5시 전후) 최소 8시까지 공복 상태를 유지해야 하고, 기상시간이 늦은 나는(아침 8시 전후) 새벽 6시쯤에는 일어나야 한다. 그나마 조금 더 마음 편하게 먹기 위해서. 우리는 이게 이럴 일인가를 생각한다. 밥 한 번 먹기가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그러나 이럴 일이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고, 무탈히, 맛있게, 즐겁게 먹기 위해서.
방금 카톡으로 사진이 도착했다. 매우 오래전부터 혜림이의 리스트에 올라있던 'Dusty knuckle bakery'의 'Greengage and almond praline'. 자두를 좋아하는 날 위한 추천. 오늘도 혜림이의 Must eat in london 리스트는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