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첫 번째 문제는 사회과학 부문의 에세이를 쓴 적이 없다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태생이 이과생이었다. 고등학교, 대학교를 쭈욱 이공계 생으로 지냈다. 최소한 그 당시 내가 공부했던 대부분의 과목의 답은 정해져 있다. 숫자로 계산해서 맞거나 틀리거나. 증거에 기반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하나의 문제에 대하여 여러 관점이 존재하고 각각의 논리가 나름 합리적이고 의미 있는 사회과학 분야는 일상으로도 학문으로도 낯설었다.
사실 그 말이나 이 말이나 내 눈에는 도긴개긴이었다. 그리고 영어 논문을 일주일에 10여 편씩 읽으면서 수업을 쫓아가기도 너무 바쁜데 내 생각이란 게 뿌리를 내릴 여유가 없었다. 수업 준비 과정에서 읽는 논문들 모두 제각기 자기 말이 맞다고 이야기하면서 거기에 맞는 증거를 대는데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나는 솔로몬이 아닌데, 어눌하게 솔로몬의 흉내만 내고 있다. 더하여, 공공관리, 정책학이라는 분야가 실용학문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실증적 근거(Empirical evidence)들이 많이 쓰인다. 그런데 이 실증적 근거라는 것은 일정 시기에 하나의 나라에서 특정한 정책이 수립되거나 실행되었던 사례들이 많이 쓰인다. 고로, 거기서는 맞았지만 여기서는 틀릴 수 있다. 반대로 거기서는 안되었지만 여기서는 될 수도 있다. 어떤 조건들이 만나서 저자가 생각하는 결론이 될 수 있었는지, 아주 첨예하게 접근하면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나오고 아주 관대하게 바라보면 모두 맞는 말이 된다. 어. 쩌. 라. 고.
그러나 제출해야 하는 에세이들은 '~에 대해 논하시오.' 혹은 '어느 정도까지 ~이라고 생각하는가?' 식의 열린 질문들이다. 무책임한 질문들이다. 모든 것은 학생이 스스로 정해야 한다. 찬성할지 반대할지, 얼마만큼 찬성할지. 어떤 근거로 찬성하는지. 앞선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잘 살펴보고 그 안에서 나의 입지를 밝혀야 하는 것.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지난날을 후회해도 너무 늦었다. 생각을 하자. 그러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논문을 읽었다. 분명 몇 주 전에 읽었던 논문인데 다시 보면 처음 읽는 느낌. 새로운 이 느낌. 그렇게 계속 읽다 보니 신기하게도 나의 생각이 정리가 되어갔다. 이때 기분이 사뭇 묘하게 행복한데 그 이유는 이렇다. 그동안 계속 업무만 하다 보니 생각의 폭도 좁고, 사실상 생각은 하지만 사고는 하지 못했던 시간들에 갇혀 있다가 나름의 기준으로 ‘사고’를 한다는 느낌이 주는 행복이었다.
나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야
에세이 형식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사회과학 논문을 읽다 보면 거의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참고문헌 인용문이 나온다. 그러니까 저자는 이게 온전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고, 내 앞에 수많은 학자들이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했었단다 라고 나를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방식을 나도 에세이에서 써야 하는 것, 이 과정이 정말 어렵다. 일단 내가 선행 연구 논문을 읽었다 하더라도 제대로 이해했는지도 모르겠고, 과연 어디까지 선행 연구이고 어디부터가 내 생각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했다. 특히 적절한 참고문헌을 찾고 인용하고 마지막에 이를 정리하는 과정, 그 자체가 낯설었다.
그러나 이 문제도 결국 많이 읽는 자가 답을 얻는 것이다. 계속 읽으면서 나도 수많은 사회과학자들처럼 글을 풀어나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물론 에세이를 쓸 때, 수업시간에 읽었던 글들 중에 나의 논지를 뒷받침해줄 사람이 없을 수 있고, 그럴 경우 전자 도서관을 뒤져서 나와 생각이 유사한 사람을 찾아내면 된다. 나는 그렇게 독창적인 사람이 아니므로, 내가 하는 몇 안 되는 생각들쯤은 이미 수 없이 많은 학자들이 하고 또 했다. 부지런을 조금 떨면 되는 것이다. 역시, 공부도 숙제도 글쓰기도 엉덩이가 한다. 오랜 시간을 들이면 결과는 대체로 크게 엇나가지 않는다. 이래서 인생은 정직하다. 뿌린 대로 뿌린 만큼 거두는 것.
참고문헌의 늪에 빠질 때쯤, 기막히게 '시간'의 압박이 찾아온다. 언제까지 읽고만 있을래. 정리를 좀 하렴. 이때 필요한 것이 읽은 논문들을 보기 쉽게 정리하는 프로그램인데 나는 Zotero를 썼다. 역시 인간은 기술을 이용해야 한다. 이과생 만세! 그리고 참고문헌 리스트 작성은, 도서관에서 논문을 찾으면 citation형식에 맞춰서 복사해서 붙이면 되게끔 잘 정리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의외로 쉽게 해결! 역시, 기술자 만세!
영어라는 장벽을 넘으려면
세 번째 문제가 제일 심각한데 영어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글은 한국어로 써도 어렵다. 그런데 영어라니! 나는 해외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도 없다. 타고난 언어적 감각이라는 것도 없다. 영어는 아무리 써도 써도 어려운 남. 의. 나. 라. 말.이다.
그렇지만 LSE시스템에(다른 영국 내 대학들도) 감탄한 것이, 이런 방식의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유학생들을 위해 에세이 쓰는 법에 대한 튜토리얼이 상당히 잘되어 있다. 먼저, 과목 담당 교수님이 에세이 쓰는 법에 대해 강의를 하고 조교가 멘토링 카페를 운영하면서 에세이 작성 과정에 대해 질의응답 시간(Q&A Session)을 운영한다. 또한, 각 단과대학에서 자신들의 학문 분야에서 활용하기 좋은 에세이 쓰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평가되는 가에 대해 자세히 정의해 놓았다.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Writing 수업을 따로 열어준다. 일회성 세미나 형식도 있고 몇 주에 걸친 강의와 실습 방식도 있다. 공부는 역시 혼자 하는 게 아니다. 도움을 받아야 할 때는 확실하게 손을 내밀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가 2000년대에 유학을 안 오고 2020년에 유학 오게 해 주셔서.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의 힘을 여기서 이렇게 체험하는 건가요?! 영어로 쓰다가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구글 번역, Papago에게 물어본다. 의외로 읽을만한 문장으로 번역이 되는데 다시 읽으면서 수정을 조금씩 해주면 어찌 되었든 초안 작성은 할 수 있으니 이렇게 감사할 때가. 앞으로의 세상은 더 발전하겠지? 참 다행이다.
그렇게 2,000자 에세이 첫 과제를 완성하던 날, 대략 3박 4일에 걸쳐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모두 글쓰기에 투자했던 그 경험.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성취감이었다. 결과를 떠나 나 스스로에게 수고했다 말해줄 수 있는 뿌듯함.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 하나 써서 제출하고 숨 좀 돌리면 또 하나가 기다리고 있는, 빡빡한 일정의 LSE다. 달리기도 힘든데 허들을 넘으며 달리려니 이미 다리에 힘이 풀린다.
LSE Department of Government의 채점 기준과 내가 받았던 Feedback중 하나
2021년 8월 현재. 이제 나는 일만 단어 논문만 제출하면 험난한 여정이 끝난다. 그동안 받았던 에세이 피드백은 수우미양가로 치면 '미'쯤 되려나? 그러나 나는 행복하다. 회사에서 쓰던 보고서가 아닌, 사고하는 기쁨을 느꼈기 때문에. 그리고 언어의 장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매달려 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 역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특히나 나이 들어 하는 공부는 나 좋으려고 하는, 아니 나만 좋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