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과 함께 했던 나트륨 폭탄 점심 식사 이젠 안녕
회사에 다니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해가 뜨기 전 캄캄한 이른 아침 5시 30분에 차에 시동을 걸고 올림픽 대로의 끝과 끝을 오가는 편도 40km 출근길을 통과하자마자 점심시간이 기다려진다. 100평이 넘는 사무실 공간을 토막 내어 놓은 파디션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일어난 지 7시간 만에 맞이하는 따뜻한 햇살과 상쾌한 공기, 잠깐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
하지만 아침식사를 매일 굶고 다니는 나에게는 고탄수화물이 필요했다. 출근하느라 바닥난 에너지를 박박 긁어모아 오전 업무를 마치고 나면 현기증이 났다. 빠르게 당과 지방의 충전이 필요했다. 영양소나 건강 따위를 신경 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1분만 늦으면 20분을 기다려야 하는 점심식사 자리잡기 전쟁에서 빠르게 승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점심의 메뉴는 다양했지만 목적은 딱 한 가지였다. 최대한 싸고, 맛있게 내 배를 든든하게 채우는 것. 밀가루와 쌀밥, 나트륨의 환상 조합인 메뉴들은 회사 앞에 가득했다. 가정식 백반부터 김치찌개, 부대찌개, 낙지볶음, 제육볶음, 순댓국, 쌈밥, 스파게티, 쌀국수, 삼겹살, 돼지갈비, 그리고 분식까지.
퇴근 후 집에 가도 아이들의 식사를 먼저 챙겨야 하니 저녁식사도 부실할 수밖에 없는 상황. 유일하게 나에게 먹을 수 있는 자유 시간이 허락되는 식사는 점심이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과장이라는 어정쩡한 중간 직급을 달고 있는 나는 후배들의 점심 식사 메뉴를 존중하거나 상사의 메뉴를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팔팔한 20대 후배들의 메뉴는 주로 햄버거가 많았고, 40대 중반 이상인 상사들은 해장을 위한 뼈다귀 해장국이 큰 사랑을 받았다.
신선한 샐러드와 뜨듯한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여유를 부리고 싶은 날에도, 속이 더부룩하고 몸이 무거운 날에도 나의 메뉴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점심 메뉴를 거부하긴 힘들었다. 밥을 먹고 나면 늘 식곤증이 몰려와 나른해졌고, 너무 배가 불러 가끔 짜증이 났으며, 소화가 되지 않은 날이 많아 가스활명수를 달고 살았다.
그래, 그래도 그게 어디냐.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거, 아이들 없이 먹는 즐거움, 그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결국 마음만 즐거웠던 식사는 나에게 역류성 식도염과 만성 소화불량을 가져다주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 함께 점심을 먹을 동료는 없어졌고 그 자리에 아이들이 함께 했다. 아침, 점심, 저녁을 함께 먹는 나의 10세, 7세 절친들의 식사 챙기기는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식재료와 식사 메뉴는 나의 고유 영역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의 입맛에 맞추느라 굉장히 다양한 메뉴들을 준비하지만 내 식사만큼은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짜파게티를 끓여줘도 나는 샐러드를 먹는다. 아이들이 파스타와 탄산음료를 마셔도 나는 야채가 듬뿍 들어간 샌드위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아이들에게 김치볶음밥을 해줘도 나는 고구마와 닭가슴살과 훈제 연어를 먹는다. 아이들을 위한 식단을 챙기면서도 나를 위한 식단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이게 엄마의 가장 큰 장점 아니겠는가.
물론 아이들이 먹고 남은 음식을 먹어야 할 때도 있고, 가족 전체가 외식을 하거나 라면을 끓여먹는 날도 있다. 하지만 타인의 취향을 존중해야 할 경우가 많은 직장생활과는 그 마음가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늘 지방, 탄수화물, 나트륨 폭탄인 저녁식사를 했다면, 내일 아침, 점심은 가볍게 샐러드와 과일로 조절할 수 있다. 소화도 잘 되고, 몸에 좋은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확실히 직장에 다닐 때보다 건강한 식사를 하고 있는 덕분에 나의 소화 상태는 굉장히 양호해졌다.
오늘 아침 아이들 메뉴는 소불고기와 쌀밥이다. 나의 메뉴는 호박고구마와 닭가슴살, 훈제연어, 달달한 배, 그리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다. 아이들이 식사하는 동안 나는 내가 먹고 싶은 초간단 다이어트식으로 함께 식사를 한다. <그래도 사람은 밥을 먹어야지>라는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어 좋은 나만의 식사.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
나는 이렇게 매일 건강한 음식들로 나를 채우고 있다.
나와 아이들의 건강을 함께 챙기는 즐거운 식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