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전 프리랜서로 함께 일했던 아는 동생을 회사 앞으로 불렀다. 평소 업무적으로 가깝게 지냈지만 개인적으로 만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나 역시도 살짝 긴장되었다.
"거절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밀려왔지만 기왕지사 해보기로 결심했으니 새로운 일에 함께 도전하는 방향으로 어떻게든 잘 구슬려보기로 했다.
"송 대표. 나랑 팟캐스트 하자"
말로 해도 충분했던 것을 굳이 제안서를 만들어 동생에게 드리 밀었고 보험 보장을 상세 비교 설명해주는 설계사처럼 내가 시작하려는 새 프로젝트의 장점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다 아는 사이에 서류 봉투를 드리 미는 것도 웃긴데 그걸 진지하게 듣고 있는 그녀.
"오케이. 얼굴 나가는 영상 아니고 큰돈 드는 것도 아니니 한번 해봐요."
그렇게 팟캐스트 송프라김프리쇼는 시작되었고 110개가 넘는 방송 콘텐츠를 함께 쌓아갔다. 콘텐츠를 쌓으면서 우리의 추억도 함께 쌓여갔다. 강의를 주업으로 하는 두 여자들이지만 오디오 콘텐츠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소재를 찾고, 구성을 하고, 대본을 쓰고, 녹음을 하고, 편집을 하는 모든 일이 색다른 배움이었다.
1달에 2번 정도 만나 녹음을 하고 난 후엔 우리들만의 조촐한 회식을 했다. 맥주잔 앞에서 나눴던 숱한 이야기들은 함께 일하는 여자들의 공감대를 뛰어넘어 결혼과 커리어에 대한 깊은 주제로 연결되었고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믿음과 신뢰가 깊어졌다. (현재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 지난 방송들이 업로드되고 있다.)
결혼 적령기에 있는 그녀는 연애와 일, 결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늘 걱정했고, 그 많고 험난한 산을 넘어 어느덧 산 중턱의 능선을 걷고 있는 나는 결혼 생활에서 내가 느끼고 경험했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여과 없이 나눠주었다.
나는 결혼 예찬론자, 결혼에 적극 찬성표를 던지는 드문 유부녀다. 솔직히 나는 결혼 이후의 삶이 더 행복하다. 두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사는 삶은 생각보다 견딜만했고 힘들었지만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도 할만했다. 수차례 남편과의 갈등이 있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결론은 지어졌고, 나는 성장했다.
직장인에서 프리랜서, 다시 직장인이 돼 보기도 했고 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대학원을 졸업했다. 독박 같은 육아를 하면서도 우리 부부는 수많은 타협 끝에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갔고 자산도 늘어갔다.
이런 내 모습을 큰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초등학교 입학까지 수년을 옆에서 지켜 본 그녀는 나에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언니를 보면 결혼 그까짓 거 할만한 것 같고 행복할 것 같아"
그녀의 눈에 내가 행복해 보인다니. 육아휴직 2년, 실업급여 7개월 동안 일은 안 하고 탱자탱자 놀고 있는 내가 행복해 보인다니. 일하는 나를, 멋진 워킹맘인 내가 아니라 육아에 온 힘을 쏟고 있는 내가 일에 중독되어 있던 예전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니.
결혼이 막연히 두려웠던, 하지만 결혼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착하고 수더분한 남자를 만나 7월에 결혼을 한다.
며칠 전 청첩장을 전해주겠다며 가깝게 지내는 프리랜서 지인들과 홍대에서 가볍게 점심을 먹고 헤어졌고 그녀는 인스타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처럼 행복하게 멋지게 사는 것이 목표라는 문장을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한 결혼이, 두 아이를 키우며 너무도 평범하게 살고 있는 내 모습이 행복해 보이고 멋져 보인다니.
일에 미쳐있을 때엔 <열심히 사시네요>라는 말이 칭찬인 줄 알고 살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열심히라는 단어가 싫어졌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행복해 보여요>라는 말이었는데 가까운 동생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