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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남편을 비난하지 않는 여유로움

by 멘탈튼튼 김프리

저는 결혼 9년차입니다. 한 명의 남편이 있고,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4인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어요. 남편과는 동호회에서 만나 결혼까지 딱 1년 걸렸네요. 남편과 연애를 할 때는 제 몸과 마음이 많이 튼튼해진 상태였고 감추고 싶었던 마음의 허물들을 어느 정도 털어놓을 수 있는 심리상태라 남편에게 참 많은 것들을 이야기 했고 결혼이라는 아름다운 관문으로 들어서게 되었어요.


그런데 살다보니 결혼생활에 대한 만족도는 우상향 곡선이 아니였어요. 신혼 초기 때는 서로의 콩깍지가 눈에 잘 붙어 있으니 싸울 일도 없었고 서로에게 모진 말을 할 이유도 없었죠. 그러다 아이가 하나 태어나니 결혼생활에서 새로운 국면이 펼쳐집니다. 둘 다 처음 부모가 된거라라서 육아에 대한 생각과 방식도 달랐고, 맞벌이 부부다보니 둘 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죠.


피로도가 쌓이니 예민해지고 타툼이 자연스럽게 늘게 되었습니다. 타툼이 깊어져서 장기전으로 진입할 때도 많았습니다. 사실 육아 때문에 생기는 트러블은 대화로 풀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서로가 인정하고 있었고, 저나 남편 둘 다 언성을 크게 높히는 스타일이 아니라 충분히 협의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은 이야기가 좀 다르더라구요. 특히 저는 남편이 저에게 이런 말들을 하면 이성을 잃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어요.


[직장인 시절 일과 육아에 지쳐 힘들다고 할 때]

- 그러니까 누가 힘들게 일 하래?

- 너는 니가 좋아서 일하는거잖아. 나는 생계를 위해 일하고


[퇴사 후 육아맘일 때]

- 농담으로 차 바꿔달라고 말했더니 "니가 벌어서 사"

- 너 부수입으로 돈 번 거 있잖아. 그걸로 너 하고 싶은 거 해

- 책을 도대체 왜 쓴다는거야? 니 책을 누가 사서 읽기나 하겠어?

- 그냥 일하지 말고 육아하고 살림만 해


특히 저는 성취욕이 강한 편이에요. 무언가를 스스로 기획에서 혼자 프로세스를 만들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에요. 사회적 역할을 가지는 것이 저에게는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남편은 제가 직장을 다닐 때나 퇴사 후 육아를 할 때에도 똑같이 저의 사회적 가치를 손상시키는 말을 합니다.


같이 벌어 생활비에 보테는 저의 일을 취미 쯤으로 여기며, 제가 겪는 직장생활의 고단함은 아르바이트 스트레스 정도로 여기는 말들, 소액 부업을 짬짬히 한다하지만 버는 달보다 못 버는 달이 더 많은 저에게 스스로 돈을 벌어 차를 사라고 이야기합니다. 제 이야기를 엮은 책 한권을 출간하기 위해 매일 읽고, 쓰는 전쟁을 치루는 저에게 도대체 책을 왜 쓰냐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다가 우연하게 잡힌 페이 높은 일을 하려고 조기 퇴근을 부탁하면 본인은 너무 바쁘니 조기퇴근이 어렵고 그냥 일하지 말고 살림과 육아만 하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굉장히 서글퍼집니다. 몰론 일부러 저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쯤은 압니다. 하지만 함께 살고 있고 저를 많이 이해한다는 남편이 아주 가끔은 지능적 안티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남편 빼고 저를 아는 가까운 지인들 모두가 저의 꿈을 응원하는데 남편은 응원은 커녕, 상처가 되는 말들을 저에게 날립니다.


성취욕에 휩싸여 해야되는 일에만 몰두해 있을 때는 이런 말들을 듣는 순간 바로 말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저도 똑같이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들을 내뱉었고 결국 둘에게 상처만 남기고 관계는 한참 냉랭해졌습니다만 지금의 저는 실실 웃으면서 남편에게 뼈 있는 말을, 남편이라면 당연히 생각해볼만한 질문들을 던집니다.


"나는 육아맘이고 하루종일 집, 애들 학교, 애들 학원만 왔다 갔다 하는데 나보고 돈을 벌으라고? 풀타임 직장맘일 때는 일하지 말라고 하더니 이제와서 일을 하라고 하네? 당신 진심이 뭐야?"


"당신이 지금 말하는 일들, 브런치, 팟캐스트, 블로그, 인스타그램 사실 돈 안돼. 그런데 내가 왜 열심히 하고 있는 줄 알아? 나는 지금 내 독자가 1명도 없는 작가지망생이야. 내 책을 한 권이라도 사람들에게 더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당신 말대로 누가 내 책을 돈을 주고 사서 보겠어. 그래서 열심히 하는거야. 당신 조차도 내 책을 돈 주고 사서 보지 않을 것 같아서"


"여보, 나는 글을 쓰고, 노래를 하면서 나를 표현하는 것을 곧잘 해. 이런 재주가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이 없어. 아내가 책을 쓸 꿈을 꿀 정도면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글쓰는 능력이 좀 있다는 거 아니겠어?"




이렇게 보면 참 서러운 저의 대답입니다. 제가 지금 육아만 하는 상황에서 돈을 얼마나 많이 벌 수 있을까요? SNS에서 등장하는 월 1,000만원 버는 소수의 육아맘 같은 재능은 없습니다. 네, 저는 장사하는 재주, 사업하는 재주는 없어요. 그저 매일 이렇게 글을 쓰고, 자존감을 높이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더 나은 창의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저의 재능을 남편에게 인정 받고 싶은 게 욕심은 아니지요?


저는 이제 남편이 날린 화살에 잠깐 움찔했다가도 금방 제 마음을 수습할 수 있는 내공이 생긴 것 같아요. 새벽기상과 독서 덕분입니다. 마음공부에 좋은 책들을 2년간 약 200권을 읽었어요. 큰 돈을 버는 것보다 더 큰 성공은 마음근육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벽시간 동안 내면 성찰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남편의 말들에도 휘둘리지 않게 되었고 일상의 대화조차도 브런치의 글감으로 변신시키는 멋진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변화는 내 안에서 먼저 시작되는 말을 실감하고 사는 요즘입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저를 보아주지 않아도 화가 나거나 서운하지 않아요. 사실 남편도 따지고 보면 남이니까 남편이 저를 어떻게 보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남편의 영역이니까요.


새벽기상이 저에게 준 큰 선물 중 하나는 남편과의 대화법이 달라졌다는 것이에요. 이젠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은 적당히 넘길 줄 아는 여유도 생겼고,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주고 따뜻하게 감싸줘야 하는 사람이 저라는 것을 알게 되니 말로 생길 오해들도 그냥 흘러가는 해프팅 쯤으로 여기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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