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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그래도 나를 나아가게 한다.

by 멘탈튼튼 김프리

엄마가 본업인 저는 코로나19로 덕분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아졌어요. 전면 등교 중지일 때는 말할 것도 없었어요. 아이들이 눈을 뜨고, 눈을 감는 매 시간을 정말 바삐 움직였어요. 삼시새끼를 준비하는 요리사, 두 아이들 온라인 학습을 돕는 학습도우미, 통신환경과 컴퓨터와 스마트 디바이스를 매일 점검하는 홈 IT 서비스 매니저, 아이들과 집 안에서 함께 놀고 생활하는 동네 언니, 친구, 아는 동생, 옆집 이모의 역할까지 참으로 많은 것들을 해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좀 사정이 나아져 7살 딸 아이는 매일 유치원에 가고, 10살 큰 아이는 격주로 등교를 하니 한 달 4주 중 절반은 오후 시간을 마음 껏 쓸 수 있습니다.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아이들 없이 제 일을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 귀한 줄 몰랐어요. 해가 뜨면 아이들은 각자의 위치로 자연스럽게 장소 이동을 했거든요.


이번주는 큰 아이가 원격수업을 하는 주입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꼬박 4시간을 선생님과 친구들을 Zoom을 통해 화상으로 만나요. 소통이 안 될 것 같죠? 아니요. 생각 이상으로 시끄럽습니다. 선생님은 쉬는 시간 중간 중간 음악을 틀어주고, 수업시간엔 조를 짜서 토론과 모둠활동을 합니다. 반 전체 친구들이 참여하는 수업은 더 소란합니다. 온라인 화상 어플로 초등학교 수업이 가당키나 할까라고 생각했던 저의 편견을 완전히 무너뜨렸어요.


빙고도 하고, 방탈출 게임도 하고, 민속놀이도 하고, 화이트 보드에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려요. 이용하는 도구와 공부하는 장소가 바뀌었을 뿐, 초등 3학년 아이들의 에너지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니 온 집이 얼마나 시끄럽겠어요. 소음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프로게이머가 쓰는 헤드셋도 준비해줬건만 싫답니다. 의자에서 앉았다 일어나기 불편하다고요. 가끔 수업 중에 만든 종이 비행기를 날리고 윷놀이도 하고 그러더라구요. 충분히 이해하고, 그래서 그냥 편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조용했던 저의 9시~1시까지의 시간이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되다보니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거에요. 50분 공부하고 10분 쉬는 시간 동안 아이는 "엄마~"를 외치며 저의 존재를 확인하고, 간식을 달라, 과일을 달라 등등 수업에 집중하기 위한 포도당 섭취를 갈구합니다. 열심히 챙겨주다보면 일의 맥락이 끊겨 처음부터 다시 하기 일수, 했던 일을 또 하고, 수정했던 걸 또 수정하고 반복합니다. 진도가 안나가요.


요즘 저는 책 출간을 위한 초고작업과 블로그 관리에 열을 올리고 있어요.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콘텐츠를 구성하는 일은 흐름이 끊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컨디션 좋고 집중이 잘되면 1,800자 에세이는 30분이면 뚝딱 써내려갈 수 있고, 블로그 포스팅은 20분이면 끝이 납니다. 하루에 딱 1시간,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이면 그걸로 만족입니다만 해가 뜨기 전에는 이 연속된 시간을 얻어내는 것이 굉장히 힘이 듭니다.


사실 아이 때문만도 아니에요. 세상이 밝을 때는 모두들 제 할 일을 처리하기 바쁘기 때문에 전화, 카톡, 이메일, 문자가 시도때도 없이 옵니다. 이것저것 일을 처리하다보면 뭔가 되게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뭘 했나 적어보면 한 게 없어요. 큰 아이가 원격수업인 주에는 어쩔 수 없이 저의 오후도 이렇게 그냥 흘러가럽니다.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가는 걸 멈추면 안되지요. 출근할 곳은 없지만 제 나름대로 미래의 밥벌이를 위해 해야되는 일들을 하나씩 해내고 있는 중이거든요. 이런 저런 장애들이 있지만 완벽한 조건에서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은 없어요. 모두 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 환경을 이용해가며 목표를 달성하니까요.


저를 성장시키는 시간은 바로 새벽이에요. 일상이 시작되기 2시간 전에 일어나 밀린 글도 읽고, 미쳐 다 하지 못했던 일들을 처리하고, 건강기능식품을 챙겨먹고, 글을 씁니다. 오늘 나아갈 걸음을 미리 한 발짝 떼어놓는거죠. 앞으로 살짝 전진하는 시간을 충분하게 보내면 오후의 부산함도 괜찮습니다. 조급하지 않아요.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고, 살면서 처리해야 되는 사소하고 소소한 일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도 저의 일이지만 그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이 제 자신이에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앞장서서 해내는 것만으로도 삶의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아이도 크고 저도 커야죠. 엄마도 중요하지만 저라는 이름 석자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 나를 지금보다 조금 더 앞자리에 놓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꼭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요. 잠시 잠깐 나를 돌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곧 멘탈관리, 마인트 컨트롤이라고 생각해요. 주변을 돌아보면 다들 비슷하게 살아요. 그 중에서 유난히 행복해보이는 사람의 비결은 바로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일부러라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에요. 마음관리, 감정관리만 잘해도 행복을 느끼는 빈도는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오늘도 새벽을 만났습니다. 새벽을 만나기 시작한 이 후부터 제 일상은 좀 더 풍요로워졌어요. 꽤 오랫동안 새벽을 만나는 생활을 이어나갈 것 같아요. 새벽을 만나는 것은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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