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은 감각 천재, 나는 일상 예술가로 정했다.
나를 키운 엄마는 나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매사에 불만이 많고, 무엇이든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으며, 하고자 하는 것 또한 많아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라고 했다. 내가 정말 그랬나 생각해보면 엄마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기 보다는 항상 그 자리에서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자주 요구했으며 무언가 불편을 느끼면 인내하기 보다는 제거해달라 표현했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내 신경을 건드리며 말을 걸어왔기에 자주 긴장했고 피곤했다. 미역국을 끓여주면 김치볶음밥을 해달라 했고, 계곡에 가자고 하면 수영장에 가고 싶다며 떼를 썼다. 지극히 사소하고 못 참을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지만 어릴 적 나는 대부분의 일상을 이렇게 보낸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힘들다고 했다. 비위 맞추기가 너무 까다롭다며 참다 못해 매를 들거나 모진 말을 퍼부었다. 부부싸움의 99%의 원인제공자였던 어린 김프리는 그래서 항상 엄마의 인정을 갈구했다. 엄마 마음에 들고 싶은데 무언가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갈대같은 변덕과 앝은 인내심은 엄마의 화를 더 키울 때가 많았고, 나는 제안을 했지만 엄마에게는 버거운 감정노동이었다.
역시 인생은 만만치 않다.
딱 너랑 똑같은 딸 낳아서 키워보라고 했던 엄마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 딸은 정말 나와 많이 닮았다. 얼굴 생김새, 몸의 형태, 말투, 성격, 취향 등 모든 것이 나를 쏙 빼닮았다. 누가 봐도 내 딸이고, 안 봐도 내 딸이라는 것을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알만큼 A~Z까지 나와 똑같다. 보이는 것만 똑같으면 좋은데 안 보이는 것도 똑같아서 그래서 요즘 나는 힘들다. 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 나니 셀 수도 없는 많은 요구에 점점 지쳐가고 있는 중이다.
빵을 주면 밥을 달라고 하고, 계란 말이를 해주면 계란 후라이를 달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학교는 가지만 쉬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전화로 손이 다쳤네, 배가 아프네, 조퇴를 해야겠네라고 하며 그 공간에서 빠져나올 궁리를 한다. 학교에서 남아 하는 한글 공부는 선생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하교 이후에 가야하는 태권도를 안 가기 위해 정말 창의적인 핑계를 만들어낸다. 친구가 팔을 긁었다거나 갑자기 발목이 아프다며 눈물을 흘린다. 어르고 달래 태권도를 끝내 놓으면 그 때부터 수도 없는 요구가 쏟아진다.
태권도를 갔다 와서 더우니 아이스크림과 간식을 사달라, 친구를 불러라, 수영장에 가자, 집에 가서 게임을 하겠다 등등 하나를 해결하면 두 번째, 세번째 미션이 줄줄이 사탕이 띠를 두른 것처럼 순환한다. 아직 한글을 제대로 떼지 못했지만 학원과 공부방이라면 질색 팔색을 하는 아이를 위해 시작한 눈높이 학습도 10분 쉬었다 하자, 잠깐 게임 좀 하자, 샤워를 해야겠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 등등 사족이 길다. 물론 나는 이 요구를 거의 들어주지 않는다. 들어주지 않으니 피곤하다. 제 할일이 있다는 것, 싫어도 참고 해야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일일히 다 맞춰주다가 때를 놓치는 경우도 많고 화가 치밀어 올라 결국 큰 소리를 내고 이성을 잃는 경우도 많지만 자책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내 엄마도 그랬던 것처럼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나처럼 행동할 수 밖에 없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들은 아침에 나가 밤이 되서야 집에 들어온다. 밖에 나가 놀면서 불편을 호소하거나 무언가를 요구하는 법도 드물다. 아들은 정말 거져 키우고 있지만 나의 하루는 해가 떠서 해가 지는 순간까지,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잠이 들 때까지 오롯이 딸의 수발을 들다가 지쳐 끝난다. 작년과 다르게 내가 왜 이렇게 피곤하나 생각해보니 엄청난 감정 노동으로 인한 체력 소모 때문이었다. 그래서 회사처럼 출근하던 스피닝도 끊고, 까페에 가서 작업을 하기 위해 바리바리 싸던 노트북과 책들도 얌전히 집에 있다.
이런 아이를, 아니 이런 나를 다시 이해해보기로 했다. 나의 욕구와 아이의 욕구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엄마인 나는 어떻게 현명한 대처를 해야할지 요즘 진지하게 고민중이다. 회유와 협박이 아닌 아이와 나, 둘에게 모두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결국은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오감으로 느끼는 딸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감각 천재로, 적당히 사회화가 된 41세 엄마는 주변의 모든 일상에서 느끼는 것을 읽고 쓰고 듣는 것으로 표현하는 일상 예술가로 칭하기로 했다.
이렇게 정하고보니 나와 내 딸은 또 하나의 공통점이 생겼다.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관계에서 각자의 개성을 마음 껏 뽐내며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아직 더 자라야 하는 아이를 바꾸기 보다는 그래도 공부 많이 한 내가 생각을 바꾸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겠다 싶다. 기본적으로 아이의 타고난 성향은 바뀌지 않는다. 내가 이런 성향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는데 38년이 걸렸으니 내 딸 역시 이와 비슷한 시간이 걸릴거라 예상해본다. 아니, 내 딸은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하니 나보다 빨리 깨우칠거라 믿는다.
감각 천재와 일상 예술가가 함께 하는 삶.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