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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탈튼튼 김프리 Oct 30. 2023

엄마, 아무래도 소시지 때문인 것 같아

졌지만 오늘 경기가 만족스러운 진짜 이유

10월 21일 토요일, 오늘은 F조 3번째 경기가 있는 날이다. 오늘의 상대는 부평초등학교. 이미 2경기를 진 탓에 결승 토너먼트 진출은 어렵게 됐다. 아이들 경기니 이기고 지는 것이 의미 없다 하지만 그건 남의 이야기니 할 수 있는 말이다. 매일 2시간씩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뛰고, 작은 부상 한 두 개씩 달고 사는 아이들의 노력의 결과가 곧 승리이기 때문이다.


오전 오전 11시 40분 경기라 시간적 여유가 있다. 집결시간은 경기시작 10시 30분까지니 든든하게 아침밥을 먹고 집 앞 편의점에 들러 아들이 좋아하는 소시지 핫바를 입에 물려준다. 가공육이 몸에 안 좋은 건 알지만 고열량이 필요한 유소년 축구선수에겐 이만한 간식도 없다. 이것저것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아들, 또래보다 키가 크니 항상 그게 제일 감사하다.


3,4위를 결정하는 경기라고 아무렇게나 뛰지 않는다. 기왕이면 이기면 좋다. 상대가 형들이라도 이겨야 하고, 상대가 동생들이면 더 이겨야 한다. 이런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니 첫째는 부상 없이, 둘째는 이기는 경기를 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아들을 태우고 송도 LNG구장으로 향했다. 오늘도 날이 참 좋다.



11시 40분, 경기 시작. 아들이 선발로 뛴다. 6학년 경기인데 6학년 형들은 하나도 없다. 감독님이 지난 경기에서 부평초와의 마지막 경기는 5학년과 4학년이 섞여서 뛸 거라고  6학년 아이들에게 미리 언질을 주셨다고 한다. 아들에게 물어보니 형들이 안 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사유가 무엇이든 감독님 방침이고 상황을 보니 아들은 전후반을 다 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오늘 경기 포지션은 센터백


늘 그렇듯 오늘 경기 포지션도 센터백이다. 축알못 엄마가 봤을 때 미드필더에서 뛰는 두 친구들은 키가 작지만 발이 좋고 스피드가 빠르다. 앞에서 공격수로 뛰는 친구들도 속도가 빠르고 골 결정력이 좋다. 아들은 키가 크고 킥이 좋다. 감독님께서 매 경기마다  아이들의 장점과 팀 전술을 잘 살린 포지션 배치를 하신다. 4학년 때까지만 해도 골을 많이 넣을 수 있는 공격수나 윙에서 뛰는 게 좋았다. 하지만 이젠 골 많이 넣는 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안다. 분식집 개 3년이면 라면도 끓인다는 이상한 농담도 있듯이 3년 동안 유소년 축구경기를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 하하하



부평초 6학년 형들은 키가 엄청 크다. 아들팀의 5학년 아이들은 2차 성징이 온 친구들이 없어 폭발적으로 키가 크고 있는 아이들이 없다. 그나마 아들이 제일 큰 편인데 아들보다 머리 2개가 큰 형들이 3~4명이다. 키가 큰 형들이랑 몸싸움이 붙으면 저 멀리 휙~ 날아가는 경우도 많다. 아들이 담당하는 부평초 공격수 형아는 유난히 더 크다. 이기고 지고는 됐고 크게 다치치를 않기만 기도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잘 뛰는 5학년 선수들. 중앙 라인을 넘어가서 큰 형들과 경합을 벌인다. 아들이 공중에 떠서 형들과 치열한 몸싸움을 한다. 워낙 성격이 둥글둥글하고 남하고 다투거나 경쟁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아들이라 전에 있던 구단에서는 몸싸움, 경함, 돌파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곧잘 받곤 했다.


"한번 더! 한번 더! 반응!!!"

감독님의 외침이 들린다.


아들이 2번, 3번, 4번 6학년 형들과 치열하게 볼다툼을 한다.


"ㅇㅇ 굿~"

감독님의 칭찬이 들린다.


엄마는 심장이 몇 번 쿵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했다. 수비수지만 공격 찬스에서 전후방에서 열심히 싸워주는 게 당연한데 닭살이 돋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나뭇가지에 내 새끼 살이 살짝 긁히기만 해도 마음이 찢어지는 게 엄마인데 축구를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마음에서 돌 덩어리가 떨어지는 순간이 셀 수도 없이 많다. 3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전반 7분, 코너킥으로 올린 공이 정확하게 발을 맞아 득점으로 연결됐다. 0:1 상태팀에서 먼저 득점을 했다. 아직 시간이 많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보는 아이들. 전반 17분, 5학년 친구들의 멋진 빌드업과 침투로 1골을 만회한다. 학부무들의 환호성이 울린다. 기왕이면 1골이라도 넣고 갔음 소망했는데 6학년 형들을 상대로 멋진 그림이 나왔다. 19분, 부평초의 2번째 골이 터진다. 그렇게 전반은 1:2로 종료.


2골이 허무하게 들어갔다. 허무하게라는 표현을 쓰는 건 어디까지나 축알못 엄마의 판단이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 어렵게 득점을 하는 것 같은데 상대팀은 쉽게 쉽게 골을 넣는 것 같은 느낌이다. 세상에 쉬운 득점이 어디 있겠는가. 쉽게 골을 넣고 재미있게 뛰는 경기를 매번 상상하지만, 어느 경기 하나 만만한 팀이 없고 1골이 절실하다.


아들은 평소 잘하지 않는 태클도 2개나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왜 안 하던 태클까지 했냐고 물어보니까 바지 이너를 입어서 좀 덜 아플 것 같아서 자신 있게 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아들은 그냥 반바지만 입었을 땐 웬만해서는 태클을 하지 않는다. 그냥 막 뛰는 것 같은데도 자기 몸을 지키려는 생각을 하나보다.


후반전이 시작됐다. 포지션의 변경은 없다. 아들의 뛰는 모습이 평소보다 가볍다. 비교적 패스도 정확하다. 오늘 몸 상태가 좀 괜찮은가 보다. 관전하는 입장에서는 지고 있어도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괜히 마음이 찡하다. K리그나 월드컵을 볼 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지고 있어도 열과 성을 다해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 승패와 상관없이 응원의 마음을 보내주는 것이 중요한 거지.



아들의 골, 프리킥으로 득점 성공


후반 17분, 포지션이 변경됐다. 미드 필더로 올라간 아들. 주장인 11번 선수와의 자리 교체.  후반 22분 부평초의 3번째 골이 터진다. 스코어는 1:3. 경기의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다. 형들 상대로 잘 뛰어줬으니 그걸로 됐다 싶어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다시 경기 진행, 중원에서 아들이 볼 경합을 하다가 넘어진다. 후반 24분, 휘슬이 울린다. 아들이 반칙을 얻어냈고 프리킥 찬스가 났다. 멋지게 골인!!! 아이들의 어깨에 힘이 실리는 게 보인다.


"동점 가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렀다. 녹화된 영상을 보내 시끄럽게 응원하는 내 목소리가 다 녹음됐다. 세상 민망하다. 흥도 많고 화도 많은 내 성격 때문에 극성맞은 엄마라는 오해를 살 때도 있어서 항상 조심하는데 이번에도 망했다. 다음엔 촬영 카메라에서 멀리 떨어져서 관람하기로 또 다짐한다. 제발 제발 평정심을 유지하자!!!


경기 종료. 2:3으로 패. 그런데 이상하게 아들의 얼굴이 꽤 괜찮다? 보통 경기를 지면 우거지상이거나 눈물을 터트리기도 하는데 오늘은 아주 못하지는 않았나 보다. 지는 경기가 대부분이라 경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아들 눈치를 살피며 입을 꾹 다물고 운전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귀갓길이 좀 편할 듯싶다.


주차장으로 걸어가기 전에 잠시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렀는데 감독님을 만났다. 아이들 지도하시느라 늘 목이 쉬어있는 감독님. 살짝 스친 그 짧은 찰나에 무심하게 던져주시는 한 말씀.


"어머니, 오늘 ㅇㅇ이 잘했어요. 칭찬 많이 해주세요"



경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학부모님들이 챙겨준 간식을 오물오물 먹으며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지더니 나에게 말을 붙인다.


"엄마, 아~ 오늘은 이길 수 있었는데....."

"아 근데 엄마 오늘 나 몸이 엄청 좋았어. 아무래도 아까 먹은 소시지 때문인 것 같아"


승패와 상관없이 아들의 얼굴이 밝아서 내 마음도 밝아졌다.

진 경기지만 제대로 플레이를 한 날은 이렇게 귀엽고 애교 넘친다.

그래, 오늘처럼 항상 즐겁고 건강하게!! 다치지 말고 행복하게 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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