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삼국지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8

by 박지아피디

● 전쟁의 서막 2 : 버라이어티 쇼 삼국지 - 지상파 3사 예능 대첩


대한민국의 90년대는 얼마나 아름다운 시절이었던가? 2020년 최고 화제의 프로그램은 <놀면 뭐하니?> 유재석, 김태호 피디의 레트로 감성 오마주 프로그램 <싹쓸이>, <환불 원정대>로 전 국민을 대중문화 황금기 90년대로 타임워프 시켰다. 그 시대를 누리고 자란 40대 50대는 물론 그들 레트로에 마취당한 10대 20대까지도 열광했다. 지금은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통칭하는 [예능]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2000년 전에는 오락 프로그램, 버라이어티쇼라고 불렸다.


요즘은 주말 저녁 시간대를 제외하고는 밤 11 시대가 예능 최고의 전쟁터지만 90년대는 저녁 7 시대가 공중파 3사의 최전방 격전지였다. 3년 동안 토크쇼의 CP 셨던 부장님께서 <스타데이트 최고의 만남>이란 프로그램을 담당하시게 되었다. 부장님은 KBS 아침 토크쇼에서 무아지경으로 중원을 활보하던 나를 캐스팅하셨다. 당시 언어로 ‘버라이어티쇼’ 경험이 전무한 우리 회사에 최초로 외주제작을 맡기신 거다.


KBS 최고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스타데이트 최고의 만남>은 KBS 방송국에서도 가장 유능하신 피디들이 제작하던 프로그램이었다. 나도 그 시간에 꼭 챙겨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말 그대로 최고의 스타들만이 출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한 프로그램이 어째서 외주로 넘어왔냐? 섭외에 한계가 생겼기 때문이다. 토크쇼 전쟁터만이 유일한 게임이라고 여기던 나에게 한층 높은 레벨의 게임 세상이 펼쳐진 거다.


버라이어티쇼는 토크쇼와는 차원이 달랐다. 말 그대로이다. 토크쇼가 2차원적이고 평면적이라면 버라이어티 쇼는 3차원의 입체적인 프로그램이었다. 말로만 하던 내용들을 다이내믹한 영상으로 구현해야 하는 작업이다. 토크쇼가 설계도라면 버라이어티쇼는 건축이었다. 설계도를 만드는 것도 세심하고 까다로운 작업이지만 건축은 그야말로 대 작업이자 종합예술이었다. 일단 스텝의 숫자가 세 배 이상 늘었고 촬영장비 제작비 편집 시간 등등이 막대하게 들어갔다.


“나는 지금 이러이러한 신곡으로 활동 중입니다.”라는 토크쇼에서의 말들은 실제 무대에서 조명을 달고 댄서와 관객을 동원하고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야말로 나는 어릴 때 본 TV에서의 그 장면들을 만드는 사람이 된 거다. “나는 어릴 때 강력계 형사를 하는 게 로망이었어요.”라고 말하는 가수 김현정은 실제 강남 경찰서 강력 2부 형사들에게 유도 호신술 등을 배워야 했으며 교육이 끝난 후에는 새벽에 압구정동을 돌며 취객과 맞싸우고 체포해 경찰서로 인도하는 행위를 영상에 담아내야 했다.


나는 한 편의 영화를 찍는 영화감독이 된 기분이 들었다. 김현정 씨도 자신의 꿈을 체험해 보는 특별한 경험에 매우 만족해했다. 당시 꽃미남 가수 이지훈에게 목매던 여고를 찾아가 전교생을 데리고 운동장에서 동서남북 퀴죠 쇼를 했고 연기 지망생이던 어여쁜 여고생에게 소극장 깜짝 서프라이즈를 해주는 등 최고의 스타들과 최고의 경험을 나누었다.


온 우주가 마치 내 편이 된 것처럼 땅에서의 무림고수가 아니라 아예 하늘을 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옷이 찢겨나가는 헐크가 된 심정이었다. 토크쇼에서 느낄 수 없었던 호르몬이 생겨 나를 변형시켜 마블의 슈퍼 히어로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괴력이 생겼다. 하루에 2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었다.


당시 최고의 스타를 섭외하고 촬영 준비를 하고 야외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스튜디오 녹화를 하고 또 편집을 하고 종편을 하고 음악을 넣고 완성품을 만들어내는데 잠 따위는 나를 방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과하게 일하다 보면 당연히 사고에 이상이 생겨 사고가 터지게 마련이다.


<김미김미> 신곡을 발표한 컨츄리꼬꼬는 당시 최고의 개그코드를 가진 가수였다. 나이트클럽에서 우리를 광분하게 만드는 장본인들이었다.‘꼬꼬는 유머러스하다’라는 말을 버라이어티 하게 담아낼 의지가 충천했던 나는 내가 낸 놀라운 아이디어에 스스로 만취한 상태였던 것 같다. 컨츄리꼬꼬를 두 명의 왕자님으로 분장시키고 6남매를 키우는 어머니를 신데렐라로 만들어주는 코너를 개발해 호박마차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컨츄리꼬꼬에게 한방에 거부당했다. 촬영 회의를 할 때는 어느 힘든 어머니를 우리가 기분 좋게 도와준다는 내용에 두 분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촬영장에 당도한 컨츄리 꼬꼬는 턱이 떨어 질만큼 요란 벅적하게 준비된 현장을 보고 기겁을 했다. 우리는 개그맨이 아니라 가수다라는 말에 거의 몇 백만 원 거금을 들여 준비한 촬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본업이 가수인데 너무 많은 프로그램에서 그들이 웃겨주기만을 바라며 그러한 코너들만을 시키니 그들도 지쳤던 거다.


이것은 내가 자랑하는 통찰력에서 한참 벗어난 행동이었다. 나는 오로지 시청자가 원하는 엄밀히 말하면 내가 보고 싶었던 장면들을 연출하려고 했다. 게임이 레벌 업 되면 게임을 하는 자도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시청자가 원하는 것 플러스 연예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또한 항상 유념하는 피디로 2단계 성장했다.


후로도 시청자가 원하는 것에 연예인을 소모품처럼 써먹으려는 속셈이 내 마음에 있는지 없는지를 체크하는 피디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심을 하면서 당시 또 다른 최고의 인기스타인 통아저씨께 호박마차에서 그만 내려오시라고 마부 복장을 그만 벗으시라고 하고 통 춤은 이제 그만 추셔도 된다고 했다. 새벽부터 호박마차 앞에서 춤추시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하고 출연료는 빨리 입금해 드리겠다고 정중히 인사드렸다. 레드카펫도 접어 치우고 요란 벅적한 마칭밴드도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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